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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Oct 27. 2023

 '5분' 이면~ 충분해.

집안일 부담감 줄이는 비법


토요일 저녁 무렵, 커다란 머그컵 안에 담겨 있는 아이폰으로 그날 주방과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중이다. 오래된 폰은 주방 한켠에서 나의 뮤직라디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날의 기분과 요리에 따라 난 다른 음악을 고른다. 스피크 부분을 아래 방향으로 내려놓으면 컵 안에서 음향이 크게 울려 퍼진다. 한층 더 부드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약간 울리긴 하지만, 낡은 폰에서 생짜로 나오는 소리보다 이소리가 더 좋다.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를 준비한다. 이젠 부엌일과 음악은 뗄 수 없는 짝꿍이 되어 버렸다.


손질중이에요~ 장난 아니죠?


새벽배송으로 활꽃게 한 박스를 주문했다. 집 식구 모두가 꽃게를 좋아한다. 냉동실에 쟁여두었다가 해물탕이나 찌개로 끓여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꽃게와 혈투를 벌렸다. 박스를 열고 톳밥을 걷어 냈다. 긴 집게다리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꽃게를 기절시켜 냉동실에 차곡 차고 넣었다.

암꽃게 6마리와 숫꽃게 2마리. 총 여덟 마리다. 튼실하다.


활꽃게 기절 시키는 방법을 검색하다 '양념꽃게 무침' 레시피가 보였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호치민에서 간장게장을 한번 시도해 보았지만 양념꽃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간장 게장은 간장을 달이고 식히고 일이 참 번거로웠다.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그냥 사 먹는 쪽을 택했다.


양념꽃게무침 레시피를 대충 읽어 보니 요리시간이 대략 15분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꽃게 다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20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우선 난 머리와 마음속으로 '15분이면 된다'라고 확신한다. 벌써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뿜뿜 치고 올라온다.


집안일, 청소, 버림, 정리습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요즘 한창 잘 써먹고 있다.


바로 청소와 부엌일을 분 단위로 쪼개서 활용하는 습관이다.


주부로 집에 오래 머문 까닭에 시간 개념, 세월 개념, 나이 개념이 둔해져서 삶 자체가 무개념으로 변하고 있었다. 몸도 따라서 무개념이 되더라~~~


요즘 특히!! 부엌일을 몇 분씩 나눠서 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뭐 초시계나, 알람을 가져다 놓고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틀고, 15분에서 20분 사이에 음식 요리를 뚝딱 끝내고 10분은 마무리 하자! 뭐~이런 식의 다짐이다.


그런 비장한 각오를 품고 부엌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우선 몇 분이면 다 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제일 짧은 분단위를 생각했다. 5분, 8분. 결국 10분도 안 되는 일감이라고 인지 시켰다.


이 가벼움이 주방에서 등줄기, 어깻죽지, 허리까지 아팠던 몸을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마음이 가벼워서였을까?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동안 마음이 힘들 때, 몸도 힘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말은 '참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무겁고 느긋했던 몸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싱크대 안에 컵과 그릇, 냄비가 있다.

이때 '6개 밖에 안되잖아, 5분이면 식세에 다 넣을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하면 하기 싫어 게을러지던 마음이 도로 돌아온다. '

' 이거 5분도 안 걸려, 후딱 하고 옷 갈아입으러 가자.'라고 마음이 먼저 반응을 하고 거의 5분 만에 깨끗한 싱크대와 주방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번째, 요리에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덕분에 맛도 더 좋아졌다.


시간을 보면서, 그야말로 요리에 초 집중을 했다. 재료손질부터 물을 올려놓고 야채 다듬는 일까지 포함시켜 머릿속에 일 순서를 정했다. 때론 동시에 두 가지 음식을 해치웠다. 마치 30대 때처럼 빠릿빠릿 한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원하는 시간 안에 마무리했을 경우 만족감, 자신감까지 덩달아 올라왔다.

'이거 별거 아니네' 하는 이런 '뿌듯함' 말이다.

예상보다 일찍 식사준비가 끝났을 때는 음식모양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깨를 더뿌리 기도 하고, 김가루를 더 얹어 주기도 했다. 이런 사소함이 음식을 이쁘게 해 주었다.


세 번째, 그날 메뉴를 정한 뒤 냉동실에서 식재료를 미리 꺼내 놓는 준비성을 길러준다.


어느 순간부터 나태해지면서 삶이 미저리로 저 멀리 어딘가로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집은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뭔가 어수선했다. 종일 누워서 영화만 3-4시간 이어 보다 아이가 올 시간이 되면 그제야 몸을 일으켜 냉동실을 뒤져 레인지에 해동을 하고 대충 밥을 차리던 때가 있었다. 고기는 핏물이 흥건해져서 냄새가 심할 때도 있었고, 질겨 못 먹을 때도 있었다.


어차피 집안일은 나 혼자 하는 거, 아침부터 하기가 싫었다. 산더미처럼 모아두었다 오후 즈음 아이가 오기 전 한방에 몰빵 하듯이 집안일을 해치웠다. 기본 2시간에서 3시간. 어쩔 때는 빨래 때문에 늦은 저녁 시간 까지도 집안일이 이어졌었다. 지치고 힘들었다. 살림에 더욱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분단위 집안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날 아침에 저녁 메뉴까지 이미 선정하고 모든 식재료를 틈틈이 준비도 하고 내장고에 넣어 자연해동도 해둔다. 살림이 한결 쉬워졌다. 그리고 편해졌다.


결국 분단위로 시작한 부엌일이, 집안일이 내 삶을 단단하게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생활 패턴이 전체적으로 퍼즐처럼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한동안 정리, 버리기, 비움에 온통 정신이 팔려 2주 동안 종일 밤낯으로 버리고, 비웠다. 그 당시 오로지 비우기에만 몰두한 나머지 저녁준비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차피 집안일 나 혼자 하는 거 몰아서 하기보단 나누어 보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참을 고민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하고 싶었다. 운동도 하면서 글도 쓰고 싶었고 도서관도 가고 싶었다. 그러다 집안일에 투자하고 있는 나의 일과를 돌아보면서 '시간'이란 놈을 잡게 되었다.


아이한테는 공부보다 '시간 관리'를 강조하면서 정작 난 나사 풀린 태엽처럼 정체된 삶을 살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었지만 결국은 움직이지 못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그런 느낌...


하지만 이 '시간'과 '분'을 잡고, 난 큰 바다에서 고래를 잡은 것만큼 기뻤다. 하루에 중심이 생겼다.

그래!! 앗싸! 가 저절로 외쳐졌다. 5분이면 돼~~~~~!!!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꽃게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양념꽃게 무침 15분.

꽃게 손질에서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지만, 그럼 10분만 더 여유를 주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을 틀고 작업에 들어갔다.


완전 성공!!!!!! 아 나 쉐프야???


에잇! 30분 걸렸다. ㅎㅎㅎㅎ 꽃게 손질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이와 남편이 신이 났다.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면서 꽃게를 들여다본다.


오늘 숙성! 내일 먹을 수 있어!

 

남편: 이야~ 진짜 후다닥 했네? 생각보다 빨리 했어. 근데 그거 먹을 수 있겠지?


왜 그는 항상 그렇게 매를 벌까?


(숙성후 남편과 아이는 허겁지겁 밥을 3공기나 먹어 치웠답니다!!!!)



by on pe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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