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 -법정 스님
나마스테 -'나는 당신에게 마음과 사랑을 다해 예배드립니다.'의 뜻을 지닌 힌디어이다.
요 며칠째 책꽂이를 정리 중이었다.
학교도 계속해서 휴교령중이고 아이가 읽을 책, 중고로 넘길 책 등을 정리하던 중 법정 스님이 저자인 '인도 기행'이라는 책이 먼지가 뽀얗게 싸여 툭툭 털다 그 자리에서 쪼그린 상태로 책을 드문드문 넘겼다. 그리곤 곧 철퍼덕 주저앉아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되었다. 1991년에 초판이 나왔고 난 이 책을 1996년 2판 6쇄 본을 구입한 것 같다. 연도를 보니 대학교 때 구입했었던 거 같다. 참으로 오래된 책이구나 싶었다. 책장을 쓱쓱 넘겨보았다. 스님의 부드러운 문체에 매료되어 마치 늪에 서서히 빨려 들어간듯 이 '인도 기행을' 느닷없이 읽게 되었다. 책에 몰입도는 엄청났다.
많은 책들을 읽고 있지만 글쓰기 연습을 하다 보니 책을 읽는 관점 역시 틀려지고 있다. 스님은 현란한 어휘나 복잡하고 세련된 말투로 여행지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진솔하게 진정성 있게 하나하나 상세히 내용을 엮어 나가셨다. 글을 읽는 동안 난 인도에 스님과 함께 여행 중이었고 함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듯 글이 살아 움직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글은 정적이면서 조용했다. 거칠거나 강 열하지 않았다. 아주 조용히 고요히 마치 어린 꼬마 아이가 꼬까신을 신고 사뿐사뿐 들판을 거닐듯한 문체였다. 읽고 있는 나 역시 흔들림 없이 그렇게 평화롭게 한 장 한 장을 넘겨 가고 있었다.
그 느낌은 마치 스님이 지금 나의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시는 듯했다.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그분의 나긋 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학교 다닐 때의 버릇 중 하나가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 권만 읽기보단 2권에서 3권을 동시에 읽는다. 읽다 보면 먼저 끝나는 책도 있고 끝까지 읽기가 힘든 책도 나온다. 하지만 될 수 있음 책을 끝까지 다 읽는 편이다. 아이를 낳고 혼자 독박 육아를 하면서 법정 스님, 법륜스님, 헤민 스님, 일묵 스님 등 스님들 책을 많이 사다 읽었다. 육아 서적보단 스님들 책 혹은 마음공부에 관한 책들 그리고 심리학이나 철학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 육아 서적은 굳이 사진 않았고 잘 모를 땐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 주로 여쭈어봤다. 우리 친정 엄만 육아를 해본 적이 없어 사실상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결혼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가정을 한번도 꾸려보지 않은 스님들 책을 읽고 육아를 했다. 하지만 이번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은 각별히 아끼는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책의 한 구절 중
"향전에 향을 사르고 삼배를 드리고 앉아 잠시 선정에 들었다. 세월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었다. 시간은 늘 거기 그렇게 있는데 사람과 사물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모든 것과의 단절입니다. 죽음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당신을 당신의 집착으로부터, 당신의 신으로부터, 당신의 미신으로부터, 편안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잘라버립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야 하루가 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당신은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납니다."
-법정 스님
가슴이 뛰었다. 책을 이틀에 걸쳐 빠른 속도로 마무리를 했다. 기행문이다 보니 인도 지역 이름과 지명 사원 이름들이 조금 어려워 슬슬 막 읽기보다는 조금의 정독과 집중을 요하는 책이었다. 읽는 중간중간 법구경과 금강경의 이야기는 일화를 쉽게 풀어 하나의 스토리 이야기처럼 나열도 해주셨다. 덕분에 나의 갈증이 해소되는듯했다. 아 참. 난 불교다. 우리 집안도 불교다. 그냥 불교다. 절에 있음 마냥 편안하다. 그래서 절이 참 좋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아니 사실 내 나이 32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사람은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안다는데...
내가 알게 된 죽음의 의미는 정말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너무나 흔하디 흔한 말이고 상식적인 말이지만 저 말의 의미를 몸으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몸에 전율이 흐를만큼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많이 힘들었고 그 순간부터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을 제 삼자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분들의 흰머리와 주름 잡힌 손과 구부정해지신 어깨를 보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쓰라려 온다. 그리고 통채로 그분들을 온몸을 다해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3개월 정도는 길 가다가도 울었다. 죽게 된다는 그 흔하디 흔한, 뻔한 사실을 알고 한없이 울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흘릴 눈물을 그때 다 흘린듯했다. 마침내 난 나의 삶을, 인생을 받아들였다.
인도라는 나라를 난 과연 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부처님이 살아생전 계셨던 곳이라 '가보고 싶다' 란 생각이 스쳐 지나가다가도 인도의 환경이 참으로 이곳 베트남과는 사뭇 비슷한 면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그렇게 막 가보고 싶은 나라는 아직 아닌듯하다.
죽음이 날카로운 면도날과 같다는 스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파듯 아프다.
하지만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에서 다시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나마스테, 마하 바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