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엄마이자 주부'의 운명.
<첫 김치 탄생 과정>
배추를 소금에 어떻게 절이는지도 몰라 욕실에서 욕조에 석회질 가득한 수돗물로 배추를 절이고, 밤새도록 욕조에 걸쳐둔 배추는 물이 제대로 빠지지도 않았고, 결국 다음날 학교 근무를 마치고 남편과 다시 집에서 만나 양념을 치댔다. 소금도 베트남 소금으로 배추를 절였으니, 뭐 이 김치는 사실 먹으면 큰일 나는 김치였다. 어느 만큼 절여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아 인터넷에 한국 배추김치 만들기 정석 표본 대로 4시간 정도 대충 석회질 소금물에 푹 담 궈 두었던 것이다. (베트남 배추는 한국 배추와 달리 너무 오래 절이면 배추가 물러 먹지 못한다.)
혹시나 싶어 김치를 담그기 직전 친정 엄마와 잠깐 통화를 했다. 우리 엄마 송여사. 그녀는 나에게 외계어로 김치 담그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통화 후 그녀에게서 들은 말을 되새겨 보았다.
‘배추는 소금물을 만들고 속에 대충 소금 척척 뿌리고, 요래 요래 만져 보고 좀 됐다 싶으면, 빨간 고추, 마늘, 생강, 양파를 휘리릭 믹서에 갈고 고춧가루 휘휘 뿌리고, 액젓 좀 넣고, 새우젓 좀 넣고 다시마물 좀 넣고, 밀가루 풀 좀 휘휘 풀어 넣어주고’ - 그럼 김치가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휘휘 , 대충 좀 뿌리고, 요래 요래 버무리고, 팍팍 치대지 말고….
"이리이리 해서 요래 요래 버무리고, 쪼매쪼매 넣고, 이래 이래가 소금 뿌리고..”
“ 엄마, 이리 이리가 어떻게 하라는 거야?
“ 아 왜 있잖아, 이래이래~쪼매쪼매 넣고 버무리면 된다.”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은 이 말이 전부였다. (그녀는 경상도 대구 출신으로 사투리를 사용한다.)
전화를 끊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 엄마. 그때 난 몇 스푼, 몇 그릇, 몇 분, 몇 그람 이런 수치가 절실히 필요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베트남에서 김치 담그기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살림을 살다 온 주부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난 배추조차 어떻게 생긴 배추가 김치 담그는 배추인지 몰랐던 그야말로 ‘일자 - 무식녀’ 그 자체였다.
왜 김치를 담그기를 결심을 했냐고? 같이 사는 이 남자. 주말에도 늦잠 자는 법 없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괴물이었고, 우린 대책이 필요했다. 딱히 요리 실력도 없고 메이드도 없다 보니 주로 밥과 김치를 먹었고 많은 양의 김치가 절실히 필요했다. 계속해서 한국 가격보다 2배 정도 되는 종갓집 김치를 사다 먹기도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사 먹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유독 조미료가 많이 첨가된 베트남 음식을 주식으로 더 이상은 먹기가 힘들었다. 역시 한국사람에게 김치찌개나 김치가 필요한 사실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우린 둘이서 김치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잊을 수 없는 ‘첫 김치 담근’ 그날을 생각하면 둘 다 껄껄 웃고 만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서로 가끔 질문을 한다.
"우린 왜 길쭉한 (일본산) 샤부 샤부용 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궜을까?"
난 베트남 배추가 원래 길쭉길쭉하게 생긴 줄 알았다.
결과는 대 실패였고 김치는 물컹물컹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우리 송여사(친정엄마가) 알려준 '이래이래 해가지고, 요래 요래 버무리면' 된다는 김치는 '이래저래 먹을 수 없는 김치'가 되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김치가 탄생됨과 동시에 사라진 김치이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베트남 배추는 한국 배추와 달리 2시간 정도 빠른 시간에 절여야 하며 최대한 빨리 먹어야 한다. 게다가 내가 산 길쭉한 배추로는 그 어느 누구도 김치를 담근 적이 없다고 한다. 배추는 주로 다랏(Dalat) 농장에서 제배되는 한국 품종과 비슷한 배추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11월 12월 정도 때 제법 초록 잎사귀가 달려 있는 배추가 재배된다. 요즘은 굳이 베트남 배추로 김치를 담그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 싱싱한 고랭지 배추가 수입이 되고, 한국 농작물 판매 직판장에서는 심지어 소금에 잘 절여진 배추를 팔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치를 담궈야만 했다. 아니 김치를 담궈야할 운명이 '주어졌다'가 더욱 맞는 표현 같다.
솔직히, 계속 고민만 하고 있었고 현실을 직시만 하고 있었다.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 오랜만에, 결국에는, 다시 김치를 담궈야 한다는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반찬 단톡 방을 유목민처럼 배회하며 김치를 이 반찬 방, 저 반찬 방 돌아가며 한 팩씩 사다 먹었다. 결국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비비고 대용량 김치(5키로 포기김치)를 3번 정도 사다 먹고, 드디어 우리 가족들은 사 먹는 김치에 물려 버렸다.
난 최선을 다해 가족의 시선을 피했고, 외면했으며 죽을힘을 다해 김치 파는 곳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나마 한 군데 한국에서 직수입해오는 김장김치 파는 곳을 알게 되어 구입해 먹어 보았지만 가격이 한국 가격의 곱절 정도로 후들거렸고 맛 또한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원래 무진장 맛있는 김치였는데, 하필 내가 구매했던 그 시점 한국에서 배송과정에 착오가 생겨 김치 맛이 좀 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운명이려니 하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올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5분 대기조처럼.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마치 운명처럼.
Mega Market ( 대형 할인마트) 이것저것 장을 보러 갔다. 보통 호주산 안심을 사기 위해 두 달에 한번 정도 들러는 제법 큰 마트이다. 딱 필요한 것만 카트에 담고서 쭉 욱 쭉 욱 밀고 지나가다 야채 코너에서 퍼런 잎사귀가 달린 다랏산 배추를 보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못 본 척하고 싶었다. 나름 12월이라 그런지 초록 잎사귀가 제법 달려 있었고,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싱싱한 배추를 보고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1년째 코비드로 한국을 다녀올 수 없는 상황에 버틸 만큼 버틴 가족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우선 겉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베트남 다랏 배추 2포기를 카트에 담았다. 다랏 배추는 한국 강원 고랭지 배추 사이즈 3분이 1 정도만큼 작다. 분명 머릿속에선 '겉절이'라 외치고 있었지만 나의 손은 갑자기 배추 6포기를 더 집어 들고 있었다. 어차피 베트남 배추는 금방 2시간 정도면 절여 지기 때문에 오늘 안에 후다닥 김치를 담글 수 있을 것도 같다는 건방진 생각과 자포자기 한상태로 배추를 카트에 옮겨 담았다. 사태는 점점 커졌다. 어느새 8포기를 집어 들었고, 김치를 담그는데 필요한 재료를 카트에 담고 있었다. 붉은 고추, 마늘, 양파, 쪽파, 부추, 생강 그리고 고춧가루까지 구입을 했다. 손과 머리와 마음이 각자 지 마음대로 움직이는 언행 불일치한 나 자신. 괴로웠다.
항상 그렇듯 마트를 나서고 나면 그제야 무언가 빼먹은 듯한 그 허전함. 찝찝한 그 느낌. 손에 한가득 배추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순간 아이가 도시락 반찬에 군만두를 넣어 달라는 주문이 왜 하필 그날 그 시간에 기억이 났을까. 어쩔 수 없이 차를 다시 돌려 가까운 한국 마트로 향했다.
냉동 만두를 손에 쥔 채 한 바퀴 휙 둘러보며 뭐 더 살 것이 없나 고민하던 차 이번에는 한국 배추 가 떡 하니 진열되어 있는 야채 냉장고를 보게 되었다. 눈이 휘 둥 그래 졌다. 한국 제주 월동 무까지 쌍으로 전시되어 있는 무와 배추는 나를 무척 괴롭혔다. 저 깊고 깊은 나의 무의식 속 어딘가에서부터 희비가 교차되고 알 수 없는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아.. 정말.
'지금 김장 김치 담궈야해. 어쩌지. 이미 다랏 배추 8포기나 차 안에 있는데. 다랏 배추는 금방 절여. 그니 한국 배추하고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어차피 해야 할 일이야. 더 이상 사 먹을 곳도 없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크게 호흡을 했다.
한국 배추와 장딴지 만한 월동무를 보는 순간 남편과 아이가 떠 올랐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가까운 시일 안에 더 이상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 한국 마트 사장님께서 옆에 오셔서 ( 자주 가서 잘 아는 사이다.)
“어머 김치 담 그시려나 봐요. 배추 너무 좋아요. 여기서 반으로 쫙~쪼개서 속 확인하고 바로 가져가세요.”
(분명 사장님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좋은 배추를 골라 주셨고, 진심으로 집에서 담궈 먹는 김치만큼 건강한 김치가 없다며 최근 어디 김치 공장에 불이 났다는 사건까지 이야기해 주셨다.)
‘아. 네. 감사합니다.’
( 입은 웃고 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로 중이었다. ‘할 수 있다고’ )
사장님은 칼로 배추 꽁지 아래쪽에 살짝 칼집을 낸 뒤 두 손으로 잎사귀 부분까지 쫘 ~ 악 하고 갈라 주셨다. 그래야 김치 담글 때 맛있다면서.
한국 배추 7포기와 다랏 배추 8포기 (통합 15포기), 한국무 2개 를 트렁크에 한가득 실고서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 온통 배추 냄새와 붉은 고추 매운 냄새 그리고 양파 냄새가 진동했다. 분명 한국 배추를 보고 기뻐해야 했으나, 난 그렇지 못했다.
‘그냥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뿐.
운전대를 잡고 비장하게 혼자 외치고 있었다.
얼굴은 반 울상으로 어디 귀신에 홀린듯한 멍한 표정.
“ 김치 담그자. 아이도 남편도 사 먹는 김치에 물리고 있어. 다시 담그자.” (도대체 몇 번을 다짐하는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치 담그는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한 편의 필름처럼 회상되며,
'아.. 난 미쳤음이 분명해. 제정신이라면 내가 지금 이 오후 3시에 김치를 담근다고 배추를 사겠어?'
'마늘은 언제 다 까지?'
'쪽파와 부추 씻을 때 어깨 쪽지가 내려앉을 것 같으면 어쩌지?'
'양파 껍질 까다 눈물 콧물 다 쏟아질 텐데…'
'무 채 쓸다 손목과 손가락 관절 다 부어오를 텐데.' ( 관절약 먹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 만으로도 난 벌써 김치 10포기는 담근 듯한 피로가 급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카트로 배추와 장을 본 재료들을 집으로 나르고 있었다.
아이가 환한 얼굴이다.
‘엄마. 김치 하는 거야? 우아~~~~’
‘으…으.. 응… ( 난 죽을 죽상의 얼굴을 겨우 감추었다.)
현재 나의 상황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 아기지 못할 상태였고 이미 배추는 부엌 앞에, 나의 두 눈 앞에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나가는 비장한 장군처럼 불퇴의 각오로 한국 배추를 하나하나 큰 대야에 담기 시작했다. 15포기. 우악스럽게도 배추가 컸다.
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하나하나 장바구니를 풀기 시작했다.
베트남 한쪽짜리 마늘.
붉은 고추와 양파 , 부추 , 쪽파는 마트나 로컬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베트남 마늘 중, 알이 한쪽 짜리 마늘이 있다. 난 주로 한쪽 마늘을 사서 먹는다. 굳이 한쪽 짜리 마늘을 고집하는 이유는, 마늘 까는데 시간이 무지 단축된다. 알이 굵어서 금방 까지고 대부분 한알에서 두 알만 까면 요리하는데 충분하다. 급하면 한국 마트에서 깐 마늘을 사서 사용해도 되지만, 난 주로 그 자리에서 마늘을 까고 요리에 활용하는 편이라, 한쪽 자리 마늘을 잘 이용한다.
베트남 부추.
베트남 부추는 무식할 만큼 억세고 길며 크다. 가끔 시장에 작고 여리 여리한 부추가 나오기도 하지만 현지 시장에 잘 가지 않아 구하기가 힘들다. 김치 담글 때는 별 이상 없지만, 부추전이나 부추 무침을 하다 보면 가끔 풀내가 풀풀 풍길 때도 있다.
액젓
까나리 액젓과 멸치 액젓, 새우젓을 사용해서 간을 맞춘다. 베트남 액젓( 능맘) 중 아주 맛이 뛰어난 액젓이 있다. 능맘으로 김장 김치를 담그는 주부들도 꽤 많다.
소금은 무조건 한국산 천일염 사용을 권하고 싶고, 베 추를 절일 때는 꼭 생수를 이용해야 한다. 배추를 절일 때 배추가 석회 물을 흡수하게 되면 김치찌개나 국을 끓여 먹을 때 우리가 그대로 석회 물을 먹게 되는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먼저 베트남 배추를 건져 물기를 빼기 시작했고 몇 시간 더 기다린 뒤 한국 배추를 한번 쓱 휘어 보고 건져 올렸다. 저녁 9시였다. 이번에 김치는 오후 늦게 시작해서 그냥 밤새도록 물기를 빼자는 생각에 배추들을 덤성 덤성 소쿠리에 엎어 올려놓고 10시 정도에 취침을 한 듯하다.
저녁 퇴근 후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과 배추를 보고 남편은 화들짝 놀랐고 우리 집 아이는 생김치 먹을 생각에 자꾸 부엌 주변을 어슬렁 어슬렁 거렸다. 다랏 배추 속 한쪽을 뜯어 양념에 버무려 입에 넣어 주었다. 매워 씩씩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면서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준다. 남편 역시 은근히 오랜만에 좋아하는 눈치다.
혼자 천천히 이틀에 걸쳐 김치를 담궜다. 베트남 배추는 소금에 절인 뒤 거의 마르다 싶을 만큼 물기를 빼주면 김치가 물컹 거리는 현상을 조금 줄일 수 있고 식초를 한 숟갈에서 두 숟갈 정도 넣어 주면 좀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나도 이전 취미 미술 선생님께 배운 비법이다. 호치민은 1년 12달 여름이다 보니, 굳이 찹쌀풀이나 밀가루 풀을 쑤지 않아도 된다. 시원한 김치를 담그기 위해 마트에서 생새우나 굴을 사다 넣어도 되지만,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 집은 그냥 액젓과 소금으로만 대충 간을 맞춘다. 난 양념을 만들 때 사과 한 개를 넣어준다.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과일향이 더해져 감칠맛이 더 나는 듯하기도 하다.
아직도 난 살림엔 영 소질이 없다. 아이가 둘셋 되고 20년 이상 거주하신 호치민 한국 주부들에 비해 한없이 모자라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수도 없는 실패와 먹지 못할 음식을 만들며 부엌에서 고군분투한 결과 도시락 반찬을 뚝딱 해치울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 가끔 식혜도 해 먹는다.
김치를 담그는 날은 보쌈을 해서 먹어야 한다지만, 난 그럴 기력이 없었고 저녁은 아파트 단지 안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는 작은 도시락통에 생김치, 즉 지금 막 버무린 김치를 포장해가자고 했다. 아직 물이 덜 빠진 베트남 다랏 배추를 손으로 쭉쭉 물기를 짠 뒤 양념에 대충 버무려 작은 통에 넣어 식당으로 향했다. 아이는 치킨을 시키고 남편과 난 파스타와 피자를 주문했다. 식당이 야외 오픈 식당이라 다행이었다.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 닭가슴살 위에 척척 올려 아이가 닭 반마리를 해치웠고 계속해서 김치가 너무 맛있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름 몸은 고되 었지만 밀려오는 뿌듯함.
나 엄마 맞다.
그리하여 올 2021년 한 해는 어쩌면 그럭저럭 저 김치로 7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을 듯하다.
올해 김장 끝
결국 해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