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이 시작되기 직전, 인실 작가님의 블로그에 짧은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몇 초 뒤, 줌(Zoom) 화면 속에서 그를 마주했습니다. 방금 보낸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표정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 온라인이라는 물리적 거리는 금세 반가움으로 채워졌습니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면 앞에 앉으신 인실 작가님, 그리고 그분을 걱정하며 모여든 수많은 작가님들. 건강을 묻고 안부를 챙기는 다정한 대화들이 '데미안'이라는 차가운 고전의 문을 따뜻하게 열어주었습니다.
내 안의 '에바 부인'을 부르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 블로그 이름에 담긴 비밀을 나누었습니다. <에바 부인의 책향기 나는 하루>. 데미안의 어머니이자 구원의 상징인 에바 부인의 이름을 빌려왔지만, 정작 그녀의 이야기를 나누는 제 목소리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고전 앞에 선 나는 여전히 알을 깨고 나오려는 작은 새에 불과하다는 것을, 떨리는 목소리가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같은 책, 서로 다른 삶의 무늬들
단톡방과 화면을 오가며 각자의 삶이 투영된 문장들이 쏟아졌습니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우리가 멈춰 선 곳은 제각각이었습니다.
* 누군가는 처음 만난 데미안의 강렬함에 설레었고,
* 누군가는 세 번째 읽으며 비로소 발견한 행간의 의미에 감탄했습니다.
* 바쁜 일상 탓에 다시 읽지는 못했지만, 빛바랜 옛 메모를 소중히 들고 온 작가님의 솔직함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도 읽히는구나."
타인의 시선을 빌려 책을 다시 읽는 1시간 40분은, 혼자서 며칠을 고민하는 시간보다 훨씬 밀도가 높았습니다.
독일에서 날아온 꿈, 그리고 기록의 약속
독일에 거주하시는 김미연 작가님이 원어로 데미안을 읽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자, 독일어를 전공하신 가주 작가님이 흔쾌히 그 여정에 동행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국경을 넘고 언어의 벽을 허무는 이 연대가 북클럽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모임의 끝자락, 가주 작가님은 '서평 쓰는 법'이라는 다음 과제를 우리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넘어, 이제는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성장'의 단계를 예고한 것입니다.
늘 깊은 통찰로 모임을 이끌어주시는 가주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는 오늘 각자의 알에 작은 금을 내었습니다. 다음 모임에선 또 어떤 모습으로 깨어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