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나의 이야기/깡다구 주부이야기
<나의 이야기>
10여 년 전 이곳은 회사에서 ‘오지’로 판명되어 주재원들이 기피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생활터전을 잡고자 하는 주부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특히 어린아이와 함께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새댁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또한 메이드와 베트남 사람들로 인해 나처럼 산전수전 공중전 까지 다 겪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주부들에게도 위로가 되고 싶다.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이곳에서 온 마음이 너덜너덜 해질 만큼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행복, 기쁨, 슬픔, 괴로움 이 모든 다양한 감정을 끓어 안고 내 인생의 의미를 이곳에서 찾기 위해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
잘살고 싶다 보단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아직도 ‘허당’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닐 정도로 배짱 두둑한 마담이 되었고 깡다구 넘치는 아줌마가 되었다. 오토바이 때문에 남자들도 감히 운전할 엄두를 못 내는 이곳에서 난 그것을 해냈다. 그런 내가 요즘은 기특하다. 도요타 매장에서 수많은 베트남 기사 아저씨들과 함께 대기실에 당당히 앉아 있으면 여전히 긴장은 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 아저씨들이 나에게 더욱 큰 친절을 베풀 때가 많고, 그들의 따뜻함을 느낄 때면 그날 하루가 참 감사하다.
이곳은 베트남! 호치민이다.
호치민 한국 국제학교 영어 선생으로 초빙되어 근무를 했었고 그러다 아이를 낳고 이곳에서 난 제2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하여 ‘호치민 마담’. 아줌마로 14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직업은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직업이 아니었다. 특히 호치민에서 주부로 생활하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없다면 더욱더 ‘마담' 으로 생활하기가 불편하다.
한국에서는 ‘사모님’ 이지만 호치민 에서는 현지인들이 ‘마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부들은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마담 ’이 된다.
'호치민 마담'
잠깐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14년 전에는 단톡 방이 없어 학교 선생님들과 서로 교환한 명함집을 한가득 가방에 넣고 다녔었다. 삼성 폴더 폰으로 2G가 와이파이가 겨우 잡혔다. 아날로그 세대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베트남은 나의 제2의 고향인 것 같기도 하다. 30대 나의 삶을 고스란히 바친 나라이다. 이어 40대 중반까지 치열하게 생활 한 곳이다. 아이까지 낳아 길렀고 또 그 아인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과거의 모습을 닮아 있는 이곳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담 아닌 마담으로 살게 되었다. 한국이었다면, 그저 평범한 아줌마 혹은 새댁으로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를 이용하여 아이를 한결 수월하게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의 호치민은 지금 호치민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1970년에서 1980년대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에서 생활은 한국에서의 삶과 서로 상충되었다. 주변에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Back to the Past’. 특별한 색깔을 가진 호치민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성격도 워낙 내성적이라 아줌마 부대에 잘 끼지도 못했다. 난 아이와 함께 자랐다. 그 삶은 고단하고 치열했다. 때론 여유로웠고 풍요로웠다.
수많은 마담들과 달리 나의 ‘호치민 마담’ 생활은 결코 호화롭거나 화사하지 않았다.
친정과 시댁이 없는 개발도상국 준비 중인 나라에서 쓸 만한 기저귀 하나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엄마 란 직업도 처음이었고 집안일도 처음이었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에게 김치를 담그는 일과 육아는 나를 전패시켰다. 그때부터 메이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줌마로서 엄마로서 오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육아 가사 도우미를 간절히 원했으나, 나에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개인의 성격과 결정에 따라 이곳 생활은 극과 극으로 바뀔 수 있다.
14년이 지난 지금 혹시나 하여 호치민 주부생활을 검색해 보았다. 주부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기본적이면서 꼭 있어야 할 정보 위주로 알아보았다. 메이드, 기사, 교육(학교), 비상약, 생활 먹거리, 장 볼 때의 요령, 교통수단, 부동산 마지막으로 피부과까지 찾아보았다. 무엇보다도 가정을 책임지고 전반적인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의 생활 지침서가 10년이 지난 지금, 오직 단톡 방 이외에는 아직도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똑같은 고민과 똑같은 고통을 주부들이 아직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호치민은 요즙 급 성장기를 겪고 있고 교민들에겐 새로운 정보가 계속 해서 필요하게 되므로 단톡방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우리 주부들이 생활을 직접 경험한 경험담이 더욱 절실하다. 현재 호치민에서 한국 교민이 10만명이 넘어 가고있다.
호치민은 선진국도 아닌 데다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도 아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대부분 크고 굵직굵직한 정보들이 많다. 자리를 잡고자 할 때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이곳은 그 이후부터 황당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나마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이 ‘베트남 맘 모여라’ https://cafe.naver.com/chaoba카페, 줄여서 ‘베. 맘. 모’였다. ‘베트남 스케치’ https://cafe.naver.com/vietnamsketch라는 곳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두 곳 다 많은 교민분들이 활동하고 계신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삶의 터전을 자리 잡은 분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배운 생활 지혜와 힘들었던 점, 반드시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만한 그분들의 내적 공력과 노하우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이제 갓 새로 오신 교민분들이 열심히 블로그를 운영 중이었다. 그분들 역시 메이드, 비상약, 병원, 학교, 영어 등으로 아직 실생활에 적응 중이었고 베트남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 고구 분투 중이었다.
힘들거나 위험하거나 개인적으로 겪었던 고충은 서로 아랫집, 윗집, 옆집, 언니, 동생들 사이에서 기밀하게 오고 가는 정보들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들이다 보니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탈 수도 있고 또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보가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살면서 겪어보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을 이곳, 베트남이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멘탈이 약하거나 마음이 여리신 분들이 한번 당하거나 경험하고 나면 두 번 다시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 역시 4년 정도 되었을 때 이곳 사람들이 진절머리 나게 싫어 밖을 못 나간 적도 있다. 그들은 지나갈 때마다 '마담, 마담' 부르며 불러들인 뒤 말되 안 되는 돈을 요구하기도 했고 택시기사 아저씨는 항상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잔돈이 없었다. " Khong co tien le" 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택시 아저씨들. 미리 알면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는 우울한 경험을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주부들을 위한 생활 정보를 이곳에 기록할 생각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고충으로 주부들이 힘들어하고 불신의 눈길로 베트남 사람을 바라보며 생활을 지속하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처음에는 한국사람이 하는 식당, 한국인이 하는 청소 업체,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 한국인이 하는 정육점, 한국인이 하는 세탁소, 한국인이 하는 부동산 등등 한국인이 하는 곳을 찾아 정착을 한다면, 조금은 마음고생도 덜 할뿐더러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약간의 비용이 추가적으로 더 들기도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 괜히 현지 부동산을 끼고 계약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보다 낮다.
가끔 단톡 방에 1000명 정원이 넘쳐 초대를 못 받게 되더라도 또 다른 지역별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 혹은 아파트별) 단톡 방에서 정보를 얻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한국 중고책을 사고파는 단톡 방도 있다.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단톡 방들이 있으니 처음 정착은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 주부들에게는 그야말로 꿀단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단톡 방이 있기 때문이다.
미루어 보건대 호치민 주부들을 위한 책과 자료는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비록 14년 기간이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써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 그리고 궁금해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모든 이야기보따리를 한번 풀어 볼까 한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지의 생생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진솔하게 풀어 나갈 작정이다. 여행자나, 호화로운 호찌민 마담의 눈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주부의 눈을 통해 본 호치민’ 생활을 나누어 보고 싶다. 요즘 대세인 온라인 플랫폼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유튜브 그리고 페이스북에에 올라오는 화려한 식당, 먹거리, 가까운 베트남 근교의 호화로운 리조트, 부러운 국제학교 생활, 수영장 딸린 넓은 아파트, 그리고 풍족한 베트남 열대과일 사진들이 아니라 주부들을 위한 실제 생활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싶다.
잘난 척하는 태도는 결코 아니다. 하소연하고자 하는 공간도 아니다. 공감하고 싶고 또 위로를 때론 용기를 드리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호치민 교민사회는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모여 살고 있는 현상과 아주 흡사하다. 한집 걸러 누구인지, 누가 아침에 무얼 먹는지, 저 집 친구는 무슨 공부를 하는지 ,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어디서 이사를 왔는지, 서로서로에 관심이 많은 곳이다. 모여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비밀이 없고 개인 생활을 하기가 약간 힘든 곳이다.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사람들에겐 이 밀집되어있는 사람들 틈에서 성격상 이곳 생활이 더 버거웠는지 모르겠다.
파란만장한 나의 호치민 생활이 그녀들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또 새로 이곳에 오시는 주부들에게는 최대한 팩트 (사실)와 중요한 정보만 (메이드, 교통, 국제학교, 병원, 비상약 등 실제 생활 정보와 주의할 점)을 알려드리기 위해 있는 힘껏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쓸 것이다.
호치민은 나를 성장시켰다.
더 성숙한 인간으로 또 한 아이의 엄마로 클수 있도록 토대가 되어준 도시다.
지금도 이곳에서 난 고독을 느끼면 여전히 성장 중이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을 사랑하고 나를 완성시킬 수 있는 현명한 삶을 택할 것이다.
더 나은 나로 완성될 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내일도 새벽 동트는 하늘과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