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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야, 자유로워야, 나는 산다.

나를 지키는 길

by Choi

"휴일인데 일찍 일어났네?"


"우와, 샤워도 했어? 머리도 감았네? "

"코도 골면서 자던데, 잘 잤나 보군."



바나나 하나를 손에 불끈 쥐고 면도를 하며 3줄의 독백을 그가 남겼다. 그는 아침, 점심, 저녁을 먹어야 하는 정직한 오장육부를 가진 사람이다. 신혼 초에는 여러 번 마찰이 있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의 귀중한 아침잠을 확보했다.


나의 '승'



그는 자상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정이 가득 담겨있지만, 공감능력이 없는 그런 사람이다. 감정선이 아주 섬세한 나와 그에게는 어느 정도의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있어 종종 갑갑할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살아 줄만 하다.


'응, 나의 온전한 하루잖아. 나의 하루잖아. 나의 하루였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순간 홀로 머릿속에서 나는 저렇게 말하고 있었다. 잔잔하게, 동요 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막 끓어 올리거나, 무슨 힘이 넘치는 파이팅의 목소리가 아닌,

호수 위에 잔잔함 같은 톤으로 스스로에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짧게 자른 단발머리를 드라이기로 계속해서 말렸다.



2023년 이후 난 괜찮아진 줄 알았고, 난 괜찮은 줄 알았고, 나도 어느 정도 정상인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회복의 경게선에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그리고 그리 보였다.


2년전, 어느 봄날 아침 요가원을 걸어가면서 싱그럽고, 상쾌하고, 코가 찡하는 뭐 그런 아침 기운이 가슴 팍 안으로 훅 파고 들어올 때,

처음으로 이런 기분이 정상인, 그러니 일반인 들이 느끼는 기분이구나를 느꼈을 때, 그때 난 이 정도면 난 괜찮은 줄 알았다.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남은 나의 삶을 그녀 옆에서도 괜찮을 줄 알았다. 무엇보다 난 세상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으니깐...


다시 그녀 옆에있는다는건, 나의트라우마를 더욱 자극 시키는 일인지 알았더라면...

그만 두었을텐데..


다시 무너졌고, 이젠 마지막일 것 같은 직감이 든다.


홀로 서야 한다. 일어나야한다.

다시 만진창이 되었지만,

만약 남은 생을 나답게 살고 싶다면,

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꼭 해내야만 한다.


이번생에, 마지막 과제.




by choi.


<사진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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