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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19. 2024

최초의 행복 화초로 설계된 '리틀 조'








 

1. 일년을 앞서 준비하는 육종인들의 꽃 박람회



저희 육종 프로그램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어요. 

고도의  유전공학이 동원됐지만, 

목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꽃을 

만드는 거예요. 

최근의 육종은 생명력에 초점이 맞춰져 왔어요. 

주인이 몇 주씩 집을 비워도 살아남을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향기가 약해져요.

꽃향기가 덜나 게 되죠.

저희는 그와 반대되는 경우를 만들었어요.


꽃이 행복한 향기를 풍겨요. 

노력에 화답하는 거죠. 

향기 속에 옥시토신의 전구체가 들어있어서

흡입하면 몸이 옥시토신을 만들어 내요.

일명 엄마 호르몬인데, 

엄마와 아기의 애착 형성을 돕는 데요.

자식처럼 예쁜 거예요.


시판용으로 생산된 기분을 북돋아주는 

최초의 행복 화초.

이 혁신이 가져다줄 혜택은 짐작이 가시겠죠


육종 부작용으로 성장 호르몬이 과잉 분비돼요.

그래서 박람회까지 맞출 수 있어요.

이 화초에 가장 필요한 건 사랑입니다.  







영화 <리틀 조>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이 대사만으로도 관객은 영화의 서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략 짐작할 것 같다.  유전자 공학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식물 종을 연구하는 유전공학자 앨리스는 꽃이 피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식물을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따 '리틀 조'라고 이름 붙인다.  

앨리스가 근무하고 있는 '플랜트 하우스'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이용해 식물 육종을 하는 기업이다. 사전에서 식물 육종의 뜻을 찾아보면 식물의 유전 물질을 개량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일.  변이의 탐구, 선택, 고정과 새 품종의 증식 따위의 단계를 거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육종장에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새로운 식물 배양에 성공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면 배양 성공이 가져올 경제적 가치일까? 







영양제를 듬뿍 줘요.

이 녀석들까지 잃은 순 없으니까요.

신품종 기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잖아요.






앨리스가 근무하는 '플랜트 하우스' 연구원들은  꽃 박람회에 맞춰서 출시할 신제품 때문에 다들 예민해져있다.  바로 옆 육종장에선 앨리스의 '리틀 조'가 독보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자신들의 신품종 플래시 2가 성공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더 커진 거다. 그런데 우려했던 대로 출시를 앞두고 있던 플래시 2가 하룻밤 새 시들어버렸다.  파란색 튤립에 필로덴드론 버킨 같은 잎 모양을 하고 있던 플래시 2를 매뉴얼대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하룻 밤 사이 상품가치가 없어진 거다.  그때부터 동료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생식을 못 하게 설계된 '리틀 조'의 꽃가루가 원인이 됐을 거라 의심한다. 









리틀 조의 추가 배양은 

중단하는 게 좋겠군요.


꽃 박람회 준비는 어쩌고요? 

올해를 놓치면 다른 회사가 선수 칠 텐데요.




시즌을 앞서가야 되는 패션 디자이너처럼 육종 전문가들도 꽃 박람회 일정에 맞춰 일 년 계획표가 만들어질 듯싶다.  우리가 봄꽃축제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꽃은 아마도 지난가을에 심어둔 식물일 거다. 더 이르게는 여름부터 식재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개화 일과 축제 시작일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식재 한 이후에도 계속 신경 써서 돌봐줘야 한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두 달간의 축제를 위해 여러 사람이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애쓴다.  꽃 축제는 즐거움이나 휴양의 목적도 있지만, 대중에게 기존 품종의 상세 정보와 신품종을 홍보하며 식물 문화를 경험해 보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꽃축제에 갔다가 관심을 갖게 된 식물을 현장에서 바로 구입할 수도 있고, 나중에 키우더라도 그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축제 현장에 여러 식물을 식재함으로써 화훼농가에 직접적으로 큰 이익을 줄 수도 있다. 




올봄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구근식물들. 튤립, 히아신스, 무스카리, 수선화는 지난가을에 구근을 심어야 봄에 꽃을 볼 수 있는 '추식구근'이다.  그러니 지금 활짝 피어있는 수선화, 튤립을 바라보면 그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자라서 꽃을 피운 게 아니라, 그 며칠간의 개화를 위해 지난 계절부터 오랜 시간을 견뎌왔을 거라  상상하면 숭고함마저 든다.  한 송이 국화가 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견뎌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을 꽃에 빗댄 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도 생각난다. 잠깐 피어나는 식물의 개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 날씨 등을 헤아리다 보면 꽃 한 송이가 모두 예사롭지 않다. 







2. 모성의 결핍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낸  '리틀 조 '



앨리스의 정신과 주치의는 상담을 마친 뒤 환자에 대한 기록을 녹음한다.  '일 중독자, 사춘기 아들 조를 방치한 것에 대한 죄책감, 환자는 아들과의 유대에서 벗어나려는 잠재의식적인 바람을 억누르고 있음'.  감독은 영화에서 대사로 캐릭터의 상태를 관객에게 알려준다. 앨리스의 캐릭터를 정신과 주치의가 적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면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앨리스는 모성과 일에 대한 개인적인 성공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해 온 인물이다.  엄마보다 플렌트 하우스의 육종학자 삶이 우선인 앨리스에게 집은 편안한 안식처라기 보다 아들을 양육하기 위한 공간쯤으로 여겨진다.  퇴근 길에 사들고 온 패스트푸드를 쇼핑백째 식탁 위에 올려놓고,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  오븐에 불을 당겨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앨리스가 조를 위해서 해주는 일은 포장음식과 배달음식을 사다주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것. 

제가 잘하는 일이죠.

물론 저도 예측 못한 실수가 나오기도 해요

모든 걸 다 컨트롤할 순 없잖아요.

조도 돌봐야 하고...

또 아들을 사랑하고 같이 있으면 좋아요.

시간을 못 내줄 때가 있는데 

그때 좀 걱정 돼요.

가끔 이런 게 무서워요.

조에게 일이 생기는데 제가 그 자리에 없는 거예요.





유전공학자인 앨리스가 개발한 '리틀 조'는 일 때문에 아들을 방치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싶은데서 출발했을 듯 싶다.  조에게 결여된 엄마와의 애착을 식물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유전자 변형으로 '리틀 조'를 만든다.  생식 기능은 없지만 '옥시토신'을 분비하는 이 꽃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정확히는, 옥시토신의 전구체가 들어 있는 꽃향기를 흡입하면 몸이 옥시토신을 만들어내는데, 일명 엄마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으로 인해 꽃을 기르는 인간이 꽃을 자식처럼 여겨 모성애의 감정을 만들어 준다.  마치 반려동물을 키울 때와 유사한 감정인 것이다.  앨리스는 조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리틀 조'가 채워주길 바라면서 아들에게 이 꽃을 선물하고, '리틀 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집이 굉장히 덥네


따뜻한 데 둬야 해서. 

아주 특별한 아이거든.

네가 잘 돌봐 주야 해. 

온도 잘 맞춰주고, 말도 걸어주고,

생물이잖아. 관심과 애정이 필요해. 

주인을 행복하게 해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던 조는 화분에 말도 걸고 물도 주며 리틀 조를 극진히 돌본다. 




'리틀 조'를 기르면서 정서적 유대감과 안정감이  생길 거라 여겼던 앨리스의 의도와 달리 조는 중2병에 걸린 아들처럼 낯설게 변해간다. '리틀 조'로 인해 엄마와 아들 사이가 한층 더 가까워질거라 여겼기에 앨리스는 당황한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늘 기다렸다 함께 먹던 저녁도 혼자 먹고, 길에서 본 엄마를 외면하고, 여기다 아빠와 살고 싶다는 의사까지 내비친다.  이제 것 보아왔던 내 아들이 아니다.  

완벽한 육종가이자 엄마인 앨리스는 철저한 이성의 계획에 따라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여겼던 아들이 '리틀 조'에 감염된 이후 비밀을 만들고.  더이상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  '리틀 조'가 조에게 가장 결핍됐다고 여기는 것,  모든 걸 통제한다 여기는 엄마로부터  다른 방을 만들게 부추긴다.  이렇듯  '리틀 조'는 사람들의 마음에 결핍된 것을 파악하고 파고드는 방식으로 생물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3.  과학 기술을 통해 실현한 인위적 행복은 진짜일까





미래 세계를 보여준 영화를 보면서 설마 했던 상황들이 현재에 이르러 하나씩 실현되는 것을 보면 놀라우면서 두렵다.  앞으로 유전공학을 통해 '리틀 조'같은 꽃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행복이란 것조차 과학 기술을 통해 우리 뇌의 한 부분을 자극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감사할 일인가.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한 적 있다.  인터뷰에서 하우스너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왜 행복해지고 싶어 할까? 나는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완벽에 대한 추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행복과 완벽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영화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회의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영화 '리틀 조'는 과학과 기술을 통해 '완벽한 행복'을 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자연 앞에서 어떻게 꺽이는지 보여준다.  '리틀 조'는 향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떨어져도 수정을 못하게 설계됐다.  생물의 본능인 생식 기능을 인간의 마음대로 제거하고, 오직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해 인위적으로 옥시토신을 뿜어내도록 설계된 꽃이다.  이것이 진짜 꽃일 수 있을까.  '리틀 조'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꽃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 손으로 빚어낸 독극물과 다를 바가 없다.  


꽃향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생식 기능이 제거된 '리틀 조'는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번식 방법을 찾아낸다.  꽃가루를 내뿜어 자연적인 식물들을 모두 죽이고,  수정을 할 수 없다면 꽃향기로 사람을 감염시켜 자신을 보호하고 번식시키게 만드는 거다. 그렇게 감염된 사람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파악하게 되면서 그 능력을 채우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에 의해 순종적으로 개량된 강아지 벨로가 '리틀 조'의 꽃가루에 의해 야생성을 보인 것은, 어찌보면 결핍 되었던 본능을 되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4. 감독이 말하는 '리틀 조'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리틀 조'는 인간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기능을 지닌 꽃을 개발하던 과학자들이 오히려 그 꽃으로부터 서서히 인간성을 잠식당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설정만 들어서는 '프랑켄슈타인'이 연상되지만 '리틀 조'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험난한 직장 생활과 아름답지만 잔혹하기도 한 모성의 세계에 집중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리틀 조'를 보면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하다. 공간이나 의상이 차가우면서도 채도가 높은 색감으로 꽉 짜여 있다. 특히 녹색 계열의 공간에 노랑, 주황색 등의 의상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항상 스타일리시하고 인위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하우스터 감독이었기에 영화 '리틀 조'도 초현실적인 미술 세팅으로 컨셉을 잡았다.  그래서 의상 역시 에밀리 비샴이 앨리스 역을 맡기로 했을 때 그녀의 머리색과 조화를 이루는 의상을 고르려 노력했다고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루돌프 하우스너의 딸이며,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제자인 예시카 하우스너는 그들의 영향을 받은 탓에 그녀의 연출은 대단히 정적이고 건조하다.  롱테이크로 질리지 않은 시간을 담아내고, 움직임이 거의 없이 대상에게 집중하는 카메라 기법을 사용한다.  




영화의 결말은 모성으로서의 엄마라는 존재의 비극을 겨냥하고 있는데, 이것은 감독의 개인적 경험도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정말 많은 엄마들의 인생이 그러하듯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을 놓아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감독 자신도 워킹맘으로서 일도 제대로 하고 자식도 키우고 싶어 하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한다. 








5.  리틀 조와 닮은꼴  상사화 



상사화



영화 '리틀 조'를 보면서 떠오르는 우리나라 꽃이 있었을 듯 싶다.  아마도 '리틀 조'를 보기 전이었다면 그 꽃을 보았더라도 그렇게 인상깊게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 같다.  '리틀 조'처럼  잎사귀 없이 긴 꽃대 에 붉은 꽃만 강렬하게 달고 있는 상사화.  지난 여름 아파트를 산책하다 정원에 무리져 피어있는 상사화를 보고 '리틀 조'의 모델이 혹시 상사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꽃이 필 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으므로 서로 볼 수 없다 하여 상사화란 이름이 붙여진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꽃.  여름철이면 아파트 화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사화는 잎이 말라버린 후에 60 cm 정도의 높이를 가진 꽃대가 자란다.  꽃대의 끝에 4~8송이의 꽃이 뭉쳐 피는 꽃이다. 알뿌리를 가진 여러해살이풀이다보니,  작년에 상사화를 본 자리에서 올해도 또다시 볼 수 있는 것이다. 



리틀조


리틀조




6.  이게 스코어인가 음향인가? 일본의 작곡가 테이지 이토 






https://youtu.be/nvD1NhBECm0



영화 '리틀 조'에서는 일본의 작곡가이자 연주자 이토 테이지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작곡가였던 아버지와 무용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935년에 태어난 테이지 이토는 6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다.  무용가였던 어머니의 댄스 공연에 함께 했던 테이지 이토는 일본 무용과 함께 한국 무용도 공연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음악에서 우리 전통음악의 선율이 교차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리틀 조'에서 리틀 조의 지배가 이어지며 기존의 이념에서 어긋날 때 이성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전위음악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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