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잘 달려 봅시다.

병오년, 붉은 말의 해

by goeunpa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새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봄의 시작과 함께 한 해의 본격적인 시작은 3월인 듯한 느낌이 들어요.

늘 그렇듯 시간은 지나고 나서 보면 어쩜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습니다. 작년 한 해 역시 그랬습니다.

'거창하게' 나라의 사정부터 언급하자면,

'24년 12월의 충격적인 정국으로 인해 '25년 내내 온 국민이 매우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 해의 절반인 6월부터 한 조직의 장을 맡게 되면서,

온갖 이슈에 대응하느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어요. 역시 어딜 가든 사람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 얘기는 하다 보면 끝이 없을 듯합니다. '할말하않'이에요.


결국 이런저런 이슈로 이제야 새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변명이고 저의 게으름을 길게도 설명했네요.

2026년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합니다.

매해의 시작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다짐을 해봅니다만,

지키기가 왜 이리 힘들까요. 그럼에도!

올 한 해는 붉은 말의 힘을 빌려 잘 달려 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말은 개와 소, 돼지 등과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입니다.

다른 가축들보다는 다소 늦은 기원전 3,500년 전부터(혹은 이보다 더 오래전으로 보기도 합니다) 가축화가 진행되어 산업혁명 이전까지 긴 시간 동안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힘이 좋은 교통수단이자 운송 수단, 때로는 군수 물자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재산이었어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말의 뼈는 기원전 약 3만 년 전의 것으로, 상원 검은모루 동굴 등의 구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부터는 말이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대표 구석기 유적 중 하나인 연천 전곡리 유적 전경(자료 국가유산포털)

때로는 신령스러운 사건을 전하는 메신저의 모습으로,

때로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충직한 모습으로,

역사 속에서 말은 인간과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에피소드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볼까요?


말이 신령스러운 영웅의 탄생을 알려주는 메신저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신라의 건국 신화입니다. 신라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신라 제1대 왕, 재위 기원전 57~기원후 4년)의 탄생 순간을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고허촌의 우두머리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의 기슭을 바라보았다. 나정蘿井 옆 숲 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기에 가서 살펴보니 홀연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와 거두어서 길렀는데, 나이 십여 세가 되자 쑥쑥 커서 남들보다 일찍 성인의 모습을 갖추었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1

경주 나정 내부 전경(왼쪽), 경주 나정 건물터(오른쪽) (자료 국가유산포털)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비슷한 내용의 혁거세 신화가 실려 있습니다. 두 역사서의 차이점이라면 『삼국유사』에는 '이상한 빛과 기운이 땅에 드리웠다', '말이 사람들을 보고 길게 울부짖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등의 신비로운 서술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관찬사서로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하에 쓰였기 때문이에요.*2 신이로운 이적異跡을 전하되 그 표현은 최대한 절제한 것이 느껴지죠.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고구려 제3대 왕, 재위 18~44년)의 명마 거루駏䮫 역시 매우 신비롭습니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내용을 한 번 볼까요?


대무신왕 3년(20) 가을 9월 왕이 골구천에서 사냥하다가 신마(神馬)를 얻어 이름을 거루라 하였다.

대무신왕 5년(22) 봄 2월 왕이 부여국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중략) 골구천의 신마와 비류원의 큰 솥을 잃어버렸다.

대무신왕 5년(22) 3월 신마 거루가 부여의 말 100필을 거느리고 함께 학반령 아래 차회곡으로 왔다.*4

대무신왕과 거루의 만남을 전하는 『삼국사기』 대무신왕 3년의 기사 (자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대무신왕은 그 거창한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즉위 후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부여를 굴복시키고 그 외 주변 세력에 대한 활발한 정복 활동을 전개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넓혔던 정복 군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고구려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는 등 다양한 치적을 남겨 강대국 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처럼 영웅의 풍모를 지닌 인물에게는 어김없이 신마(신령스러운 말)가 함께 했죠. 대무신왕 역시 '거루'라는 신마를 거느리고 여러 업적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거루의 놀라운 점은 치열한 전투 중에 주인을 잃어버렸음에도 다른 말 100필을 거느린 채 주인에게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거루의 신령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그 주인인 대무신왕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또한 부여의 여러 말을 통솔하는 거루를 대무신왕이 차지하는 사건은 고구려가 부여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는 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죠. 전근대 역사서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그 표면적 서술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보게 하거든요.


고려 무인 집권기 관리이자 문인이었던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 전하는 김유신金庾信과 그 애마의 일화 역시 매우 유명합니다.

젊었을 적 김유신은 기녀 천관天官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장차 큰 일을 해야 하는 아들이 자칫 술과 여자에 빠져 수행을 소홀히 할 것을 염려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萬明夫人은 엄하게 훈계하였고, 김유신은 다시는 그 여자의 집에 가지 않겠다 맹세를 하였죠.


하루는 김유신이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평소 자주 가던 길을 기억하고 있던 김유신의 말은 천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김유신이 온 것에 반가움과 원망이 섞인 채 마중을 나온 천관의 눈앞에서 김유신은 상황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말의 목을 가차 없이 베고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죠.*3

(말이 무슨 죄가 있다고...)

훗날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옛사랑을 생각하며 그녀가 살던 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천관사天官寺라 했다고 전합니다. 현재 경주에 전하는 천관사지天官寺址가 바로 그것입니다.

경북 경주시 교동의 천관사지.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일화는 김유신의 결단력과 결의를 보여주는 사례로 흔히 회자됩니다만,

실상 김유신의 말은 천관을 그리는 주인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꿰뚫어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린 김유신은 차마 자신 스스로를 벌주지 못하고 애먼 말의 목을 베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황새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뱁새의 짐작일 수도 있겠네요.




저의 하나뿐인 보물이 3월부터 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부모가 되었고요. :-)

그간 품 속의 작은 세상에서 지내던 그녀의 앞에는

훨씬 다채롭고 넓은 세상이 펼쳐지겠지요.

그 안엔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이 공존할 테고요.

그녀에게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녀의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롯이, 전적으로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엄마와 아빠가 있음을 기억해 주기를.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우리 모두의 시작도 응원합니다.


2026년, 파이팅!




*1) 『三國史記』 卷1, 新羅本紀1, 始祖 赫居世 居西干.

*2) 술이부작述而不作: 옛 일 그대로 기록할 뿐, 창작하지 않는다.

*3) 『破閑集』 卷中, 金庾信鷄林人, 事業赫赫, 布在國史中.

*4) 『三國史記』 卷14, 高句麗本紀2, 大武神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