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에세이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모은 말이래."
그럴듯한 속설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라틴어 familia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참 예뻐 보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사랑을 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친정엄마와의 관계보다 나는 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딸이었다. 아버지는 말이 적었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분이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온기를 느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아버지는 뇌출혈 이후 언어장애를 안고 살아가셨고, 대장암 수술 후에는 대변주머니 기계를 달고 지내셨다. 말 대신 눈빛과 손짓으로 의사를 전하던 분이었다.
요양원에 계실 때였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아버지는 기저귀를 딸인 내가 갈아주어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의 손은 이불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고, 눈은 천장을 향해 있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움직였지만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부인과 아들, 딸, 손주들까지 모두 임종을 지켰다. 외국에 있던 경은이를 빼고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을 함께 지켜본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하나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흔한 장면은 아니다. 홀로 병실에서, 혹은 누군가의 부재 속에서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셨다.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복 있는 분이었다.
돌아가시고 귀가 닫히기 전, 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읽어드리자고 막내 남동생이 제안했다. 큰누나가 하면 좋겠다는 말에 병실 창가에 쪼그리고 앉아 급히 글을 적었다.
'아버지, 제 어깨를 다독이던 그 손을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웃으실 때마다 우리도 웃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목이 메어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아버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들리셨을까. 지금도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그날의 공기와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도 종종 나를 멈춰 세운다.
아버지가 떠난 뒤, 어머니와의 관계는 이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아버지 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가 월세를 받아 생활하고 계신다고 들었고,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동생네 집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남동생이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집 없는 나만 잃고 있네."
그러자 어머니가 무심코 답하셨다고 했다.
"내가 무슨 집이 있어."
그 말을 전해 들은 순간, 아버지 집이 우리 몰래 팔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의 감정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배신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겁고,
이해라고 하기엔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일을 계기로 가족들 사이에 말로 다 하지 못한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거리.
예순을 살아보니, 어떤 감정은 서둘러 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어떤 관계는 평생 따뜻하고,
어떤 관계는 이해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가족은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이름으로 남는다.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딸로서 나는 이제 안다. 가족이란 완전해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미완이라서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마음과 늦게 알게 된 진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남겨주신 성경책을 한 번씩 꺼내본다. 책장을 넘기지는 않아도, 표지를 만지고, 다시 덮는다.
아버지, 나는 여전히 당신의 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