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큼 어디에나, 자주 등장하는 형식의 매체는 또 없을 것이다. 연예인이 연예 채널에서, 특별한 상을 탄 수상자들이 신문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잡지와 단행본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사람들이 인터뷰이로 소환되는 빈도에 비해 스스로 인터뷰어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로젝트 중에, 다른 일을 하던 중에 인터뷰하게 되는 일은 있어도 인터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드물다. 미란님은 몇 안 되는 ‘자칭 인터뷰어’다.
코로나 때문인지, 세대 문화의 교체 때문인지 회사에 다니지 않는 또래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 불리는 이름과 무관하게, 경제적 가치로 여겨지는 성취와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프리랜서, 백수, … 그들을 부르는 많은 이름이 있지만, 미란님은 그들을 ‘무소속’이라고 부른다. ‘소속’ 앞에 없을 무’ 자가 붙자 조금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소속이 없기 때문에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텅 비어보이기도 한다.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는 이도 많을 터이다.
미란님은 ‘무소속’ 여성의 이야기를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길게 듣고 담아냈다. 자유와 두려움이라는 양가감정을 모두 느낄 여성들의 이야기를 매주 한 편씩 올렸다. 미란님이 스스로 ‘무소속’이 되고 사람들은 어찌사나 궁금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은 여성들의 지지와 공감을 샀다.
“자의든 타의든 무소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저와 마찬가지인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2021 <무소속 인터뷰> 시작을 알리는 글 중)
대뜸 아무런 접점이 없는 미란님에게 메일을 넣었다. 이전부터 미란님의 인터뷰 작업을 잘 보고 있었다, 내가 올해부터 프리랜서 인터뷰어로 살아보려고 한다, 혹시 나와 한 번 만나줄 수 있겠냐, 무지 들이댔다. 당시엔 나 스스로도 왜 미란님에게 연락을 드렸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누구도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기특하게도 내가 미란님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답장은 꽤 시간이 흐르고 왔다. 아프셨다고 했다. 그래도 만나자고 하셨다. 미란님을 만나러 가기 전, 아침에 샤워하며 생각했다. 아프신데도 시간을 내주신 이 마음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않을까? 미란님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모습이 뻔뻔하기 그지 없다. 급작스럽게 만나자고 하질 않나, 만난 당일에 급작스럽게 대화 내용을 녹취해도 되겠냐고 묻질 않나…. 이토록 뻔뻔한 초짜 인터뷰어에게 미란님은 다 내어주셨다. 시간도 내어주셨고, 목소리와 이야기도 담게 해주셨다. 일전에 미란님이 ‘무소속’ 여성들의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든든한 ‘인터뷰어’ 백그라운드가 되어주셨다. 혼자 보기 아까운 미란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몇 자 옮겨 적어본다.
고은 인터뷰 프로젝트는 어쩌다가 시작하게 되셨어요?
미란 반은 생각이 있었고 반은 떠밀렸어요. 이전에 독립서점에서 4년 정도 에디터로 일했는데, 주된 업무 중의 하나가 인터뷰였거든요. 인터뷰가 재밌었는데, 선뜻 혼자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프리랜서의 삶에 대한 책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코로나19와 연봉협상을 거치며 반쯤 권고사직으로 나오게 됐죠. 퇴사한 뒤, 스스로를 인터뷰어라고 자칭하기가 애매한 시간이 있었어요. 저를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었는데 ‘빌라선샤인’이라는 여성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무소속’이라는 표현을 얻게 됐어요.
프리랜서보다 더 중의적인 표현이었죠. 그걸로 나도 설명하고, 비슷한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무소속 여성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비용을 받지도 않지만, 크게 비용이 드는 일도 아니었어요. 체력과 시간만 있으면 됐죠. 하면서 재밌기도 했고 인맥도 넓어졌어요. 2021년에 14명을 인터뷰했는데, 세 분만 알던 분들이고 다른 분들은 생소한 분들이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듣는 게 도움이 많이 됐죠
고은 매주 한두 편씩 인터뷰를 올리셨잖아요. 너무 멋있어요.
미란 아닙니다. 잘 안 보여서 그렇지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인터뷰 한 편을 정리하는 품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어요. 이 인터뷰들을 내 포트폴리오로 쓴다고 하지만, 열 몇 명을 하는 건 좀 무리였던 것 같아요. 돈을 받고 하는 게 어떤 지속성을 위해서도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상반기에 인터뷰 프로젝트를 마칠 즈음 ‘뉴그라운드’에서 제안받아 인터뷰 강의를 진행했어요.(‘한 발짝 곁에 서는 인터뷰’) 그러면서 강의할 때, 인터뷰할 때 이 정도는 받아야 되겠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반기에도 다른 곳들에서 작업을 같이하면서 적정선을 잡았어요. 그래서 저는 건당 30~40만 원 이상을 생각했어요. 만약에 사진도 찍는다고 하면 또 조금씩 달라지겠죠. 고은님도 그런 건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최소한의 선은 있어야 안 지치니까요.
고은 아직 생각 안 해본 부분이었는데 너무 필요할 것 같아요. 2022년 시즌2에서는 어떤 변화를 주셨나요?
미란 다른 데서 하지 않았던 얘기인데, 원래는 시즌2는 유료로 전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30만 원을 지불하고 인터뷰를 할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시즌2까지는 무료로 해보는 대신 후원을 받기로 했어요. 응원 메시지를 같이 보내주신 분들이 더러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소정의 커피 쿠폰 같은 개념이라서 생계유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저는 경제적인 안정이 바탕이 돼야 능률을 내는 사람이거든요.
고은 아무래도... 아르바이트해야겠죠?
미란 저는 서울시에서 청년 수당을 6개월 동안 받았어요. 퇴직금도 있었고, 하반기에 인터뷰 의뢰가 들어와서 그렇게 일 년을 유지했어요. 문화재단 같은 데서는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할 때 인터뷰가 필요하니까요. 빠르면 8, 9월 못해도 10월에는 그런 제안이 들어와요. 그러니 내 기획을 만들고 싶으면 상반기에 하는 게 좋죠.
고은 그럼 이제 미란님의 프리랜서 인터뷰어로서의 삶은 일단락 된 걸까요?
미란 그렇다기보다는 무소속이 아니게 된 거죠. 조직 생활을 하면서도 인터뷰 역량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직무는 마케터인데, 인터뷰도 할 것 같아요.
고은 인터뷰하면서 어떤 때 제일 힘드세요?
미란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좀 해본 사람이 오히려 어려워요. 인터뷰가 생소한 사람은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드리면 얘기 듣는 게 어렵지 않은데요. 오히려 해봤던 사람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확 닫혀버리니까, 그게 좀 힘들었어요.
인터뷰할 때 여러 과정들이 있잖아요. 처음 연락할 때, 만나기 직전에 연락할 때, 만나서 제스처를 보이면서 얘기할 때, 어떤 표현을 쓸 때, 초고를 보낼 때 등등. 그런 순간순간마다 마음을 열게 하는지 닫히게 하는지 결정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서점에서도 많은 분을 인터뷰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만약 이 사람의 방향과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판단이 들면 일차적으로 조율을 하고, 그게 힘들다 싶으면 저는 거기까지만 하고 접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일 수도 있으니까요.
고은 저는 지금까지 제가 알던 분들을 인터뷰해서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마음이 닫힌다는 게 큰 문제이긴 하겠네요.
미란 생판 남에게 얘기해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 보면 좀 싫을 수도 있잖아요. 이슬아 작가를 보면 본인이 꾸준히 봐왔거나 엄청 좋아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더라고요. 여건만 되면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서로 할 얘기가 있고, 듣거나 말할 자세가 되어 있는 인터뷰가 베스트죠. 인터뷰하시면서 좋은 경험들을 많이 쌓고, 만약 인터뷰어로서 좀 더 넓혀가면서 어떤 분야는 재밌고 어떤 분야는 어려운지 가늠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고은 인터뷰하시면서 제일 좋은 건 뭐예요?
미란 제가 배울 수 있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재밌었던 작업은 2021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36ways>인데요. ‘생활을 바꾸는 예술’이라는 주제로 재단의 지원을 받은 36개 팀을 인터뷰하는 거였어요. 코로나 상황과 비용 문제로 서면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받았는데, 하다 보니까 각자 다 개성이 있고 재밌는 내용이라 예상보다 품을 더 들였어요.
한 번은 담당자분한테 물어봤어요. 저를 어떻게 알고 연락주셨냐고요. 지인 분이 저랑 커뮤니티에서 같이 활동하셨대요. 혹시 모르니 고은 님도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시면 연락이 좀 오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한 자리를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고은 허걱 감사해요! 너무 좋은 방법이네요. 혹시 미란님 하고 싶으신 인터뷰 있으세요?
미란 개인적인 바람 같은 건데요. 가족사를 인터뷰로 남기고 싶어요. 저는 할머니-아빠-저라는 삼대에 걸쳐서 이어지는 무언의 줄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좋은 것이기도 하고, 좋은 자산이기도 한데,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면 그걸 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엔 저를 더 알고 싶은 거죠.
고은 스스로 인터뷰어라고 칭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미란 그래서 저는 여성 인터뷰라면 한 번씩은 들여다봐요. 인터뷰 콘텐츠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아마 인터뷰어라고 스스로 소개하시는 분은 황선우 작가 정도이지 않나 싶어요. 근데 제가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죠.
저는 그런 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인터뷰어라고 소개하는 분이 적은 게, 인터뷰 프로젝트들이 일회성이 많아서 그런 것 같거든요. 시즌을 이어올 수 있다면 그분들도 스스로 인터뷰어라고 생각할 텐데요.
고은 꽤 많은 여성분들이 구술 생애 쪽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미란 여성이 듣는 데 특화가 돼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저는 제가 구술생애사를 평생 한다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구술생애사는 저에게 좀 더 묵직한 느낌이 들어요. 외부에서 자료를 수집한다기보다 오랜 기간 서로 부대끼면서 알아가는 거잖아요. 한두 번 만나는 인터뷰가 나에게는 적당한 깊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또 강의하면서 깊어진 생각인데, 인터뷰를 글쓰기 스킬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싶어요. 예를 들면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마음, 듣겠다는 태도만 있어도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는 그 정도 거리가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인터뷰하면 어느 정도 친분이 있더라도 경어를 쓰게 되고 평소에 하지 못하는 거시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요. 혹은 뻔한 질문인데도 이 사람에게 하기 때문에 의미가 생기는 질문들도 있잖아요. 평소에도 이 사람과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보면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고은 인터뷰 콘텐츠를 좋아하시는 독자로서 어떤 인터뷰가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하시나요?
미란 인터뷰이가 더 궁금해지는 인터뷰가 아닐까요? 일차적으로는 그렇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표현이 남다르게 보이는 인터뷰요. 그 사람이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인터뷰어의 표현일 수도 있고요.
또 인터뷰 과정이 궁금해지는 인터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요. <조선일보>에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연재 인터뷰가 있는데요. 그분도 여성 인터뷰어에요. 그걸 보면 어떻게 글을 이렇게 정리하지,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또 황선우 작가의 인터뷰도 이걸 몇 시간 동안 어떻게 진행했을까, 그런 게 궁금해요.
고은 미란님은 언터뷰 과정 중 어떤 걸 제일 중요하게 여기세요?
미란 저는 마지막에 기록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요. 현장이 제일 잘 보이고 인터뷰라면 그거밖에 없는 것 같지만, 사실 현장 비중은 20%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담아낼 때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떤 걸 잘라낼 것인지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인터뷰가 인터뷰이에게 독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걱정된다 싶으면 초고 보낼 때 많이 물어봐요. “이런 표현 나가도 괜찮나요? 아니면 다듬는 게 좋을까요?” 괜찮다고 하면 그냥 가고, 설명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면 괄호에 그 내용을 넣거나 하죠.
미란님은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하며 인터뷰어로 돈 버는 법에 대한 조언은 해줄 수 없겠지만, 버티는 법에 대해서는 얘기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바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내 선배다.’ 나에게 진심을 내어주는 선배, 과감하게 자신의 상황을 공개하고 솔직하게 고민을 나누어주는 선배.
인터뷰어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나 인터뷰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미란님은 가로등이 되어주었다. 아무리 직접 밟고 겪어야 할 길이더라도, 너무 새까만 어둠에 가는 걸음이 더뎌지고 마음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럴 땐 가로등 하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우뚝 서 있는 불빛이 그 길이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 아스팔트인지 자갈길인지, 움푹 파인 곳이 있는지 불룩 솟은 곳이 있는지 비춰줄 수 있다. 나는 미란님이 켜둔 꽤 많은 가로등에 의지하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인터뷰어, 에디터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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