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 Jan 04. 2021

글 조회수 5만 돌파보다 글이 읽혔다는 감격과 거룩함

저에게 이런 과분한 날도 오는군요.

얼떨떨한 일이 생겼다. 노안으로 최대한 눈을 가냘프게 뜨고 봤다. 이제는 눈을 크게 버럭 뜬 체 글자를 보면 글자가 퍼질 때로 퍼져 읽을 수 없다. 글씨가 흐릿하니 초첨이 흐트러진다. 다시금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확인했다. 조회수 1000을 돌파했습니다. 12월 31일 저녁 10시 40분 호치민 시각. 잘 준비를 마치고 포근한 침대에 지렁이처럼 쓱 몸을 밀어 넣었다가 런닝과 속옷 바람으로 후다닥 남편에게 달려갔다. 온몸에 세포가 쭈삣 쭈삣 되살아 나는 듯했다. 거실에서 오락 프로를 보던 남편이 무슨 말이냐고.. 왜 또 호들갑이냐고...

(그도 늙어가고 있다. 저녁식사로 닭곰탕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운후 둥글하게 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세상 편한 헐렁한 사각팬티바람으로 소파 전체를 다 차지한 체 오락 프로를 보며 헤벌레 웃고 있던 남편은 '저 여자 또 시작이군' 하는 눈초리로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아니 이것 봐봐, 뭐가 잘못됐나 봐. 이거 지금 무슨 일이야? 아니겠지? 이상 하지?”  


남편이 다시금 찬찬히 본다.

난 털 팔이고 남편은 찬찬 꼼 꼼이다. 사고는 내가 치고 남편이 항상 수습한다. 못질도, 운전도, 기계도 작동도 우리 집은 내가 한다. 한참을 보던 남편,

'브런치에서 온 거 맞는데?'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생각. 브런치에서 신입 작가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음 포털 사이트에 가끔 띄어 준다는 것.


후다닥 다음 포털 사이트를 뒤지지만 도저히 나의 글을 찾을 수가 없다. 포기한 상태로 이른 아침 새해를 맞이 하기 위해 취침을 했다. 그저 1000명에게 나의 글이 읽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 중년 아줌마의 정신과 혼이 저 멀리 우주 안드로 메다로 이미 날라 갔기 때문이다. 또 방학 끝자락 이기도 하고 내일 1월 1일, 새벽 6시에 무이네로 여행 계획이 잡혀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 우선 잤다. 호치민에서 무이네 갈 적에 차가 한번 막히면 보통 5시간에서 6 시간 걸린다. 그 정체를 피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새벽 6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요 몇 년 사이 새로 잘 개통해 놓아 차가 막히지 않으면 보통 3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무척 오래된 리조트였지만 초록초록과 함께 힐링. (3시간30만에 도착)

2021년 1월 1일.

새벽 4시 30분. 새해에도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순간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다 하이킥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앉았다. 사방이 깜깜한 새벽 4시 30분. 간밤에 브런치로부터 많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제저녁 1000 돌파가 끝이 아니었어? 도대체 이게 지금 무슨 일인고 하니 4천을 돌파했단다. 무슨 소리야? 오전 5시, 8천을 돌파했다고 알람이 울렸다. 어라? 그 '김치 담근 이야기가?’ 어흐이~ 얼토당토 없이, 뜬금없이 갑자기 김치 담근 스토리가 2021년 1월 1일 새해에 느닷없이 8천을 돌파했다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브런치로 돌아와 혹시 오타는 없는지, 이상한 문장은 없는지 두 눈을 뜰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크게 뜨고 읽기를 반복했다. 글쓰기 실력이 발바닥 수준이라 도저히 못 찾아내겠다. 포기하고 그냥 덮었다. 그런데.. 계속 메시지가 날라 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동시에 팔딱팔딱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살아 있는 소리였고 현재 살고 있다는 심장의 소리였다. 부르르 떨림이, 전율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타고 올라와 어느새 눈이 흐릿해지며 갑자기 눈물이 앞으로 확 쏠렸다. 손으로 후다닥 훔쳐 내렸다. 아침 시간이다. 상황 파악은 안 되지만 난 시간의 주인, 하루의 주인 되기 위해 감정은 우선 뒤로 밀쳐냈다. 6시에 무이네로 출발해야 한다.

술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새해 첫날 어김없이 하루루틴을 시작하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새벽 시간은 잠시라도 쓸데없는 것에 집중을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5시를 훌쩍 넘기기 때문에 바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요즘 12월 호치민에 해가 무척 늦게 뜬다. 새벽 4시 40분쯤 아직도 둥근달이 환하게 떠 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하다. 찬바람이 카디건 사이사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찬바람이 좋다. 시원한 바람이 아닌 얼음처럼 찬 바람. 에어컨 바람이 아닌 자연의 차가운 바람. 작년 이맘때쯤엔 한국 스키장에 있었는데. 우리 집 식구는 일부러 겨울, 추운 곳을 한 번씩 꼭 여행을 간다. 그래서 러시아를 간 적도 있다. 코 끝으로 느낄 수 있는 찬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 큰 호흡을 한번 들이마셨다 내뱉은 뒤 몸을 일으키는데, 누가 베란다 문을 똑똑 두드린다. 어느새 아이가 일어났다. 새벽 일찍 출발한다는 말에 아이도 설레어서 일찍 눈이 떠졌나 보다.


2021일 4:40am 달이 떠 있다./ 2020년12월31일 저녁 저게 끝인줄 알았다./ 2021년.1월1일 새벽 4:41분.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2020년. 1월 1일. 오후 11시 30분 무이네 도착.

지금 현재 무이네 리조트다. 도저히 나의 글을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 포털에서 브런치 글이 어디에 올려지는지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홈엔 쿠킹'에도 브런치 글이 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았다. 꼬박 거의 20시간 동안 알람을 받은 이후 나의 글을 찾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엉. 망. 징. 창. 인 김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베트남에서 결국 김치를 담그다'글은 꽤 며칠에 걸쳐 작성한 글이다. 사실 김치 담근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라는 마음에 글쓰기 연습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적기 시작한 글이다. 글을 쓰다 베트남 옛날 추억도 되살아 났고, 적다 보니 글이 살아 움직이는 듯, 글을 쓰는 내내 혼자 피식 웃어가며 기분 좋게 적고 마무리한 글이다. 글을 적고 나서 마지막에 김치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 둔 채 김치 뚜껑만 열고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초점도 조금 흐릿하지만, 나름 괜찮다는 생각에 편집도 없이 그냥 올린 사진이다. 내가 담근 김치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딱히 보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진이 다음 포털'홈엔 쿠킹'에 떡 하니 걸려 있었다. 어쩌자고 저 사진이 저기에 걸려 있을까? 김치 담그는 요리 글도 아닌데. 왜 저 글이 저기에 있는 거지?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생각. 깔끔하고 사진작가들이 찍었을 법한 세련된 사진들 옆에 시뻘건 고춧가루에 범벅이 된 나의 배추김치 사진이 떡 하니 무척이나 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겨우 찾은 나의 글. 남기고 싶어 캡처./ 민망합니다.

그런 회상도 잠시. 다시 새로운 알람이 울렸다. "결국 베트남에서 다시 김치를 담그다" 글의 조회수가 5만을 돌파했습니다."  믿기지 않아 50000 뒤에 숫자 '0'을 뒤에서부터 '일, 십, 백, 천, 만'으로 세어보았다. 5만이 맞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의 몸이 떨렸다. 남편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바닷가만 한없이 바라보았다. 해 질 무렵 어둑어둑한 바닷가에, 그저 파도 소리만 힘차게 들리더라. 물이 밀려들어왔다 주르륵 밀려가는 파도소리. 텁텁한 공기와 습기 가득한 공간. 마치 세상은 아무 일도 없고 온전히 항상 그렇듯 자기 각자의 임무만 열심히 하는 것처럼. 파도는 열심히 파도치고, 해는 지고 어둠은 찾아오고, 달이 뜨고, 별은 반짝이고, 다시 아침은 찾아오고.

현실을 직시하면 신입작가들에게 한 번씩 주는 기회인 것을 나도 잘 안다. 내 글이 재미나고, 잘 썼고, 흥미로운 글 이라서가 아니라, 브런치에서 나를 배려해준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감사한 마음이 뼛속까지 쓰며들었다. 글쓰기를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구성도 내 맘대로 이리저리 그야말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는 사람인지라 감회에 더 깊이 젖어든 듯하다. 새해 첫날 나에게 이런 기쁨을 안겨준 이유가 있을까? 더 열심히 쓰라고? 나 글 써도 된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메말라 버린 저 우물 깊은 곳에 홀로 앉아 있는 나에게, 저 위 우물 끝자락에서 누군가 가느다란 밧줄 하나를 '툭' 하고 던져준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사방팔방이 다 막힌 그곳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짜잔 하고 내려온 동화 줄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나의 무료하고 먹먹한 삶에 들어온 한줄기의 찬란한 빛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바짝 마른 건조한 입술, 갈증으로 목이 타고 있을 때 한 방울의 물이 어느 누군가의 실수로 입술 위로 툭 하고 떨어진 뒤 그 물방울이 목을 타고 넘어가 드디어 살 것 같은 그런 느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나에게 올 때가 있구나'라는 말 그대로 정말 그런 느낌.


나.

'사진이라도 좀 이쁘게 찍을걸.'

'아으… 이를 어쩜 좋아.'

'진짜, 정말로,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게 맞아? 응?"

남편.

' 하하하 너 이제 작가야? ' (맨날 놀린다.)

' 그런데 김치 담그는 이야기가 호치민 이야기보다 한국사람들에게 더 공감이 많이 되나 보다.'

나.

'그런가 봐...'

'근데 이거 지금 현실인 거지?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 거지?'

'그런 거지?'


'0'을 뒤에서부터 세어보았습니다. 5만.

감사한 마음이 넘쳐나다 못해 철철 넘쳐흘러 브런치 홍보 대사라도 나설 기세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동생한테도 부추겼다. 뉴질랜드에 정착한 내용을 브런치에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라고. 동생 왈 (경상도 사투리)

"누나야, 내가 안 해도 지금 뉴질랜드에서 하는 사람 많~다. 유튜브도 한다. 누나도 이제 유튜브 해라."

멋대가리 없는 남동생이 한 말이다.

에디터님에게 감사해야 할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앞뒤 볼 것 없이 그냥 브런치에 감사하다. 두 번의 탈락 끝에 겨우 붙은 이곳. 나만의 바운더리.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감지 덕지 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쓰며, 스스로 만족해하며, 머리에 노란 꽃 단 여자처럼 희죽희죽 웃고 다니는 마당에. 새해 첫날 이런 감동까지 나에게 준다면. 난 브런치 빠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가 마흔 넘은 이 아줌마 글을 읽어 주겠는가. 브런치 특성상 나의 글쓰기 실력보단, 호찌민에 살고 있다는 강점이 더 부각되어 브런치 작가가 된 게 아닌가 하는 나만의 무력감이 항상 이었다. 그리고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정독해서 읽다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그곳. 브런치. 내가 이곳에 소속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호치민에 살아서겠지'라는 혼자만의 상실감이 공존하고 있는 나만의 브런치 공간이다. 그럼 뭐 어때. 기회는 주어졌고 난 어떻게든 꾹 움켜 잡고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아줌마 정신으로. 무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창피할 것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는 아줌마 힘으로.

글쓰기 강의를 어느 누구한테 직접 적으로 지도를 받아 본 적도 없고 그저 베트남에서 혼자 온몸으로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두 눈 질끈 깜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글을 올렸다. 댓글이 없고 좋아요가 없어도 그냥 올렸다. 그 글이 현재 나의 실력이고 최선이었다. 굼벵이처럼 꿈틀 되며 앞으로 눈곱만큼이지만 가다 보면 될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꿈이 있었다. 어디서 감히 그런 뻔뻔함이 나왔는지. 아마 나도 살고 싶어서였겠지. 간절했고 지금도 그 누군가가 나타나 나의 글에 대해 이래저래 알려 준다면 참으로 고마울 것 같다.(그럴 일이 없다는 거 잘 안다.) 글쓰기 온라인 강의도 많다는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캄캄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마 계속 글을 쓰겠지.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직립보행 다음으로 최고로 값어치 있는 행위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브런치를 짝사랑하는 빠순이. 나 참~ 마흔 중반에 무슨 팬클럽도 아니고.

 2021년 1월 1일을 난 브런치와 시작을 했고 망상이든 환상이든 혼자만의 착각이든 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나, 글 계속 써도 된다고, 브런치가 알려줬다고.'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장님처럼 손으로 더듬더듬 기어가며, 앞에 길이 있음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가고 있는 이 아줌마에게, 브런치가 용기를 줬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

'달리 감사하다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아 미안하다고.'

'기왕지사 이미 엎질러진 물, 이대로 쭉 밀고 나가보려 한다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니체 책을 몇 달에 걸쳐 읽었어요. 2번의 포기와 3번째 이 악물고 도전했어요. 남편이 또 그러군요. '고 3 수능 준비하냐고.' 뭐. 저희 신랑 좀 웃깁니다. 그중 이 문구가 생각납니다. 미쳐보려고요. 아줌마가 미치면 무섭다던데. 뭐 별일 있겠어요. 그래 봤자 50을 향해 달리고 있는 아줌마이지만, 스스로가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은 처음이라서요. 이렇게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저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력도 생기고 글쓰기 실력도 향상되겠지요. 그 희망 하나로 돌진합니다. 니체 오빠~ 믿어보겠어!


내려간다는 것은 이면을 본다는 것이다. 자신 안에 꿈틀대는 본능과 욕망, 정념과 열정을 보려면 내면의 심연으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 <중략> 광기가 삶의 원리라면 우리는 때로는 미칠 줄 알아야 한다. 광기는 몰락, 퇴화, 노쇠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면 반드시 광기를 거쳐야 한다. <중략> 고독 속에서 이런 유혹과 시험을 이겨낸 자만이 산을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짜라투스트라의 하강은 시작한다.            -클래식 클라우스- 니체.


2021년 1월 2일. 무이네 새벽 4시 35분. (달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짜로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아시나요? 그 감동과 감회를 아십니까? 전 처음이라서요.

이 브런치가 저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새로운 저를 탄생시키는 중간 통로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 같아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자기 치유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저에겐 그 의미가 현재 생존의 이유가 될 만큼 소중하답니다. 모든 경력이 단절된 채, 주부생활이, 아줌마 생활이 유달리 저에겐 힘이 들었어요. 베트남 호치민 생활이 힘든 게 아니라, 저란 여자에게는 살림과 육아가 숨통을 쪼여올 만큼 힘이 들었답니다. 누군가 그랬어요. 저보고 배부른 한탄이라고. 복에 겨워서 그렇다고. 전 남편과 둘이서 아이를 키웠어요. 그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 혼자 키웠어요. 미숙했고 어렸고 아이가 아이를 키웠다고 보시면 돼요. 뭐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땐 저 말들이 저에게 칼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주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그리고 어느 부분은 맞는 말이기도 해요. 그땐 전 정말 어렸거든요. 강한 햇볕 아래에 그 숨구멍을 틔어준 것이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였고 현재 제 삶에 거의 100프로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될 만큼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 글을 쓰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습관을 바꾸고, 글을 쓰기 위해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고, 글을 쓰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 책을 틈틈이 보고 있답니다. 몇천 명, 몇만 이런 숫자보다 제 글이 현재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정신이 혼미 해졌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를 2020년 한 해는 전혀 하지 못했답니다. 인생의 성패와 성공 여부를 떠나 2021년 올해도 뚜벅뚜벅 걷던지 아니면 기어서라도 가려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언심 올림-


https://brunch.co.kr/@goeunsim/5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