목소리의 미학,청각이 맛이되는 순간

공감각적인 표현(책을 읽고)

by 신은정


이번 달 북클럽에서 함께 읽고 있는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마침 며칠 전 에세이 수업에서 '공감각적 표현'을 공부하고, 5분 에세이 쓰기 연습을 했던 터였다. 그래서일까. 에바 부인 편을 읽어 내려가다 한 문장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달콤한 포도주처럼 그의 목소리를 마셨다."


아, 이게 바로 수업 시간에 배운 공감각적 표현이구나.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문장이었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제는 작가가 숨겨놓은 감각의 전이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귀로 듣는 '청각'의 영역을 입안에서 감도는 '미각'으로 치환한 이 문장을 가만히 읊조려 보았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달콤한 포도주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대체 어떤 순간일까.


책장을 덮고 그 문장에 어울리는 하나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하루 종일 다툼과 오해로 타들어 가던 갈증이, 해 질 무렵 건너온 전화 한 통으로 씻겨 내려가는 그 극적인 찰나를 영화처럼 떠올려본다.


[시]


달콤한목소리


낮 내내

뾰족했던 마음이

그림자 길어지는 길목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다툼은

오후의 열기처럼 뜨거웠으나

기울어가는 해가

날카로운 모서리를 깎아냅니다.


울리는 진동,

화면 위로 떠오른 당신의 이름.

수화기 너머 건너온

당신의 목소리

달콤한 포도주처럼 마십니다.


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평온한 숨소리

하루의 갈증이 씻겨 내려갑니다.


잘 자라는 그 한마디를

내일의 약속으로 보관하고

이제서야

가장 편안한 꿈을 꿉니다.



문장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의 한 구석을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았다.

에바 부인의 목소리에서 안식을 찾았던 싱클레어처럼, 우리에게도 저마다 갈증을 채워줄 '포도주 같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때로는 백 마디의 논리적인 말보다, 마음을 적시는 부드러운 음성 한 마디가 엉킨 관계를 풀고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오늘 하루, 당신은 누군가에게 포도주 같은 목소리였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달콤한 포도주처럼 느껴졌는가.


배움을 통해 문장 속 감각을 발견하지만, 진짜 배움은 삶 속에서 그 감각을 직접 나누고 마시는 데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나누는 만큼 풍요로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오늘 저녁, 누군가에게 당신의 목소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적시는 달콤한 포도주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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