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작은 아씨들>처럼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늘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 아기자기하고 재밌다는 반응, 혹은 너무 지루하다는 반응. 대체로 여성들은 제인 오스틴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묘사에 찬사를 보낸다.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 결혼을 앞둔 남녀의 심리묘사는 이보다 더 탁월할 수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나 마크 트웨인, 에밀리 브론테 같은 작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견딜 수 없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2006년에 다시 영화로 만들어진 <오만과 편견>은 무려 여섯 번째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만이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로 다섯 번이나 만들어졌다. 제인 오스틴이 스물한 살 때 <오만과 편견>은 <첫인상>이라는 서간체 소설로 발표됐다. 첫인상에서 받은 느낌들이 굳어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 또 그것을 딛고 사랑에 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제목에서 읽어낼 수 있다. 훗날 더 많은 시간 동안 고치고 또 고치면서 <오만과 편견>으로 이 작품은 재탄생됐다.
영국 BBC에서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 이때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작가임을 짐작게 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마흔두 살이란 짧은 생을 살다 간 제인 오스틴은 모두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남겼다. 그 작품은 모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씩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한된 공간과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얘기들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은 제인 오스틴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제도권의 교육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고, 삶의 넓이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삶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설에 모두 쏟아 넣었다. 그래서 일상적인 얘기들로 가득 찬 제인 오스틴만의 소설이 탄생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은 대단하다.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사는 듯한 생생한 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를 보면 역사극 같아 무겁고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한 가지는 바로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시대의 풍습에서부터 의상, 문화 등 소소한 것들을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역시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엠마>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처럼 당시의 관습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관객을 19세기 초반의 영국 사회로 안내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의 작은 마을 하트퍼드셔의 베넷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제는 몰락한 중산층 가정인 베넷가에는 다섯 자매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만 보면 마치 <작은 아씨들>의 분위기가 풍기지만, 이곳에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없다. 물려줄 재산도 없고, 여자가 가질 수 있는 별다른 기회도 없으니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만이 딸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최선의 선택이라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하는 허영심 많은 엄마. 그런 엄마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일이 벌어진다. 1년에 4, 5천 파운드를 버는 귀족 청년 빙리가 이웃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혼기가 꽉 찬 큰딸 제인을 빙리와 연결 시켜려는 엄마.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무도회.
19세기 초의 영국에서는 선남선녀가 공식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이런 무도회를 통해서였다. 이때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결혼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 관심이 있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춤을 출 때뿐이었다고 한다. 여럿이 한 팀으로 어우러져 춤을 출 때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마음에 담은 말을 건네고, 다시 멀어졌다 가까워졌을 때 잠시 전 했던 말을 이어서 하고..... 빠르고 쉽게 마음을 전달하고 단념도 순식간인 요즘과 비교하면 호감 갖는 상대에게 더디게 말을 건네는 이런 19세기 방법에 마음이 이끌린다.
베넷가의 다섯 딸.. 그중의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그 시대보다 앞선 자기주장을 가진 재치 있고 똑똑하고 발랄한 아가씨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것을 늘 생각하는 요즘 말로 하자면 깨인 여성이다.
명문 귀족인 다아시는 너무 신중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꺼리는 인물, 소통하기 어려운 오만한 인상을 주지만, 속마음은 굳건하고 신실한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고, 서로 오해하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 오만과 편견은 책을 통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독자에게도 배우들이 열연으로 설레는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편견이란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해서 그것에 적합하지 않은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태도를 편견이라고 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누구한테나 얼마만큼의 편견은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편견, 인종적인 편견, 사적인 편견, 정치적인 편견,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 대한, 또는 부자에 대한, 잘 웃는 사람에 대한 편견,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한 편견, 뚱뚱한 사람에 대해서, 잘생긴 사람에 대해서 학벌에 대해서, 지역에 대한 편견, 이렇게 숱한 편견들은 때로 사전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편견을 가졌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 속에서도 그렇다. 다아시는 자신의 조건을 보고 몰려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가 오만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았다면 그가 사랑도 없는 결혼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엘리자베스가 만약 귀족들의 오만함에 대해서 편견이 없는 여자였다면, 그저 조건이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그럭저럭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만과 편견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한 사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단 한 사람인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유일한 그 여자를 만날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오만과 또 그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편견을 고수한다는 것.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책은 전 세계인들에게 셰익스피어의 고전처럼 꾸준히 읽히고 있는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그런 예를 입증해 주듯, <유브 갓 메일>에서 길모퉁이 서점의 주인인 맥 라이언은 <오만과 편견>을 2백 번 읽었다는 대사가 나오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 작품의 매력은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지극히 냉정한 틀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 현미경을 들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처럼 자신의 삶 주변을 관찰하고 냉정하게 소설 속에 세상을 옮겨 놓았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던 결혼과 사랑과 부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이성적인 신중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얘기되고 리메이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