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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중년! 이곳은 지금 나의 공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y Choi

중년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거울 속 나의 모습. 흰머리가 희끗희끗, 뿌리부터 마치 눈이 덮인 산둥성이 마냥 흰머리가 소복이 덮여있다. 코비드 19 이 던지고 간 14주간의 외출금지 덕분에 얻은 외모랄까. 슈퍼에서 갈색 염색약을 구입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뿌리쪽 흰머리에 꼼꼼히 염색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귓뒤와 앞 머리쪽으로 덮치기 시작한 흰색머리를 꼭꼭 숨기기 위해 열심히 빗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새치 염색 정도야 이젠 집에서 한 번에 한다. 뭐 약간 얼룩 질 수도 있고, 아랫 머리색과 윗머리 색 밝기가 약간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딱히 개의치 않는다. 진정한 아줌마가 되었다는 뜻이다. 또 한편으로는 외모가 나의 인생을 좌지 우지 하지 않는 다는걸 알기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20대 30대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내 가 거울의 반대편에서 나와 대면하고 있다. 그렇다고 뭐 딱히 20대 30대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지금 단지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단녀가 되어 버린 듯한 불행,슬픔, 괴로움이 한꺼번에 다 밀려오고 있는 서글픈 느낌이랄까.


의사 선생님께서 '갱년기' 는 아니라고 하셨다.


근래에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 하면서 마음이 충만되는 느낌을 받았다. 연필을 손에 쥐고 꾹꾹 눌러 쓰는 재미에 빠졌다. 그림도 함께 그려넣었다. 유아틱 하지만 하나뿐인 나의 기록장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나만의 공간에 글씨를 적으며 희열을 맛보았다. 내친김에 저렴한 만연펜도 장만 했다. 깔별로 구매하고 싶은 욕망을 꾹 삼켰다. 우리집 꼬맹이가 자기것마냥 꿀꺽 삼킬게 뻔했기 때문이다. 식탁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나의 공간에서 멋지고 세련된 글을 한번 적어보고 싶다. 더불어 하잘것없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사람에게 도움까지 줄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싶다. 그렇게 꿈이 생기게 되었다.


과연 40 대란 무엇인가? 40대는 이른바 중년이다. 인생 40은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志于學), 30세에 주체적으로 자립했다(而立). 40세에 이르러서는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50세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 말 중에서 '불혹'이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안 40대 중년의 대명사로 인지돼 왔다. 어느 학자는 이를 공자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풀이했는데, 이를테면 40대가 가장 흔들리고 미혹(迷惑)되는 시기이므로 경계하라는 뜻에서 불혹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다.

<중년의 사회학에서>




난 지금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100세 시대라하니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데. 그럼 나의 현재 나이는 35세? 캬~ 상상 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비록 숫자에 불과 하다고 하지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이란 것을 가끔 망각하기도 한다. 뭐 요즘은 책도 많이 읽고 또 유튜브라는 매개체 덕분에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층도 많다.




요즘 나의 상태를 지켜보면 더 이상은 외부 세계에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책을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닥치는 대로 읽고, 알고 싶은 정보를 찾아 인터넷 플랫폼을 휘젓고 다닌다.


아줌마 정신으로 글쓰기 카페에 가입을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다고 과감히 들이대다 몇백만원 내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되었다. 동떨어진 이곳에 오래 머물긴 했나보다. 이곳은 베트남 호치민이다. 2020년이지만 이제서야 지하철 공사가 한창중이고 대중교통보다 자가 오토바이가 큰 도로를 꽉 채운 1900년도 시대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한번 비가 오면 쪽배를 타고 다닐수 있을 정도로 시내전체가 물바다가 되는 곳이다.


아이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지만 무모한 시작이라도 우선 해보려고 노력한다. 나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중년의 나이에 가장 흔들리는 나이이기 때문에 무식할 정도로 배우고 익혀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한다. 발자국만 간신히 한발짝 내디뎠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생의 절 반 정도를 살아본 경험으로 계속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점을 찍다 보면 그 점들이 가르키는 곳이 나타난다는 것을 이젠 안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 뚜벅 뚜벅 걸어갈것이다.


이 공간이 내가 만든 공간이라면, 난 재정비를 해야만 하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야만 한다. 죽는 날까지 즐겁게 나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 노후대책? 아니. 아니다. 돈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내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엄마로써 주부로써가 아닌 나를 위한 공간이 절실하다. 일생의 모든 터닝 포인트는 몸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겨난다 했다. 다른말로 몸이 움직여야 마음이 따라 온다는 말이다. 이전 '신기율'작가님 방송에서 들은 말이다. 가슴에 울림을 준 글이다 보니 항상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귀찮은 일이나 번거로운 일 가끔 운동이 가기 싫을때 종종 떠올리는 글귀이다. 몸이 움직여야 마음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이 글귀는 나에게 좋은 습관을 가져다준 글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시작한 새벽 기상. 새벽 4시 30분. 기상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새벽의 동이 터오르는 태양의 빛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옆에서 윙윙 거리는 모기 때문에 가끔 5분 명상 시간이 실패할 때도 있지만, 새벽 기운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들인 하루의 시작은 경쾌하고 즐겁다. 동트기 전 베란다 발코니에 캠핑 의자를 놓고 주로 책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희열이 올라온다.


아이도 자고 남편도 자고 아파트 주민이 다 잠든 새벽의 적막은 나의 일상에 콩꼬물같은 존재다. 작은 도료뇽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깰때도 있지만, 두 눈을 부릅뜬체 '쉿'소리 한번에 도망치고 만다. 5시 20분 정도가 되면 옆집에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분이 아침마다 런닝을 나오신다. 아마 그분은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을것이다. '도데체 저 여자는 머리는 산발을 한체 이 꼭두 새벽부터 무얼 한다고 저 베란다에 나와 앉아 있을까?' 가끔 아저씨가 조깅을 하다 흴끗 처다보면 나와 눈이 마주 칠때도 있다. 그럴때면 난 정말 너무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다. 폭탄 머리를 한체, 옷은 환상의 조합으로 옷걸이에서 대충 주워 입었다. 노랑바지에 분홍 줄무늬 티를 입고있다. 거기다 모기 때문에 두꺼운 양말을 신고있다. 살짝 정신 나간여자처럼 보일수도 있겠다. 집도 2층이라 아랫층에서 훤희 잘 보인다. 뭐 그러던가 말던가. 그냥 그렇게 나의 새벽 시간은 그 옆집 아저씨가 나오기 전까지 고요하다.


< 호치민 새벽 5시 5분정도>




나의 친구인 맥심 커피는 맥심 커피 자리에, 커피 컵은 컵보드 안에, 냄비는 냄비 수납장에. 다들 제자리에 잘 들어가 있다. 주부가 되고 나서 주방은 나의 공간이 되었다. 빨간 목욕탕 의자를 가져다 놓고 다리가 아플 땐 냉장고 옆에 잠깐 기대어 앉아 달달한 맥심 커피 한잔을 마시기도 한다.


30대와 40대 중년 삶을 베트남에서 보내고 있고 지금 마치 제 2의 사춘기를 겪는 젊은이처럼 호되게 앓고 있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은 내가 '왜 여기 이 개발도상국에서 문화생활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나?'라는 옹졸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잘 알지도 못하는 전생을 나무라기까지 했다. ‘분명 전생에 난 베트남 민족이었음에 틀림없어’라고 말을 툭 내뱉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신랑이 씩 웃었다. 참 많이 울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난 더 여유롭고 큰 사람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이곳과 인연이 닿아 살게 된 나의 운명을 지금은 두 팔을 쫙 벌려 안아줄 만큼 사랑한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집에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는 10살짜리 아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떤 계절인지잘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봄을 탄다거나 가을을 느끼며 고독을 줄기거나 할일이 없다. 그 아이에겐 더운 여름, 비 오는 여름, 조금 추운 여름, 무더운 여름. 비옷은 필수. 계절이란 이런 개념이다.


하지만 호치민에서 최고의 초등 학생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 같은 한국 입시 교육 보다 이곳 학교에서 강조하는 인생철학이 담긴 교육이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시간 관리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강조 하는 학교다. 요즘은 한글 공부 때문에 국어 책을 매일 읽고 있지만 아직도 영어가 더 편한 그 아이에게 언젠가는 한국에서의 삶도 알려주고 싶다.


공자의 말 중 50세에는 ‘천명을 얻었다’ 했다. 앞이 뿌옇고 어두 캄캄하여 잘은 보이지 않으나 뚜벅 뚜벅 나의 걸음걸이에 맟추어 걸어 나간다. 천천히, 죽음을 마주하는 나이가 올 때까지 책과 함께 가보려 한다.




들꽃처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돌 뿌리 옆에서라도 올라오듯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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