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위에 아니고 라면에~ 파김치.
가끔 점심때 청소를 끝낸 뒤 죄책감을 조금 가지면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가 있다. 그 죄책감이라 함은 청소와 정리, 버림을 시작하면서 음식에 변화가 나에게 안겨준 죄책감이다. 라면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라면이 건강에 무지 해롭다는 뭐 그런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라면과 죄책감은 이렇게 생겨났다.
호치민에서 난 스스로 나를 일으키기 위해 참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았다. 그중 한 가지 꾸준히 한 것이 운동이다. 아파트 아래층에 헬스장이 있었고, 난 그곳에서 베트남 헬스트레이너 Tony에게 일주일에 2번 Pt를 받았다. Tony는 킥 복싱 선수로 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작은 키에 단단한 몸매를 가진 Tony는 약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Tony의 짧은 영어와 나의 짧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우리는 2년 정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를 맺었다. Tony는 나의 PT 코치 이면서 킥복싱 코치였다. 킥복싱은 한 4개월 한 것 같다. 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Tony에게 PT를 받으면서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왜냐면, 그 당시 PT후 몸이 너무 고달프기도 하고, 혼자 점심을 챙겨 먹는 게 귀찮기도 해서 라면을 점심때 자주 먹었다. 결국 잘못된 식습관으로 몸에 염증이 많이 번졌다. 운동 후 근육통이 심할 때는 단백질과 야채, 과일 등 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섭취해야 했지만, 크게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얼큰한 국물에 쫄긴한 면발을 가진 라면을 즐겨 먹었다. 결국 후두염은 만성 후두염으로 번졌고 항생제 복용을 밥먹듯이 하게 되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나에게 라면은 죄책감이 되었다.
호로록 라면과 휘리릭 파김치
가을 날씨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갑자기 서늘하다 못해 추워진 것 같다. 비까지 내리니 집에서 꼼짝 달싹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난 기필코 마트를 다녀와야 했다.
호치민에서 냉장고를 터질 듯이, 아니 폭발하듯이 채우는 습관을 현재 한국에서 먹을 만큼만 채우는 습관으로 바꾸고 있는 과정에 있다. 아직은 서툴지만 이것저것 적용 하면서 나만의 음식 보관법을 발견도 했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부엌일을 즐기는 중이다. (내가 발견한 것: 토마토를 재활용 병에 보관하기를 추천한다. 고추 역시 마찬가지다. 키친타월을 깔고 압축되는 병에 보관을 했더니 싱싱함이 꽤 지속되었다.)
그런데 하필 계란이 똑 떨어졌다. 사실 이틀 전에 떨어졌다. 그러나 난 야채통과 냉동실을 수시로 열어 보며 더욱더 냉장고와 냉동고를 완벽히 비우기 위해 이틀을 버티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기어코 가야만 했다. 그런데 비가 온다. 그리고 또 춥기까지 하다.
난 벌떡 일어났다. 츄리닝을 입은 채로 9시 40분. 주차장으로 머리띠만 한채 후다닥 달려갔다. 요즘 한살*에서 장보기에 재미가 들렸다. 우리 먹거리. 우리 농산물. 어감도 좋고, 포장도 좋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먹거리라서 한살* 빠순이가 되었다. 10시 이전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잽싸게 들어가야 한다. 한살*은 과일과 야채가 마트처럼 대량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날 하루 6~10박스 사이 들어오는 것 같다. 앗싸~ 2등이다. 후진으로 차를 한 번에 주차했다. 5분 남았다. 문틈으로 어떤 과일이 입고되었는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10시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앗차.. 카트를 먼저 챙기다 뒤에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서열이 밀렸다. 하지만 난 얼른 정신을 다시 차린 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미리 봐둔 위치에 감, 배, 사과를 겨우 집는 데 성공했다. 아... 아직 이곳 한살* 매장에 장을 보러 오는 아줌마들의 내공에 비해 난 한참 부족함을 느꼈다. 좌절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남편왈 " 가끔 넌 참 엉뚱하면서도 참 고지식한 거 같아. 저번에 방울토마토도 내가 겨우 샀잖아~. 과일을 먼저 집고 카트를 챙겨. " 남편을 한번 째려보았다.
하늘을 찌르는 뿌듯함을 안고 야채를 담으러 향했다. 어렵지만 과일을 성공적으로, 기어코 사고 말았다는 황당한 뿌듯함이다. 야채코너에 왔다. 나의 시선을 빼앗은 초록! 앗~ 냉장고 옆쪽에 쪽파다. 푸른 쪽파. 하얀대와 초록입이 적당하며 흙이 이리저리 묻어 싱싱함을 과시하는 쪽파! 비도 온다. 라면도 땡긴다. 한국 와서 2년 동안 김치를 계속 사다 먹었다. 파김치는 아예 먹지도 않았다. 왜 그랬지?
나의 주 종목, 파김치~! 고민도 하지 않고 집었다. 나머지 오이, 깻잎, 청양고추등 텅텅 비어 있는 야채실을 채워줄 만한 초록잎 친구들을 카트에 담았다. 당근, 계란도 담았다. 함박스테이크할때 몰래 갈아서 넣을 버섯도 골랐다. 아이가 버섯을 잘 못 먹어 이렇게 갈아 넣어 버리면 간단히 먹일 수 있다.
무겁다. 무거워. 짐을 풀고 쪽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냉장고에 음식재료를 채우는 이 맛.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마치 냉장고를 비웠다는 뜻은 '식비를 줄였고 외식을 하지 않아 생활비를 알뜰하게 사용했다'는 그런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결론은 '나 저번 한 달도 살림 잘 살았다'는 칭찬 같은 거다.
장본김에 동시에 다른 밑반찬들도 오랜만에 함께 만들었다. 쪽파 뿌리에 흙을 털고 다듬었다. 장조림 할 돼지고기 삶을 물을 동시에 끓였다. 꽈리고추도 손질 하고 양파도 채 썰었다. 함박스테이크 재료는 양파만 볶고 나머지는 믹서기에 모조리 갈았다. 음악을 틀었다. 가벼우면서도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음악~ 귀찮고, 몸이 무겁고, 자꾸 누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전에 나의 모습과 현재 나의 모습은 참으로 대조 적이다. 지금도 물론 그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음악을 틀어 나를 다독여 준다. 오늘은 장보기를 성공한 세리머니로 줌바춤을 이용해 허리와 팔을 리듬에 맞겼다. 사실 라면과 파김치 먹을 생각 하니 이토록 설렐 수가. 거의 2달 만에 먹는 것 같다. 혹시 ‘나 라면때문에 파김치 담그는거 아니겠지?’라고 마음에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답이 없다. 설마~
우선 파김치 담글 적당한 통을 찾았다. 큰 대야가 없다. 다 버렸다. 하지만 김치통이 있다. 그곳에 파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고춧가루 슝슝, 액젓, 굵은소금, 매실진액, 마늘 양파 등 갖은양념을 넣어 나만의 레시피 휘리릭 파김치를 뚝딱 만들었다.
망설임 하나 없이 라면하나를 보글보글 끓였다. 없던 계란도 하나 톡 까서 넣었다. 파김치와 함께 뚝딱 해치웠다. 이전처럼 라면 하나를 다 먹지는 못한다. 반 개 정도 먹었다. 그래, 이맛 이었지. 익은 파김치보다 알싸한 맛을 품은 생 파김치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하룻밤 실내에서 익혔다.
현재 난 야채, 샐러드,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바뀠다. 남편이 나의 식단을 보고 200살까지 살겠다고 했다. 운동도 함께 겸하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라면과 탄수화물울 멀리 하고 있다. 몸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되기도 했고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을 가진 한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이다. 잘죽어야 하니까..
밑반찬 오징어채 무침, 멸치볶음, 장조림, 파김치. 함박스테이크,이렇게 5가지 했다.
이 뿌듯함~ 어찌할지~
저녁에 따뜻한 밥 지어서 가족들 먹일 생각 하니 왠지 나 좀 멋진 거 같다.
by Onpen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