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停戰)'의 사전적 정의는 군사 교전 중에 있는 양방이 합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여도 전쟁의 참혹함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시로 목도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100일을 넘겼을 당시 그 기간 동안 2만 4285명이 사망했고, 이중 어린이가 1만 600명이었다. 매일 100명씩 어린 사망자가 나온 셈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2024년 통계를 보면 어린이 560여 명을 포함해 1만여 명이다. 권력자의 판단이나 욕심으로 인해 국민이 이토록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유럽 사회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사람들의 33퍼센트는 항상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같은 연구에서 독일인은 23퍼센트, 프랑스인은 15퍼센트, 영국인은 14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삶,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폭격'. 이 영화에서 전쟁의 희생자가 되는 아이들 얼굴에 지금 이 순간 죽음의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얼굴이 교차된다.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뒤 가자 지구 교육부는 "학생 대부분의 사망으로 인해 올해 수업 기간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죽음이 일상화된 가자 지구의 아이들은 손바닥이나 팔뚝에 펜으로 제 이름을 적어 넣고 있다. 수시로 벌어지는 공습으로 인해 자신이 사망했을 때 신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니 압도적인 고통과 슬픔, 무력감까지 든다.
덴마크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남쪽, 독일의 북쪽에 위치하며 북해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고 있다. 영화 '폭격'을 이해하는데 덴마크의 지정학적 위치는 도움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는 중립을 선언하며 독일의 점령을 피하게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하는데 길목이 돼줄 덴마크를 1940년 4월 9일에 침공한다. 당시 독일과 덴마크의 전력 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4월 9일'에서 잘 나타난다. 유럽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독일군은 전차를 밀고 들어오는데 덴마크군은 자전거를 타고 전투에 임한다. 개인당 주어진 실탄은 40발. 훈련장에서 쏴 본 사격 경험이 전부인 덴마크군 현실이 당시 상황이었다. 중립을 유지하던 약소국 덴마크는 나치 독일과의 전면전을 감당할 수 없다 판단해 침공 개시 4시간 만에 나치 독일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다.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 당한 첫날의 기록을 영화 '4월 9일'에 담았다면, '폭격'은 종전을 앞둔 1945년 3월 영국군이 나치 치하의 코펜하겐을 폭격한 '카르타고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가 되면 독일은 제공권을 잃어 유럽의 하늘은 연합군 전투기들 차지가 된다. 저공비행을 하면서 지상에 돌아다니는 모든 것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늘을 날면서 지상의 표적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민간인들의 피해가 늘어갔고, 그런 모습이 영화 '폭격' 첫 장면에도 나온다. 결혼 피로연에 가는 세 명의 아가씨가 탄 택시를 독일군이 탄 차로 오인해 영국 전투기가 폭격을 한다. 그 현장을 목격한 소년은 충격으로 말을 못 하게 되고, 전투기에 대한 공포에 광장을 걷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는다.
1945년 3월 21일은 영국군이 코펜하겐에 있는 게슈타포 본부 '셸후스' 폭파를 결정한 날이다. 덴마크 레지스탕스 소탕에 혈안이 된 게슈타포가 레지스탕스 조직을 거의 밝혀내자 덴마크 레지스탕스들이 셸후스 공습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셸후스 폭격은 성공했지만 실수로 수녀회가 운영하는 성요셉 수녀원 병설 학교 건물까지 폭격 임무의 표적이 되면서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로 인해 125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하는데, 이 수녀원 겸 학교에서만 학생 86명, 일반 수녀 및 선생님 18명이 공식 사망을 했다. 그 실화를 담은 영화가 '폭격'이다.
카르타고 작전은 가장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이다. 시속 45km의 속도로 초저공비행을 해서 덴마크의 수도 한복판으로 침투한 뒤 단 하나의 건물만 폭격해 파괴해야 한다. 표적은 코펜하겐의 게슈타포 본부 건물인 셸후스다. 목표는 그들의 기록을 파괴하고 많은 독일군을 죽이는 것이다.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으로 북해를 건너고 머스랭 30기가 호위한다. 폭격은 아침 늦게 실시한다. 가장 바쁜 시간대이므로 많은 적군을 죽일 수 있다.
게슈타포가 덴마크 레지스탕스를 정말 섬멸하기 직전이다. 그래서 레지스탕스 수장들은 몇 달 동안 동지들의 죽음을 무릅쓰고 셸후스 폭격을 간곡히 요청한 것이다. 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다.
영화 '폭격' 중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덴마크 영화 '4월 9일', '폭격', '랜드 오브 마인'에는 전쟁 영화의 일상적이지 않은 공식이 있다. 영웅적 서사나 적군과 아군의 이분법, 애국심 호소 등이 없다. '4월 9일'에선 신속하게 항복해 무기력하게 점령당한 국가를 부끄러워하는 덴마크 군인들 모습이 담겼고, '폭격'에선 오폭으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낸 주범은 전쟁을 주도한 나치군이 아닌 영국군이다. 전쟁의 무력은 적군과 아군,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무고한 죽음을 가져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종전 후 덴마크가 어떤 일을 했는지 고발한다. 영화 속에서 독일군 쪽 얼굴은 무해해 보이는 소년병들이고 피점령국이었던 덴마크 군인들은 보통의 영화에서 게슈타포가 차지하고 있던 악역처럼 그려진다. 덴마크 영화가 덴마크 쪽을 비인도적인 승자의 얼굴로 배치한 설정이 전쟁에선 승자도 패자도 없고, 단지 폭력과 학살의 현장일 뿐임을 각인시켜 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덴마크인들의 80년 뒤인 현재,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불리고 있다. 그 비결이 뭘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말은 세계에서 가장 덜 불행한 나라란 말과 동격이라 한다. 국민들이 극도의 불행에 빠지는 일을 방지해 줄 복지 모델을 제공해 주는 나라. 여기에 덴마크 사람들이 늘 행복한 이유에 휘게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에 더 가까운 휘게는 '느리고 단순한 삶'과 닮아있다. 덴마크인들의 휘게 10계명을 소개해 본다. 첫째, 분위기: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한다. 둘째,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한다. 휴대전화를 끈다. 셋째, 달콤한 음식을 먹는다. 넷째, 평등: '나'보다는 '우리'. 뭔가를 함께하거나 TV를 함께 시청한다. 다섯째, 감사: 만끽하라.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일지도 모른다. 여섯째, 조화: 우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뽐낼 필요가 없다. 일곱째, 편안함: 편안함을 느낀다. 휴식을 취한다.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덟째, 휴전: 감정 소모는 그만, 정치에 관해서라면 나중에 얘기한다. 아홉째, 화목: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관계를 다져보자. "기억나? 우리 저번에....". 열 번째. 보금자리: 이곳은 당신의 세계다. 평화롭고 안전한 장소다.
"행복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작은 친절이나 기쁨 속에 있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생각난다. 덴마크인들의 휘겔리한 삶과 맥이 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