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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통증 프롤로그

by Choi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갇혀있는 아니, 그 속에 가두고 있는 사람은 정작 '나'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고요했다.' 그 순간이 눈에 보이고 직관하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과 세월이 걸렸다.


그녀가 떠오르면 두려움, 미움, 죄책감, 나의 영혼을 짓누르는 무게가 한 덩어리로 얽혀 가슴에 박혔다. 영원히 그 속에 박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걸 끊고 해결해야 할 사람이 나라는 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너무 춥고 외로웠다. 아픔이 뭔지, 고통이 뭔지... 느꼈다고 할까..


종종 ‘엄마니까’, ‘부모니까’라는 말에 스스로의 감정을 눌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연극을 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 칭찬도 받고, 사랑도 받았다. 그 사랑은 '조건의 사랑'이었다. 조건의 사랑은 나의 몸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그 못은 서서히 날이 갈수로 많아졌다. 하지만 그 못은 아무도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그 못은 몸을 관통해 내 심장과 영혼에 박히기 시작했고 난 공주 드레스, 화려한 드레스, 눈이 부시는 드레스를 입고 최고로 사랑받는 아이처럼 성장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상처받은 줄도 모른 채, 상처를 참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렇게 배웠다. 난 참아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엄마를 보호해야 하고, 또, 집안에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원래 딸은 엄마의 모든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고 그녀는 수십년동안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빠는 방관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맏이 딸 역할이 그 두부부에게 정해져 있었다. 어린소녀는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를 잃어 버렸다.


이 글은 그 통증을 직면하고, 이해하고, 결국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여정이다. 어떤 관계든, 나를 잃은 채 유지되어야 한다면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난 다시 이 여정을 시작하고

이번에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더이상의 반복은 없다.


상처받았다고 말해도 괜찮다.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아주 정직하고 용감한 사랑의 방식이다.

통증은 깨달음의 문턱이다. 그 문을 지나, 드디어 나답게 숨 쉬기 시작하는 이야기.


마음은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조용히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아무 일 없던 얼굴로 하루를 지나고 나면,
어디선가 자꾸만 나를 불러 세운다.

이건 그런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 선택.
죄책감 없이, 미안함 없이,
나를 지켜내는 연습.

부드럽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그 방의 문을 천천히 열어보려 한다.



나의 글이 나처럼 아픈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수 있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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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미치도록...


by choi.

22550dd06a769cfe4e8a22285553e668.jpg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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