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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Feb 13. 2024

'해방의 밤'

독서 제공받고 적는 서평입니다.

우연히 읽었다. '출판하는 마음'. 도서관 기타 분류에 꽂혀있었다. 출판사가 뭘 하는 곳인지 궁금했고 편집자란 직업이 궁금했다. 어는 순간부터 무언가 궁금하거나 알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 보단 도서관에서 한 가지 주제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빌려 동시에 읽으면 저절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때 처음 '은유'작가님을 알게 됐다. 신기한 인연이다. 출판, 편집과 관련된 책 6권 정도를 빌렸는데 그중 두 권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중 한 권의 저자가 '은유' 작가님이었다. '출판하는 마음'은 정말 그 마음을 다 들여다 볼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아련함. 소중함. 안타까움. 가벼움. 행복. 기쁨. 보람. 슬픔. 고통. 책출판 뒤 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기쁨. 그 모든것이 보이는 책이었다.


그 뒤 은유작가님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고 '해방의 밤' 출판 소식까지 접할 수 있었다. 운 좋게 서평단 모집에 통과했다. 아들에게 10번 넘께 자랑했다. 인스타에도 자랑했다. 너무 좋아 계속 계속 자랑했다.


책을 받고 기쁜마음에 꼭 껴안아 보았다. 책을 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책. 붉은 제목. 뭔가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고 할까? 제목이 '해방의 밤'. 은유 작가님에게 '해방'이 도대체 어떤 의미 인지 궁금했다.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책을 여는 첫 페이지부터 가슴이 탁탁 메였다.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쓴 은유 작가님이 그대로 보였다. 작가님의 강인함. 부드러움. 단단함. 그리고 항상 성찰하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며 삶에 솔직한 한 인간의 모습, 여인의 모습, 엄마의 모습, 작가로서의 모습이 보였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서평 할 자격이 될까?'였다. 그만큼 이 한 권의 책은 무겁고 우물처럼 깊었다. 작가님은 홀로 묵묵히 자기 삶을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셔다. 그녀의 삶이 보였다.


나 역시 꽤 늦은 나이에 '자유'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몸에 담았다. 은유작가님이 이야기하는 '해방의 밤'도 어찌 보면 삶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고정된 사고. 관습적인 문화. 세뇌된 뇌. 비교하는 삶. 불평등한 사회. 자기가 믿는 것이 곧 진리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개개인의 모습. 그 모든 걸로부터 벗어 나는 '해방'. 그때 비로소 갖게 되는 삶의 가벼움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동반하게 된다. 그들의 아픔이 보이고 더불어 사는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즉 여러 사람들과 아울러 서로 연처럼 이어져 있는 우리 삶을 보게 된다.


은유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p23 '질문 있는 삶'을 살도록 자극해 준 책과 사람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도서관 모퉁이에서 시작한 읽기 생활이 나를 넘어 타인과 세상으로 확장되었다. 지적 유희나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실천적 관점에서 깊이 읽기를 시도했다. 그 경험과 사유를 엮어 또 하나의 언어 다발을 묶어낸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중략> ~ 즉, 고정된 생각과 편견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기에 쓴 것 같다. 나도 해방을 우리의 언어로 삼는다. 비록 앎이 주는 상처가 있고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무신경함이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으며, 적어도 약자의 입막음이 평화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더디 걸리더라도 배움을 통한 해방은 내적 평안에 기여하고 낯빛과 표정을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해방은 평화를 몰고 오는 것이다.


'해방'이란 의미는 '자유'였지만 어감상 더욱 강력하고 자유보다 더 자유스러운 자유였다. 그야말로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까? 얽매이지 않고 내가 주체가 되어 묵묵히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고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경험한 이야기를 '해방의 밤'에 기록해 두었다.


한 챕터 마다 대충 읽고 지나 칠 수 없는 문구와 은유작가님이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책 목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책들의 독후감은 아니고 그녀 자신이 그 책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배우고, 해방을 느낀 책들이다. 생에 풀리지 않던 물음을 그 책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토록 진정성을 담은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 뭉클했다.


작가님이 공유한 보물 같은 '책 리스트'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어떤 마음으로 저 책들을 우리 독자 들과 나누고 싶어 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녀가 가진 비밀의 문을 독자들에게 열어 주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이 책을 받고 서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순간이 감사했다.


책에서 몇 단락 발췌를 해 보았다.

<한국 성폭력 상담소 부설 열림터 글쓰기 수업 내용>
P.265
와, 저는 조용히 환호했죠.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해석권을 가져오는 나랑 15세, 최고다! 옆에 있던 푸름도 동조했습니다. "남들은 내가 열심히 살아도 평생 힘들 거라고 말했죠.(왜요?) 부모의 뒷받침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니에요. 아픔과 상처를 견디는 거지만 살아내고 있는 건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러더니 무심하게 말했어요. "나는 내 상처를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아픔을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를 숨기지 않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P.289 글쓰기는 문장 쓰기가 아니라 관점 만들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비문 없이 정확한 문장들, 문학적인 수사를 곁들이 서사가 아무리 매끄럽게 전개되어도, 혐오와 차별 표현이 있는 글이라면 공적인 글로서 가치를 잃죠. 저는 이 부분을 분명히 짚었습니다. 교재로 읽은 책에도 나왔듯이 장애인, 여성, 이주민 같은 소수자의 경우 개인이 잘못해도 집단이 매도당한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다, 글 쓸 땐 혹시 편견과 통념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책 내용을 내 일상으로 가져와 검토하자고요.


'해방의 밤'은 여러 사람들의 삶과 인연이 닿은 은유작가님의 고뇌, 삶, 인생, 사색 들이 수록 되어 있다. 어떤 시각으로 이 책을 읽고 넘기느냐는 각자 개인의 몫이겠지만 한편으로 '노조, 사회 편협, 정치'쪽의 성향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난 은유작가님의 눈으로 '해방'의 의미를 곱씹으며 이 책을 완독 했다. 작가님은 비록 '해방'이라 표현을 했지만 나에겐 '자유'로 와닿았고 그 자유는 스스로 자기 삶에서 자유로와 졌을 때 진정한 '해방'을 맛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굳건하면서 부드럽게 눌러쓴 이 책이 나의 책꽂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위안이 된다. 스스로 얽매이고 힘들 때마다 작가님이 공유한 책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을 생각 하니 한동안 도서관에서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이 책 저책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책들을 읽으면 마치 나도 작가님처럼 '이거구나!',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같은 위대한 말들이 위로해 줄 것 같다.


처음 프롤로그를 읽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던 한 구절은


P16.
이전의 '도서관 신'이 막 복 나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복 재생되었다.
막을 새도 없이 하품하듯 무심하게 울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이 찬연한 봄날, 슬프지도 않으며 기쁘지도 않았고 다만 감정의 깊은 고요에 잠겼다. 이 눈물은 왜지. 도서관을 오는 이유를 모르듯 눈물이 나는 이유도 모른다. 그런가 보다 한다. 원래 세상엔 이유를 모르지만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으므로,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긴 그림 같은 질문이 눈물로 솟아나는 때가.


한참을 머물렀다가 다음 단락으로 눈을 돌렸다. '해방의 밤'은 이런 책이었다.



왜 해방의 밤인가?


p 24
"철학자 헤겔의 유명한 경구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개를 편다'라는 말도 있듯이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시간이 경과해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억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무엇이 자신을 억압했는지 보인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시간 밤은 ,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내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이러한 뜻을 모아 '해방의 밤'으로 제목을 정했다. 나를 자유롭게 해 준 말들, 아픈 데를 콕 짚어주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신통한 말들, 기어코 바깥을 보게 만드는 문장들,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 없어' 같은 위대한 말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반칙인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당신도 '해방의 밤'을 읽고 짙은 감정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권의 책인데 책에 수록된 여러 책 때문에 마치 백 권의 책을 가진 느낌.


감사합니다.

은유 작가님.



by choi.


#은유#해방의밤#독서에세이#창비#새해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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