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역류> ,<'아폴로 13> , <랜섬> , <다빈치 코드>같은 선 굵은 영화로 친숙한 론 하워드 감독이 2002년 <뷰티풀 마인드>로 관객을 찾아왔다. 그해 아카데미에서 <뷰티풀 마인드>는 감독상, 각색상, 여우조연상, 작품상 등 노른자위 4개 부문을 휩쓸었지만, 정작 주인공 존 내쉬 역의 러셀 크로우에게 남우 주연상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뷰티풀 마인드>를 본 관객이라면 정신분열증의 공포와 파괴력을 실감 나게 연기해낸 러셀 크로우로 인해 이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에 100% 공감할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스물한 살 나이에 이른바 '균형이론'을 발표해 경제학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 존 내쉬(프린스턴대)의 얘기를 다룬 영화다. 1949년 27쪽짜리 논문 하나로 150년 동안 지속돼 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경제학 이론을 발표한 존 내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30대 때 정신분열증에 걸려 30여 년간 고생하면서도 결국엔 정신분열증을 이겨내고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해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천형 같은 혹독한 운명을 극복해내고 한 시대의 빛으로 거듭난 위대한 인물, 작가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창작 소재는 없을 것이다. 20대에 수많은 업적을 이룬 수학의 천재, 30대에 찾아온 지독한 정신분열증, 그 후 30년간의 자기 분열과 좌절, 그리고 기적적인 회복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삶의 극과 극을 오갔던 한 인간의 휴먼 드라마는 1998년 뉴욕 타임스 경제담당 기자 실비아 네이사가 쓴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 책이 전하는 감동은 할리우드를 움직여 결국 론 하워드에 의해 2001년 영화로 재탄생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론 하워드는 원작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존 내쉬를 평생 괴롭혔던 정신분열증을 존 내쉬의 시각으로 그려내 관객 역시 정신분열증이 만들어낸 망상을 실제 상황으로 믿게 돼 그의 정당성을 한동안 지지하게 된다. 물론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존 내쉬가 끊임없이 역설하는 모든 상황이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피해망상의 결과란 것을 알고 한 인간이 정신분열병 앞에서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며 병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1) 정신분열증에 대한 오해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 난 뒤,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이 떠올랐다.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처음부터 주인공의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증상 중 하나인 '환각'과 '망상'을 통해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과 인연을 만들어내고, 그 인물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상황을 관객은 실제 상황이라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고 절규할 때, '도대체 앞에 뭐가 있다는 거야'라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주변 인물들이 지을 때,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그들을 야속한 공공의 적으로 여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관객의 믿음을 배반하고, 주인공이 보고 듣고 말한 것이 모두 그의 망상에서 지어낸 것이고, 그를 늘 의혹의 눈으로 쳐다봤던 주변 인물들이 진실이었다고 손을 들어준다. 정신분열증의 대표적인 증상 '망상'을 이용해 감독은 늘 '반전 효과'를 계산에 넣어두는 것이다.
2) 정신분열증은 왜 걸릴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예가 많고, 정 신병력이 있으면 취업, 결혼,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 여겨 적극적으로 치료받기보다는 은폐하고 방치하는 예가 많았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정신질환의 하나인 정신분열증은 세계적으로 백 명 중 한 명이 걸릴 만큼 아주 흔한 병이 됐고, 어떤 계층의 사람도 이 병에 걸릴 수 있으며, 15세에서 30세 사이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병하여 인간의 인지, 지각, 정동, 의지, 행동, 사회활동 등의 다양한 정신 기능에 이상을 초래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가 30 대부터 앓은 정신분열증을 30년 이상 완치하지 못한 채 살아가 듯 정신분열증은 진단 및 치료가 쉽지 않고 재발도 많다. 하지만 일찍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지속하면 회복이 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어, 정신분열증에 대한 다각적인 정보와 적극적인 치료방법이 사회적으로 더없이 요구되는 때이다.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의 어원을 보면 Schizo (분열된) + Phrenia(마음)이 만나 만들어진 단어 '분열된 마음'이다. 사람들이 '미쳤다'라고 표현하거나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상태 중 가장 전형적이면서 가장 심각한 장애를 지칭하는 정신분열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신분열증은 오래전부터 연구해왔지만,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단일한 원인은 없다.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에 의하면 정신분열증의 별 병원인으로는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 사회적 요인, 유전적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이런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신분열증을 일으킨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의 발병 원인을 항목별로 자세히 살펴보겠다.
(1) 생물학적 요인 - 전두엽과 측두엽 같은 뇌의 특정 부위 기능 이상으로 정신분열증 발생한다 지적.
- 인간의 생각, 감정, 지각, 행동 등을 전달해 주는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인데, 이것이 뇌 안에서 너무 많이 전달될 때 정신분열증이 발병한다 알려져 있다.
(2) 심리 사회학적 요인 - 환자의 스트레스, 가족 간의 갈등, 정신분석적 요인,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 의사소통 방법의 문제, 사회문화적 요인
(3) 유전적 요인 -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정신분열증을 가진 경우 그 자녀가 이 병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부모의 자녀에 비해 8-18배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쌍생아에서 한쪽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면 다른 한쪽도 같은 병에 걸릴 확률 높다. 존 내시 역시 안타깝게 그의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래서 자신의 노벨상 상금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외아들과 아내 알리샤를 위해 쓰고 있다.
3) 존 내쉬의 증상을 통한 정신분열증 분석
정신분열증의 주요 증상을 보면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로 인한 생각의 장애, 행동 장애, 지남력, 운동기능의 장애, 병의 인식 장애 등이 있는데, 존 내쉬는 평생 환각과 망상으로 고통을 받는다. 존 내쉬를 평생 따라다녔던 망상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생각의 장애다.
망상은 논리적인 설득으로는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병적인 믿음'을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한다거나 괴롭힌다는 피해망상, 자신을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는 조종 망상,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을 비현실적으로 높게 여기는 과대망상, 실제로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이나 사람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관계망상 등이 있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는 실제 이런 모든 양상의 망상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이 점점 깊어지는데, 이때 그의 망상 속에 가상 인물들이 등장한다. 존 내시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들은 그의 내면에 깔린 잠재적 욕구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수학에서만큼은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지만, 그 외의 모든 분야에선 냉소적이면서 열등감이 심한 존 내쉬는 비사교적인 성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 같은 존재이다. 그런 존 내쉬의 내면에도 친구들 세계에 편입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잠재돼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 룸메이트 찰리다. 존 내시가 친구란 것에 늘 자랑스러워하는 찰리의 모습은 친구들에게 무시당했던 순간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욕구이며, 방탕하면서 과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성격으로 찰리를 만들어 낸 것은 소심한 존 내시가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서이다.
정부 요원 파처라는 인물 역시 존 내쉬의 억눌린 욕구로 인해 만들어진 망상 속 인물이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컸던 존 내쉬는 정부 요원 파처라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였던 시절에 사회적으로 제일 큰 공헌은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켜내는 것이다. 존은 그의 능력으로 미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소련의 국가기밀 암호를 풀어내는 것.
그래서 존은 국가기밀 암호해독 가라는 환상의 직업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많은 잡지에서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 그것을 해독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해간다. 그 과정에서 존 내쉬의 정신분열 증세는 더욱 악화된다.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는 피해망상, 소련으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과대망상, 정부 요원 파처가 끊임없이 자신을 조종해 가족까지 해치려 한다는 피조종 망상 등 망상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징후를 보인다.
룸메이트 찰리, 정부 요원 파처와 함께 평생 존 내쉬를 따라다니는 망상 속의 인물은 찰리의 조카 마씨이다. 수학천재였지만 어린 시절 늘 외로웠던 존 내쉬는 부모를 잃은 고아이자 찰리의 조카 마씨를 만들어낸다. 찰스와 함께 다니면서 존 내쉬를 보면 늘 안아 달라며 사랑받길 원하는 마씨는 어쩌면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자 하는 존 내쉬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아무도 없는데, 자신의 눈에는 보이는 인물들, 이런 가상의 인물 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존 내쉬. 지각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환각이 어떤 것인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는 존 내쉬의 행동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가상의 인물들, 찰리와 파쳐, 마씨가 일일이 존의 행동을 간섭하고 행동을 지적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바로 환각 증세이다. 이런 환각 증세는 심할 경우 자살을 지시하거나 타인을 해치라는 명령까지 들린다는데, 존 내쉬 역시 파처가 아내를 죽이라는 환청을 들어 위기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4) 존 내쉬는 어떻게 정신분열증을 극복했을까
수학 천재들만 모인 곳에서도 가장 우등한 천재로 꼽히던 인물이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 올린 명예, 권력, 재력, 가장으로서의 능력까지 모두 잃어버린 존 내쉬 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무기력해진 존 내쉬를 보면서 정신 분열증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한 가정의 행복을 파괴시키는지 볼 수 있었다.
존 내쉬는 부인의 도움으로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꾸준히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병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 치료를 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감각이 둔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한동안 존 내쉬는 부인 몰래 약 복용을 중단한다. 그러자 또다시 환각과 망상 증세가 심해져 병원과 집을 오가는 입원치료가 이어진다. 하지만 존 내쉬의 강인한 의지로 나중에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인물들에게 농담도 하고 무시할 수 있는 치유 단계까지 이른다.
존 내쉬의 삶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서 제목이 왜 <뷰티풀 마인드>일까? 의문이 갔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괴팍한 독선과 고집,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 파괴되어가는 한 인간의 삶과 가정, 사실 이 영화에는 제목처럼 뷰티풀 한 느낌을 주는 장면은 없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갈 무렵 존 내쉬의 힘겨운 삶을 그린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뷰티풀 마인드>가 됐는지 이해가 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존 내쉬는 뛰어난 수학적 두뇌를 지녔지만, 오만하고 돌출 행동이 있는 괴짜였다. 그는 MIT 교수 시절 구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피해망상으로 정신분열증을 겪는다. 그는 대학에서도 쫓겨났다. 하지만 그 후 그는 30년간 정신분열증과의 싸움 끝에 1994년 '균형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타게 된다.
<뷰티풀 마인드>는 바로 존 내쉬의 자기 극복 의지와 정신이었다. 또 고통의 세월 속에서 아내 알리샤가 지켜낸 사랑, 존 내쉬의 자기 극복 과정을 묵묵히 받아준 동료들. 이런 것들 때문에 <뷰티풀 마인드>란 제목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존 내쉬의 모교 프린스턴대는 교수와 학생을 소련 스파이로 착각, 가끔 폭력적 발작을 일으키는 존 내쉬를 받아들였다. 연구실을 내줬고, 나중엔 강의도 맡겼다. 그가 학문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우리 대학의 풍토였다면 아마 '정신병자'라고 쫓겨났을 것이다. 신체적 장애가 편견과 차별을 만들지 않는 나라, 그래서 그들의 '뷰티풀 마인드'가 부러움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