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이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위를 그만두기로 했다.
일년전 오늘 쯤, 어제까지 같이 다정하게 치즈케익을 나눠먹던 친구에게 비건을 선언했다. 순간 친구의 얼굴은 놀라움과 어리둥절함 그리고 일종의 배신감으로 일그러졌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먹는 즐거움을 버릴 수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더 이상 혀끝의 즐거움이 나의 귀와 눈을 막지 못한다는 것.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도화선이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일년 전 보게 된 중국 모피산업에 대한 짧은 영상이었다. 한동안 재미있게 본 미드 뉴스룸 Newsroom에 나오는 올리비아 문 Olivia Munn의 나레이터로 시작된 PETA 영상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함이 담겨있었다. 최고급 털을 가진 포유동물로 알려진 여우, 토끼, 너구리, 밍크 등이 몇 뼘되지도 않은 지저분한 동물에서 꺼내져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가죽이 그대로 벗겨진 동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멍한 눈빛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이보다 더 끔찍하게 다가온 건 그 옆에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무표정하게 가죽을 벗겨내는 사람이었다. 난 피로 얼룩진 가죽 없는 동물들의 살보다, 그 일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내는 손놀림에 더 큰 공포를 보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아무런 의식 없이 가죽이 벗겨져 죽어가는 동물을 옆에 두고 웃고 마시고 먹는 인간들의 서늘한 무관심 말이다.
https://www.peta.org/videos/olivia-munn-exposes-chinese-fur-farm-cruelty/
(이러한 영상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보통의 끈기와 노력 그리고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영상은 중국의 모피산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목격한 그 서늘한 끔찍함은 아직 동물복지에 관심이 없는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지내는 핀란드를 포함해 전 세계 가죽산업에 손을 대고 있는 나라에서 모두 목격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동물은 죽으면 가죽이 수축을 해서 손쉽게 벗겨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피 제작 업체를 이 방식을 택한다. 가죽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동물을 기절시킨 후 산채로 껍질을 벗겨버린다. 혹은 여우 얼굴이 꼬리를 물고 있는 디자인을 제작하기 위해 있는 눈, 코 부분까지 그대로 벗겨내는 기술을 발휘하기도 한다.
(동물권리가 강한 핀란드라고 모피를 생산하는 동물들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핀란드 사람들은 모피에 관심이 없다. 다만 북유럽으로 몰려드는 아시아 관광객의 수요로 인해 몇몇의 모피업체가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출처. Nordic Fur Trade - Marketed as responsible Business by NOAH for animal right, Animlaia, Fur Free Alinace)
이런 장면을 직접적으로 본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환경에 관심이 있고 동물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 조차도 일 년 전 처음 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직접 영상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먹고 입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식탁과 옷장에 도착하는지 과연 정말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손가락 가죽까지 그대로 남겨진 밍크 목도리와 온몸을 덥고도 남을 크기의 모피, 모든 슈퍼마다 냉장고를 꽉꽉 채운 우유들, 골목마다 존재하는 치킨집. 우리는 이 과정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누구라도 이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 몇 초만 생각해 보아도 동물이 어떻게 우리 식탁, 옷장까지 왔는지 어렴풋이 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혹은 인류가 개발한 눈부신 정보공유 기술로 단 10초 만에 답을 구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무관심할 뿐이다. 혹은 자신들의 미용과 즐거움을 위해서 사실을 판단하는 감각을 제한하고 동물들이 처해진 사실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내가 비건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비인간적인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나의 먹는, 입는, 보는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무관심으로 덮어 버렸던 진실을 파헤쳐 마주하고, 동물을 포함한 타인의 고통에 더 많은 반응을 하기 위한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인간은 원래 고기를 먹고 동물을 입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라고. 하지만 과연 위의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 과정일 정말 인간적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몇백 년 전 사냥을 해 겨우 잡은 곰의 가죽을 벗겨 겨울을 견디는 것과, 한 겨울에도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는 한국에 살면서 동물을 산채로 벗겨내 만든 모피를 구매하는 것이 동등하게 ‘인간적인’ 행위라고 정당화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게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위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