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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Apr 12. 2019

너무 찌질해서 징그러운 만화

<아티스트>


"만화 중에도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마영신, 기선, 일본 작가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을 추천한다."



엄마가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고, 아니 얘가 미쳤나? 라는 질문에는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고 했던 이 미친 칼럼...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칼럼과 그간의 글을 모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맨 처음 인용한 말은 이 책에서 김영민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했던 작품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 이건 무슨 사람이지? 얼른 이해가 안 돼서 '스스로'의 반의어를 넣어봤습니다. 남이 시켜서 생각하려는 사람? 아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수업 중에 교수님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어버법 하며 답을 쥐어짜내는 나는 남이 시켜서 생각하려는 사람이고, 어버법 하는 나를 보며 인간은 당황하면 왜 어버법 소리를 내는가, 어버법은 만국 공통의 의성어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려는 사람인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김영민 교수가 첫 번째로 추천한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는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아주 많이 주는 작품입니다. 안 팔리는 소설을 쓰는 44세 남자 소설가, 이혼한 46세 미술 시간강사, 무명 42세 남자 뮤지션. 특이하게도 40대 남성들이 주인공인 이 만화는...

진짜...도저히 두 눈 제대로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찌질합니다.




제가 즐겨보는 웹툰 중에 반려동물 일상툰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 고양이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독후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죠. 이런 독후감이나 이런 작품이 별로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소중합니다. 하루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람에게 읽는 동안 귀여운 기분을 들게 해주는 이런 작품은 정말 필요합니다.


<아티스트>는 오히려 독후감 측면에서는 이런 웹툰보다 별로입니다. 정말이지 뒷맛 구린 독후감이 들어요. 술처먹고 성추행 하는 주제에 치명적인 척 하는 42세는 기가 막히고, 남의 공연장에서 니가 맞네 내가 맞네 말싸움하는 44세는 측은하고, 자기 엄마가 준 밥 남겼다고 아는 동생 쪽 주는 46세는 대체 뭐하는 새끼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찌질함에 몸서리치면서도 저는 매주 화요일마다 이 만화를 꼬박꼬박 봅니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봤는데 교수님께서 멋지게 포장을 해주신 걸 보고 납득했습니다. 이 만화는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찌질한 현상을 전시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만행들 말고도, 악수하는 척 은근히 성추행하는 새끼, 세상 로맨티스트인 척 하면서 섹스 파트너 만드는 새끼 등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걸 너무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바람에 만화의 내용과 상관 없는 것들을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찌질이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찌질이들이 되는가, 대학생 때 알았던 그 베이시스트는 이 주인공같은 마인드로 그딴 찌질이 짓을 한 거였나, 왜 특정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이런 찌질이같은 특징이 종종 발견되는가 등등.


그 중 가장 꾸준히 깊게 스스로 드는 생각은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찌질이었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왠지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저런 꼬라지를 누군가에게 보였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 뒤에 드는 생각은 자기검열입니다.


'나도 찌질한가?'


만화가 생활 속 찌질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투영하게 되고, 내 안에 저런 찌질은 없었나 확인하게 되고, 내가 그 때 했던 행동이 사실 이 새끼들의 알고리즘에 부합하는 것이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불편한데도 자꾸자꾸 생각이 듭니다. 이 찌질이 내 찌질이냐 저 찌질이 내 찌질이냐. 그리고 이런 자기검열 뒤에는 다짐하게 됩니다.


어쨌든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재밌는 만화고 드는 생각도 많고 던지는 질문도 많은 만화입니다. 하지만 절 계속 따라다니는 독후감은 아무래도 이거네요.


진짜...

곧 죽어도...

정말 적어도....

저 새끼들처럼은 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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