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이소호

그림과 시

by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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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위트 홈 - 이소호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


내 꿈은 가정주부

사계절 일용직

시인은 비정규직이에요

저는 집이 없어요

재산도 없어요

저는 남편을 찾으러 여기 나왔어요


지금 가족은 너무 낡았어요


그러니까 내 꿈은

은퇴 없이 살고 싶어요


말을 덧 붙어야 할까요?


엄마는 주부, 아버지는 교편을 잡고

동생은 호주에서 커피를 내려요


라고 결혼 정보 회사에 솔직하게 썼다


몇 페이지인지 모를 그 남자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이름을 검색했고


도망쳤다


무슨 문장이 그를 달아나게 했을까?


나는


오늘의 진귀한 불행을 잊을까

타자기 앞에 손을 올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는 소리쳤다

딸년은 고고하게 앉아 글이나 쓰고 있는데

내가 저 돈을 다 대야 한단 말이야?


당신도 희망을 버려


아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앞에서 거칠게 거수했고, 모서리를 향해 발길질하겠다고, 겁을 줬다 단지 겁을 줬을 뿐인데 내 펜은 부러졌고, 혀로 휘둘렸다


그날


나는 방 안에 꼼짝 않고 밤새 노안은 절대로 살필 수 없을 만한 크기의 글씨로 빈 바닥을 조용히 채웠다


살려주세요









일상성을 허무는 전위적이고 투쟁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 그녀의 시를 읽다 보면 최승자 시인이 생각난다. 날 것의 감정이 정제된 언어보다 더 강한 망치질을 해줄 때가 있다. 이소호 시인의 펄떡이는 시어가 그렇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집이 폭력을 외면하는 데에서 탄생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 48편을 묶어 '홈 스위트 홈'이란 시집이 발표됐다. "집(house)에 있어도 집(home)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시집에서 시인은 두 단어를 구분 지어 설명한다. "홈(정서적 집)과 하우스(장소로서 집)를 다 누리고 살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두 단어의 결핍과 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너무 당연하게 불렀던 노랫말 속의 '즐거운 나의 집'이 왜 간절한 기도문처럼 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