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데 영화만 한 것이 있을까. '카모메 식당'에서 고바야시 사토미가 사치에를 연기했을 때 나이는 42살이었다. 극 중 38살이었던 사치에는 18년이 지난 2025년에 56세가 된다.
관객이 시간에 정비례해 나이를 먹는다면, 배우는 영화 속 나이로 영생한다. 카모메 식당에서의 38살 사치에가 56세가 됐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는 쉽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에서의 아키코, '산의 톰씨'에서의 하나, '펜션 메챠'의 텐코를 보면 사치에의 10년, 20년 뒤 모습일 듯싶다. 차분하지만 활발하고, 냉철하지만 따뜻하고, 용감하지만 신중하고, 유쾌하면서 유연한 사치에와 아키코, 하나, 텐코는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내 감정의 주인으로 사는 또 다른 사치에다.
꿈과 희망, 말과 행동, 계획과 목표 같은 것은 모두 감정에서 시작된다. 무언가를 어떻게 할지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그렇게 해서 일이 진행된 뒤에 자신이 어떤 감정일지 예측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치에와 아키코, 하나와 텐코가 삶의 중대한 선택과 결과에 초연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의 온도만 맞추느라 다양한 가면을 써야 했던 이라면 '내'가 없음의 박탈감을 알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이다. 나의 감정, 나의 느낌, 나의 기억이 없다면 나의 사고, 나의 선택, 나의 판단, 나의 결정도 없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인지,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면 '나'를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세상에 하나뿐인 개별성과 주체성, 고유성을 갖게 되며 복제품이 아닌 오리지널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자격을 요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내 마음의 주인, 내 감정의 주인, 내 생각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