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인>
1.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태민을 아십니까. 저는 사실 그의 몇 년 묵은 묵은지같은 팬... 그가 출연하는 예능을 본방사수 한다든가 하는 적극적 덕질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서도 좌심실 한 켠은 항상 그를 위해 공실로 비워둔 초소극적 덕질을 지속하는... 한 떨기 미세미세 미세먼지같은 팬입니다.
2.
초졸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알아왔기 때문에 (방송용의)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며칠 전 친구로부터충격적인 의견을 들었습니다.
태민은 거친 매력이 있는 사람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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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실 MOVE나 WANT같은 그의 꿀렁섹시한 최근 솔로 행적을 본 사람이라면 이 의견이 그렇게 놀랍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는 일련의 역사 속에서 이해되는 사람. 누난 너무 예쁘다고 바가지를 찰랑이며 데뷔한 중딩, 사랑하는 이를 줄리엣이라고 칭하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겠다 한 고딩, 달빛 퐁듀에 너무 아름다운다운다운다운 뷰를 외친 고졸의 연속선 상을 함께 해 온 저에게, 태민은 천년만년 만세억세 순수청순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거친 매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의견이 너무나 어색했던 거예요.
5.
하지만 저런 과거를 모른 채 최근에 태민을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제가 주구장창 열거한 저 이미지들이 더 낯선 것들일 겁니다. 어떤 한 대상을 너무 오랫동안 너무 가까이에서 볼 때 발생할 수 있는 맹점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시각에 둔감해지거나,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이해하게 되거나.
6.
<한국, 한국인>은 36년 째 서울에 살면서 한국을 관찰한 영국인 기자의 한국 분석서입니다. 36년이라 함은 이 글을 쓰는 한국인인 저보다 한국에 더 오래 체류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자는 기자답게 한국을 외부인의 시선에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분석은, 제가 미처 포착해내지 못했던 나와 내 주변인과 내 국가에 대해 명징한 텍스트로 구현됩니다.
7.
사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이라는 기획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명절 때만 되면 외국인 며느리 앉혀놓고 한국살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읊게 하는 공중파 특집 예능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된 한국의 유구한 전통(?)이 되었고, 비정상회담, 대한외국인, 현지에서 먹힐까?처럼 외국인X한국의 기획은 방송가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고요.
8.
상기의 콘텐츠와 구별되는 이 책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국민정서에 대한 외부적 시선'입니다. '국민정서'라는 개념은 사실 태민처럼 저에게는 너어무 익숙한 개념입니다. 국민정서를 반영한 정책, 국민정서를 반영한 판결, 국민정서를 반영한 태민. 마지막을 제외하고 앞의 두 문장은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 들이밀어도 어디서 한 번은 봤다는 답변이 돌아올 겁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국민정서의 본질을 '야수'라고 보네요.
9.
박근혜의 탄핵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 국민정서는 이렇습니다.
"박근혜가 실제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 외국언론은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보도했다. (...)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처럼 법에 기초했었다면 조사과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 그녀의 급속한 몰락은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법보다 중요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국민이 분노했다는 사실이었다"(415). 이렇게 써놓고 보니 몇 주 전 논란이 된 국내 모 정치인의 주장과 유사한 부분이 보이지만,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절차의 적법성'이 아닌 '국민정서의 파괴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10.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해 한국 국민이 특정한 감정을 폭발적으로 갖고 있을 때, 정부는 검찰이든 재벌이든 그것을 거스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은 차라리 "끝나기를 기다릴 수는 있어도 맞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국민정서는 민주 한국의 신"(482)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와 최순실의 범죄 사실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탄핵이 결정될 수 있었고, 기업가가 국민이 동의하는 불유쾌한 이슈에 휘말렸을 때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보다는 소요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11.
이런 분석의 바탕에는 "국민정서는 여론과 국민보다 상위에 있다"(481)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국민정서와 여론과 국민을 분리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국민정서'의 개념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던 저로서는, 이처럼 한국의 국민정서를 대단히 파괴적으로 보는 동시에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이 꽤 신선하고 낯선 관점이었습니다. 이 관점이 타당한 분석인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국민정서의 개념 혹은 그에 준하는 개념이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12.
이 책은 너무 가깝고 너무 오랫동안 봐왔던 대상,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가 어려운 대상을 새롭게 보기에 '외부인의 시선'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는 걸 다시 알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시야를 무진장 택한다고 해도 저한테 김치 접시는 항상 김치 담은 접시였지, "사용하고 난 붕대를 담아놓은 접시"(439)처럼 보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충격적이고도 새로운 김치에 대한 묘사라 글의 제목으로도 쓰고 계속 계속 머리에 남아있지만 이건 체화하기 너무 힘듭니다. 아무리 새롭게 태민을 바라본다 한들 그를 두족류로 바라보기는 힘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