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미열, 고열, 입터짐
가을이 우리 집에 크고도 거대한 신고식을 했다. 울긋불긋 물든 멋진 낙엽과 찬란한 빛이 발코니를 통과해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차 한잔을 여유롭게 마시는 그런 그림같은 가을이 아니라, 캠프를 다녀온 아이는 미열과 기침 가래로 고생 중이고, 장기출장을 다녀온 남자 어른도 기온차 때문에 이틀 동안 파카를 입고 있을 만큼 고열과 몸살에 시달렸다. 그는 여전히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닌다. 그 큰 장병들, 두 남자를 돌보느라 입꼬리에 물집이 잡혔다. 마치 두 남자가 없는 동안 홀로 가져본 그 사치스러운 날들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혹독한 현실이랄까. 남자 어른은 고열 탓에 하루를 월차 내고 집에서 쉬었다. 아이는 열만 대충 내린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요구했지만 목이 아프지 않다는 핑계로 남자 어른은 당당하게 거절했다. 그는 처방받은 약을 먹고 종일 잠을 잤다. 다행히 열은 금방 떨어졌다. 그를 조금이라도 생각 한다는 염치로 약국에서 쌍화탕을 사다주었다. 점심은 그의 특별식 맑은 동태지리를 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부르튼 입술은, 사실, 홀딱 반한 요가를 무리하게 시도한 영향도 크다. 선생님이 추석부터 휴일이 중간 중간 많이 끼어 있다며 월수금반과 화목반을 합쳐 매일 반을 한 동안 진행해 주었다. 결국 찢어지지 않는 다리를 한번 기어코 찢어보자는 일념하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쪼금쪼금씩 벌리고 쭉쭉 뻗다 근육통과 몸살이 겹쳤다. 뻗뻗함의 지존이라 1센티라도 더 찢어 보고 싶은 욕심에 일주일을 계속해서 나갔고 나잇살을 잔뜩 먹은 몸뚱아리는 소화해내지 못햇다. 결국 탈이 나버린 것이다. 가끔 불타는 열정을 과하게 엉뚱한곳에 쏟아 붙는 나의 모습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부르튼 입술에 꿀과 립밤을 발랐다. 입술이 최대한 덜 쪼이게 함이다. 그리고 요가인지 체형교정인지 알수 없는 운동을 가기 위해 내복 같은 레깅스를 입고 난 오늘도 내일도 어김없이 운동을 간다. ‘오늘도 운동했어. 해냈어’라는 뿌듯함과 충만감을 마음에 안겨주기 위함이다. 여전히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는 나의 마음을 운동으로나마 위로해 줄수 있어 참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운동은 여러모로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치는게 확실하다. 다행히도 한껏 무언가로 가득찬 마음이, 오래간만에 이 중년 남자 요가 선생님이 지도하는 요가를 꾸준히 해보자고 한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해봐야 겠다. 항상 도망갈 이유과 틈을 만드는 나에게 큰 변화다. 갑자기 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지만 들려오는 답은 '그냥, 이젠 그냥 해도 되거든' 이었다. 대단한 각오라던지, 꼭 이 요가 동작을 완벽하게 끝장을 봐야지라는 다짐은 필요 없었다. 또 누구에게 '나 이거 할거야' 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율적인 나의 의지였다.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뭐' 나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벼웠다. 심각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았다.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있었다. 난 인생을 가볍게 살기로 했다.
오늘은 등과 어깨 날개쭉지를 펴는 운동이 메인이었다. 고양이 자세를 한 뒤 우리가 흔희 상상하는 아랫배에 힘을줘서 안으로 쑥 말아 넣은뒤 등을 힘껏 올리고 허리를 내리는 요염한 요가 자세와는 전혀 다른 자세로 어깨운동을 시작했다. 근육통으로 진통제를 복용한 나는 허벅지를 살살 달래가며 요령것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아래로 꾹꾹 눌러 선생님이 보여주는 동작을 얼추 비슷하게 따라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다. 이 중년 남자 요가 선생님의 정체는 도데체 뭘까? :)) 오늘은 오른손에 붕대 까지 감고 계신다. 다친듯 한데 우리에게 말은 해주지 않으셨다.
육체의 시원함은 기분과 에너지를 끌어올려 준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다. 그야말로 가벼운 발걸음이란 이런 발걸음을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신호등을 건너는 도중에도 환한 미소띤 나의 얼굴, 당당한 걸음걸이, 어깨를 펴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부르튼 입술을 보란듯 내보이며 '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어'라는 표정으로 씩씩하게 걷는 걸음걸이 말이다.
집까지 10분 남짓 걸린다. 나무 사이로 해가 비친다. 눈이 부시다. 옅은 푸른 하늘이 너무 밝아서 올려다 볼수도 없을 만큼 아름답다. 나는 다시 나를 본다. 오늘 기분이 꽤 괜찮은데 왜, 무엇 때문이지? 이렇게 꽤 괜찮으면 안 되는데. 불안했다. 마음은 항상 양면성을 달고 다니기 때문에 너무 기쁘거나 너무 우울할 때 난 그 감정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꽤 오랫동안 알아차림을 연습했다. 그럼 그 순간 마음은 다시 평정심을 되 찾는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거의 다 왔을 때 즈음 바람이 훅 하고 불었다. 바람이 나무를 건드리고 나뭇잎들이 서로 부딫치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한동안 멍하니 서서 하늘인지 나무인지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을이구나. 또 혼자서 기분에 취하려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갑자기 일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우울감도, 무기력도, 무언가를 꼭 해야지만 적성이 풀리는 나와 반대되는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를 어떤 기분으로 시작할까. 활기차게. 그냥 아무렇지 않게. 감정과 기분의 기복이 크지 않은 그들의 삶은 어떨까. 평온할까. 정서가 안정된 사람들, 강박이나 불안증이 없는 일반인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해 다들 그냥 그렇게 받아 들이고 사는 걸까. 나이듦과 죽음은 인간이란 생물이 가진 공통된 요소임이 명확한데 그들은 정말 다 괜찮은 걸까.
어느새 문 앞이다. 코코가 잠을 자다 마중을 나왔다. 창문을 열었다. 노래를 틀었다.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팝을 틀었다. 청소기를 돌렸다. 걸어오며 골똘히 생각했던 모든 생각은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 들이듯 어디론가 다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도서관에서 상호대차 신청한 책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바쁘다 바빠. 오늘은 걸레로 바닥청소 까지 하는 날이라 손과 발이 모터달린 사람 처럼 움직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을 시간과 글을 쓰고 싶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은 바램으로 손과 발이 더욱 분주하다. 수건도 빨아야 한다. 세탁기도 한탕 돌리고 건조기로 옮겼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받으러 가는 도중 그냥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고 올까도 했지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좀 귀찮아도 집밥을 먹고 싶었다. 나를 위해 난 요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먹는 식습관도 많이 변하고 있는 중이다 보니 사실 집밥을 더 많이 챙겨 먹는 요즘이다.
버섯, 아보카도, 검정콩 낫도, 호박, 그리고 마지막에 계란프라이와 땡고추를 올려 간장, 참기름, 고추냉이로 비벼 먹을 계획이 있었다. 정확히 10분 요리다. 아 생각만 해도 맛나다. 동거남에게 카톡이 왔다.
남편: 만두국이 맹탕이야. 점심 너무 맛이 없네.
<나의 점심 사진 한장을 투척해서 보내줬다. >
나: 난 오늘 이거 먹을려고. ㅋㅋ
남편 : 이야 ~ 너 혼자 200살 까지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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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참, 그리고 회사에 기부할거 필요해. 좀 준비해줘.
나: 찾을 필요 없어. 기부할거 있어. '너'.
그리고 책을 보며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바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3시간이나 주어졌다. 오늘 읽은 책은 책에 밑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었을 정도다. 그중 좋아하는 문단 하나를 소개하겠다.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차를 결정하는 것은 뇌의 양이 아니다. 정말 머리에 관해 운운할 때에는 가장 먼저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러니 자립의 정도가 그것을 결정하는 셈이다. 자립에 반하는 삶의 방식은 곧 명석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립이란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곱씹은 후, 강한 인간을 지향하면서 과감하게 분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런시대는 지금 까지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자유 안에서만 빛나도록 생겨 먹었다.
-마루야마 겐지-
by Onpen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