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놓고 생각하는 여행을 떠났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너무 똑똑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유독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이도 저도 아닌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매사 진짜 최선을 다했나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은 안다.
매사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항상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서 핑계거리를 찾았다.
똑같이 직장일을 하는데
회사일만 하는 남편이 너무 밉고 싫었다.
내 앞길을 다 막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억울했다.
회사에서 윗 상사는 존경할 수 없고,
멘토가 될 만한 상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은 못하고, 윗 상사들 비위 잘 맞추는
직원들만 승진이 되는 회사 시스템을
욕하고 또 욕했다.
직장, 육아, 가사에 지친 나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핑계로
육아휴직을 쓰고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동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가는 그 길에 나는
엄청 엄청 울었다.
나 자신이 당당하지 못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이 상황을 내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는 내 자신이
내 모습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아이와 함께 발리로 떠났다.
짧은 여행이 아닌
한 달 살기라는 이름으로...
발리에서 지내는 한 달이란 시간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낯선 도시,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와 둘만이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나는 아이와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대신
동네를 산책하고,
숙소 근처 현지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멍을 때렸다.
아이와 길을 걸으며 꽃을 보고,
짜낭사리를 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다.
신발을 신지 않고 돌아다니는 건
너무나도 흔한 일...
'발리에서는
나시고랭, 미고랭, 나시짬뿌르
이런 음식이 왜 유명한 걸까?'
'사람들은 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신에게 공양을 하는 것일까?'
'발리 전통 공연, 춤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발리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아이와 한 달 동안 발리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며
보고, 느끼고, 대화한 것들이
아주 생생하다.
일상에 치여, 매일 찌들어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가
나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었던 내가
낯선 도시, 새로운 환경에 오니
모든 게 새롭고, 내 감각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기가 있어 보였다.
아이도 책이 아닌
거리에서 호기심을 발견하고,
아이의 관심사가 생기고,
질문을 하는 모습,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를 일으켜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구나...
낯선 환경이 날 다시 살아있게 만들고
숨 쉬게 만들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구나...
무리해서라도 오길 잘했다.
그리고 더 자주 낯선 도시로
떠나야겠다.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받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