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매력에 다시 한번 풍덩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의 힘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굳이 어떤 목표와 목적의식이 있어 매달려서 완벽하게 꼭 해야만 할것은 없다. 우선 하는것이 목표다. 나를 묶어 두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하듯 단번에, 한 번에 '그래, 맞아, 이거야'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호기심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저것도 무턱대고 한 번은 해 봐야지만 적성이 풀렸다. 즉 '똥'인지 '된장'인지 콕 찍어 먹어 봐야지만 아는 난 그런 사람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혹시 성인 ADH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스스로 몇 번 한 적도 있다. 성인 ADH 검사지를 찾아 해 보았다. 건망증, 주의 산만, 호기심, 기분변화, 감정기폭등 해당하는 게 꽤 많았다. 그럼 나 정말 ADH 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에게 유전이 된다는데, '그럼 우리 부모가?', '그럼 우리 아이도?', 설마.. '정상 같은데'라고 홀로 생각하며 애써 부정하고 있다. 정말 검사를 해봐야 할까? 그냥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난 애써 정상인척, 주의가 하나도 산만하지 않은 척을 하며 오늘도 나지막한 상 앞에 홀로 앉아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린다.
눈에 초점이 흐려져서 눈을 더욱 찌푸리며 하던 SNS 계정을 삭제하고 도서관에 다녀왔다. 호기심에 일단 시작은 해보았지만 만만한 소셜미디어가 아니었다. 잘못된 주제선정 역시 한 몫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동영상 편집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의 하루, 나의 삶이 무너지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5분 간격으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또 확인을 하고 인플루언스들을 구경하며 나의 시간을 엿으로 바꿔 먹은 듯한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중독증세가 이런 것인가 보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 역시 팔로워, 좋아요, 맞팔 선팔 언젠간 적응되겠지.
진정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회피만 하고 있던 글쓰기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일 년 동안 여러 책을 필사하면서 한국어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열정은 국어사전을 갈기갈기 찢어 씹어 먹고도 남을 열정이었다. 오죽하면 엉덩이에 종기까지 났었다. 더운 호치민에서 에어컨을 풀가동 시켜도 푹신한 식탁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나의 엉덩이가 불편했나 보다. 아줌마의 무모한 열정에 애꿎은 엉덩이에 뿔이 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의 서툰 어휘, 문장 실력이 뽀록날까 두려웠다. 한국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국어 문법 책을 읽고 정리 요약도 해 보았다. 박경리 토지가 좋다 하여 시도도 해보았지만 겨우 한 권을 어렵게 마쳤다. 호치민 시내 동커이(Dong Khoi) 거리에 가면 유일하게 한국책을 파는 파사(Fasha) 책방이 있다. 그곳에 서 몇 시간 동안 종이책이 읽고 싶어 직원 눈치 보며 이리저리 책을 구경하다 두 배나 되는 가격을 지불하며 한국 책을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글쓰기에 빠져 있었다. 몰두가 가져온 안락함을 그때 처음 맛을 보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글을 쓰면서 몰입하게 되는 그 과정이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때 그 시절 그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 한켠엔 그래도 머릿속 어딘가에는 자리를 잡고 있을 거라 믿고 싶고 이젠 글을 쓴다는 현실이 더 이상 부끄럽지가 않다. 좀 못쓰면 어때. 우선 내가 좋은걸. 나의 실력 현시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냥 우선 쓰기로 했다. 호치민에서 그 날리법석을 떨던 그때 그 순간을 회상하면 나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추억이 계속해서 쌓여간다면 난 앞으로도 무척, 아주 많이, 무지하게,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
한국 와서 처음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그 순간 기쁨, 행복함은 잠시였다. 종이책을 보는 순간 눈알이 앞뒤로 뒤집힐 만큼 흥분이 되었지만 나의 우울, 무기력, 분노, 화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고 결국 도서관이 아닌 상담소와 병원을 다니며 나를 살리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는 다시 이 자리로 돌고 돌아왔다.
모자하나 꾹 눌러쓰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나의 두 발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꿈을 향해서.
도서관 종합자료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800(문학) 번대와 100(철학) 번대를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했다. 일인당 6권만 빌릴 수 있지만 가족 카드를 사용해서 8권을 빌려 왔다. 일본작가, 외국인 작가책들도 섞여 있다. 글쓰기 책도 한 권 빌렸다. 다시 읽고 공부하면 나의 글이 좀 더 괜찮아지겠지라는 믿음으로 빌렸다. (아마 이 책도 '계속 쓰세요'이겠지). 이번에 번역된 책들은 읽기가 좀 수월 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올시간이다. 간식으로 치킨퀘사달라를 만들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버림과 정리 덕분에 한결 깔끔해진 주방에서 요리하는 반가움은 계속해서 유지 중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저녁시간 모두가 잠에 들고 혼자 거실에 앉아 조용히 책을 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찔금 찔금 읽기도 하고, 한번 마음 뺏긴 책은 그 자리에서 완독 하기도 한다. 2권은 정말 잘 빌린 것 같은데 다른 번역된 2권은 읽기가 힘들다. 번역본들의 특징은 매번 그렇듯 문장의 끝이 없다. 단어만 나열한듯한 길고 긴 문장들과,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는 글들. 분명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 텐데 결국 2권의 책을 난 그냥 덮었다. 번역이 잘된 책들도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이렇게 마구잡이로 직독 직해 인지, 의역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은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한 문장을 3번 정도는 다시 집중해서 읽어야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때도 있다. 그럼 난 다시 내가 한국어가 안되나? 내가 난독증이 있나?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함께 동거하는 남 에게 그 부분을 읽혀 본다. 그럼 그도 동의한다. '이문장 번역은 좀 이상한데'라고 말해준다. 마치 꼭 나의 의견에 무조건 항상 의무적으로 동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면 난 그때서야 나의 보족함은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이 들면서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기껏 빌려온 두 권의 책을 덮어버린다.
아쉽지만 어쩌겠어. 다른 나머지 책들은 한국유명 작가 책이니 음미하면서, 맛보면서, 필사도 하고 보석 같은 문장은 다시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되새기며 읽어야지.
by Onpenchoi.
<Main photo by Peter Kn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