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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Nov 17. 2023

당신이 쓰고자 하는 책의 값어치는?

책이 짊어진 무게

주로 집안일을 할 때 음악과 함께 하는 편이다. 그날의 기분과 무드에 따라 팝, 가요, 재즈, 클래식등 여러 가지를 돌아가며 듣는 잡식형 음악 감상자다. 그렇다 보니 노래 제목, 가수, 앨범명등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럼 어떠하리~ 집안일을 하는 동안 귀도, 마음도 즐겁다. 음식맛은 더 풍부 해진  것 같다~ 기분 탓인가?


오늘은 잘 알지도 모르는 팝에 맞춰 콧노래까지 절로 나온다.

또 나만큼 나이를 먹은 올드한 느낌의 추임새 '앗~싸'도 나왔다.


왜냐고요? 호호호홍~~


참으로 고맙게도 아이가 학교에서 운영하는 클럽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 것임. 강제로 시킨 거 절대 아님). 덕분에 일주일에 4시간이 갑자기 '펑' 하고 생긴 셈이다. 마치 뻥튀기 과자가 기계에서 튀겨져 나올 때처럼 갑자기 튕겨 나와 내 품으로 쏙 들어온 시간 같다.


비록 3달 동안만 허락된 시간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포상 같은 시간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군인이 일박 외출 허가를 받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마치 휴가 나온 그날 하루는 길 가다 먹고 싶은 달달한 도넛 하나를 입안에 다 털어 넣는 느낌 같은 거?


아침에 요가를 다녀와서도, 청소를 마치고 나서도, 장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나에게 2시간이 더 남았다.


('아들아.. 피곤하겠지만 앞으로도 좀 더 자주 학교 클럽활동을 신청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속으로 외쳐 보았다. 그러다 바로 미안해졌다. 앞으로 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5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실이 각인되었다. 또, 학교를 이른 아침에 등교해서 차마 클럽을 더 자주 신청 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출처: 출판하는 마음>



더욱 여유롭게, 더더욱 느긋하게, 그 어떤 조급함도 없이,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아이가 늦게 오는 날이다. 집을 나서서 도착한 곳은 도서관이다. 급할 것 없으니 이전처럼 청구 기호만 보고서 필요한 책만 쏙쏙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어슬렁, 어슬렁 좋아하는 철학, 심리, 인문 코너를 쓱 훑어보고 오늘은 저 끝에 '총류'라고 적힌 코너를 가보았다. 항상 그곳이 궁금했다. 도대체 총류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총류라고 분류된 책장에는 의외의 책들이 참 많이 있었다. 마케팅부터 글쓰기, 출판, 편집, 구글, 웹디자인까지 각양각색의 책들이 꽂혀 있다.

 

마케팅, 책 출판, 온라인 출판 제목의 책들은 날 잠시 이전 기억 속으로 데려갔다.


이전에 인터넷 자가출판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었다. 크몽, 부크크 (다른 곳은 잘 모름, 많이 들어 본 곳이 이 두 곳) 등 인터넷으로 책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많고 수익도 꽤 창출된다고 했다. 그래서 '호찌민 국제학교' 이야기를 더 밀도 있게 수정하고 다듬어서, 그곳 현지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 형태로 글로 엮어 크몽에 한번 올려 볼까?'라고 생각만 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크몽이 뭐 하는 곳인지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망설여졌다. 또, 구글 Canva에서 책 커버를 만드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만큼의 열정이 나에겐 없었다. 즉, 만인이 한결처럼 이야기하는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난 그토록 전자책 출간이 절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실행'을 하면 된다는데...

그럼 경험이 쌓이고, 요령이 생기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과정이 내 인생의 지렛대 역할이 되어 준다는데..

차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냥 먼 나라 이야기만 되었다.


어쩜, 난 그냥 지금 현재 글 쓰는 이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만족감이 채워진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 글감을 물색하고, 책을 읽고, 글을 발행하는 그 순간, 나의 사고와 생각이 문자의 형태로 변형되어 하나의 실체로 드러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탄생시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좋다.

그 과정이 즐겁다.

아직 서툴러 표현하고자 하는 의식, 지각, 느낌표현을 잘 못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나의 현 상황이 사실 더욱 놀랍기도 하다.




어느덧 나의 손은 '인터넷 책 만들기'가 아닌,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법', '투고하는 법', '에디터가 하는 일' 등의 책들을 한 아름 뽑아 들고 있었다. 전혀 몰랐던 그곳 분야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넓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 빌려 갈 수는 없으니 집으로 빌려갈 책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떻게 고르냐고? 작가가 쓴 '머리말' 위주로 우선 읽고, 목차를 구경한다.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아 몇 구절 읽은 다음 '솔직, 담백'한 글, 즉 진정성이 좀 느껴지는 책을 고른다. 그냥 한마디로 '읽었을 때 느낌이 오는 책'을 선택한다. 직감적으로 선택하는데, 종종 실패할 때도 많다.


도서관에서 먼저 빌린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서점에 가서 직접 구매를 한다. 이유는, 아쉬움을 해소하고 마음속 한편에 남아 있는 약간의 모자람을 매우기 위함이다. 구매한 책에는 차마 도서관 책이라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을 수 없었던 줄을 마음대로 쭉쭉 그을 수 있고, 아래, 위, 옆에 메모도 남길 수 있다. 또다시 생각하고 읽고 싶었던 페이지는 접을 수도 있어서 왠지 모르게 마음 든든하다. 그러고 보니 책을 깨끗이 보는 편은 아닌 듯하다.


내 마음대로 책을 만지고, 닫고, 열고 할 때 비로소 난 그 책과 일체가 된 느낌인데 그 감각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의 지식을 훔치고 싶고, 문체를 닮고 싶고,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맛을 흡수하고 싶다.




이렇게 책에 대한 글을 적다 보니, 순간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책을 나만의 방식대로 읽고 보는 습관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생물책이 사전만큼 두꺼웠고 A4크기 사이즈의 책이었다. 집에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학교에 두고 다니면 과제를 할 수 없었다. 그때 난 별생각 없이 칼로 책을 챕터별로 나누어 찢은 다음 소분해서 들고 다녔다. 가볍고 시험기간에 공부하기도 좋았다. 말 그대로 나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고 나름 논리적이었다. 크고 무거우니 작고 가볍게 만들면 된다는 논리말이다.


추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한테는 등짝 스메싱을 당했고, 아빠는 나의 그런 행동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참, 우리 집에서 돌연변이는 남동생이 아니라 항상 '나'였다.) 주변 친구들(주로 한국친구들)도 '미쳤다'라고 했다. 그 책이 얼마 짜리인데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우리는 다음 학년으로 넘어갈 때 그 책을 10학년 (아래학년) 친구들에게 중고로 다시 팔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행동은 그들에게도 꽤 충격을 주었던 거 같다. 하지만 몇몇 인도 친구들과 홍콩 친구들은 나를 따라 소분해서 다녔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아마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책을 '깨끗이 봐라' '말라'는 개인의 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완전히 흡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종종 우리 집 꼬맹이한테 권하기도 하는데, 그 아이도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이상한 건가?





어쩌다 나의 추억 팔이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난 느낌 좋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고, 차근차근 편집자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집중해서 읽었다. 2권은 실패. 나머지 4권은 추천하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읽고 나서 나의 감정은 묵직했다. 책 한 권의 값어치는 돈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크몽으로 전자책을 마구 출판해 수익을 창출해 볼까 했던 나의 얕은 잔꽤가 쪽팔렸다. 그게 잘 안 팔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크몽으로 책을 출판하는 모든 분들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책이란 '심장'과 같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고 그 책 하나에 작가 한 사람의 심장만 있는 게 아니라 출판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사람의 심장이 합쳐 저 하나의 결과로 만들어낸 산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출판 업계, 편집자, 인쇄소, 온라인서점 MD 등 그들의 업무는 어마어마했다. 그저 어설프게 알고만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들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책을 내가 만난 것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울리는 책을 만나면 설레기까지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아쉽게 번역본이긴 하지만, 조르바 책은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저며 온다.


독자일 때 마주하는 책과 작가 즉 쓰는 사람일 때 마주하는 책 그리고 편집자, 마케터, 제작자가 마주하는 책은 한 권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책이었다. 책은 그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성공과 실패 판매량을 따지기 이전에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는 살아있는 결과물 같았다.


책을 읽고 나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문장 실력이 오늘따라 야속하게 느껴지는 하루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나란 한 인간이 그 글 속에 담겼을 때 비로소 그 글이 살아날 것 같다는 생각이 짙게 들었다.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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