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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Dec 02. 2023

남편이 '우리 떼부자 되겠다'라고 했다.

이래도 저래도 즐거운 일상

맘먹고 전체 모래 갈이 하는 날이다.


코코가 집에 오고 나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안 변한 듯하면서 변했다. 인간삶 속에 반려묘 삶이 녹아 들은 건지 반려묘 삶 속에 우리가 끼어든 건지 경계가 애메모호한 삶을 각자 살고 있다.


I am watching you. Human.

코코는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에서 우리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코로나 시국도 함께 버텨온 녀석이다. 우리가 격리를 당하는 동안 코코 역시 인천공항 동물보호소에서 열흘동안 격리를 당했다. 열흘 후에도 우리 식구는 여전히 격리 중이었다. 애견택시 7인승을 대절했다. 왕복 비용값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코코는 용감하게 앞 좌석 기사아저씨 옆에 타고 왔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우리를 배려해서 기사 아저씨가 집 앞에서 코코를 인수인계 해 주었다.

”하! 이 녀석 울지 않고 잘 왔어요. “


맘고생이 심했는지 코코 몰골이 그야말로 상 거지꼴이었다. 바로 냥빨했다. 우리 식구를 보자마자 골골거렸다. 어린 나이에 힘들었나 보다. 코코는 새로운 집에 적응 따윈 필요 없었다. 거지꼴을 하고 당당하게 좁은 집구석을 이리저리 킁킁 거리며 냄새맞고 돌아다녔다. 집이 너무 좁아 그의 탐방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바로 거실, 방, 부엌이든 그냥 배를 뒤집어 까고 자고 싶으면 잔다.


자고 또 잔다.


코코는 병원 의사선생님 한테도 사랑을 받는다. 담요 따위 필요 없다. 의사 선생님 품, 책상, 책꽂이 위를 점령하고 선생님 혼을 빼놓는다.


코코가 유일하게 눈치 싸움을 하는 대상은 우리 집 중딩 아들이다. 중딩아들 다리 방향을 소파 밑에서 지켜본다.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 치밀하게 관찰한다. 행여 자기 쪽으로 발이 향하면 후다다닥 베란다 해먹으로 올라간다.


코코와 중딩 아들은 축구도, 숨바꼭질도, 공놀이도 하지만 중딩아들의 격한 애정 표현을 코코는 상당히 귀찮아한다. 중딩아들이 방문을 닫고 잠에 들 시간이면 코코는 아들놈 방문 앞에서 새벽 1까지 꼼짝 안고 엎드려 함께 잔다. 둘의 관계가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11월이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코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남편 없이 혼자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었다. 출장 다녀온 남편이 드디어 왔다. 주말에 나오는 감자와 코코 용변은 남편이 주로 버려 준다.


"옹빵~~ "

"오늘 전체 모래갈이 해야하는뎅~~~어쩌지?"

(우악스럽고 무서운 마누라 모드 말고, 코믹하지만 그의 기분을 살살 업 시켜줄 모드로 나의 스위치를 잽 싸게 바꾼다)

"아... 그래?"

"빨리 하자, 빨리!"

(좀 귀찮아 하지만 바로 수긍한다.)

성공했다~~~ 아줌마 콧노래 나온다아아아~~

드디어 전체 모래 갈이다~~~

이제 난 보스 모드다. 그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한다.

그는 척척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여러 번 말을 시킨다. 답답하지만, 이 추운데 해주는 게 어디야. 중간중간 감시하면서 물기제거를 위해 마른 수건을 찾는 그에게 버리려고 모아둔 면양말을 한가득 가져다주었다.

"이걸로 닦으라고?"

"응.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이야... 우리 집 떼부자 되겠다. 떼 부자~!!! 어허이~!"

 

저 이렇게 살아요. 코코와 함께~

그와 난 둘이 마주 보고 마구 웃었다.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나의 새로운 모습에 그가 놀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버리기 아까웠다. 세탁 후 뒷 베란다 걸레 수납함에 소복이 모아 두었다. 주로 방충망이나 문틀사이를 닦고 버렸다. 한국 와서 처음으로 나의 물건으로 나의 살림을 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요즘이다. 절약하고 미니멀하게 사는 생활 콘셉트가 좋아 따라 하기도 한다. (미니멀도 아니고, 근검 절약하는 아줌마도 아니다. 명품 가방도 있다. 오해말기를) 갑자기 울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차.. 이게 나이 들었다는 의미인가?


흰 양말을 폭폭 삶아서 기름병 커버로 사용 중이다. 중딩아들이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왜? 어때서?


이거 짱 좋아요!!


두 남자는 나의 행동에 가끔 황당한 웃음을,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둘 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그래서 난 나날이 내 살림을 내 마음대로 꾸리며 살고 있다. 처음 알았다. 살림을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계란 말이할 때 계란도 난 큰 컵에 계란을 푼다. 살림을 이리저리 구색에 맞추어 장만하지 않았다. 이쁘고 아기자기한 것과 거리가 멀고도 먼 아줌마다. 이 참맛의 자유를 알게 되어 혼자 실실 웃을 때도 있다. 그냥 웃는다. 하늘 한번 보고 앙상한 나뭇가지 한번 바라본다.


이젠 친정엄마 잔소리에 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녀도 이젠 날 좀 편히 내버려 둔다. 천만다행 중에 다행이다. 난 좀 더 빨리 성숙된 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그녀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다. 이젠 내가 그녀를 보살펴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난 깊고 큰 어른사람이 되고 싶다.


"다했어~!!"

그가 소리친다.


코코도 지금 깨발랄하다.

집사~! 땡큐~^^


오늘 하루도 난 충분히 감사하다.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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