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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y 12. 2021

검은봉다리,타이거맥주,스파이더맨 지갑

아이가 가진 파장.

울보, 짬보, 심술이 가 어릴 적 별명이다. 좀 나이를 먹어서 (8세, 9세 정도)일 때는 왈패, 왈가닥, 선머슴아 가 또 다른 별명이었다. 하루는 아빠가 퇴근길에 못난이 삼 형제 인형을 사 왔다. 티브이 위쪽 선반에 쪼르륵 올려 두었다. 그 세 명의 모습이 다 나라고 놀렸다. 하지만 나의 애착 인형은 못난이 양배추 인형이었다. 공주 인형도 바비 인형도 아니었다. 나의 실제 얼굴만큼 큼지막한 양배추 인형이 좋았다. 못생긴 외모에 곱슬 머리카락을 가진 양배추 인형 손을 꼭 잡고서 집안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부바도 가끔 해주었다. 갑자기 그 인형이 그리워진다. 분명 송 여사 (울 엄니)가 버렸음이 분명하다.


하루는 옷걸이에 올라타다 옷걸이와 함께 넘어지면서 이마를 찍은 적도 있다. 난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없어서 더 크게 울었다. 지금도 이마에 그 흉터가 있다. 그 당시 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출산 휴가를 100일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젖이 불어 압박붕대를 하고선 학교에 출근했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아주머니 손을 빌려야 했고 여러 명의 파출부 아줌마 손을 거쳐 가며 유년기 시절을 보냈다. 그때 '열애' 언니라는 젊은 유머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옷걸이를 타고 놀다 넘어졌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외 할머니 댁에서도 잠깐 살았었다. 할머니와 닭발을 뜯어먹는 사진도 있다. 동치미와 닭발을 제일 좋아했다며 엄마가 놀리기도 한다.

어릴 때 엄마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아서인지 난 눈물이 참 많다. 뭐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감정 이입해서 우는 것은 기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좀 괜찮아지나 싶었지만, 딱히 달라진 점은 없다. 오히려 호르몬 변화로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다닌다. 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이 후련하다. 기쁠 때도 잘 운다. 고마울 때도 잘 운다. 그래 맞다. 고로 난 울보다.


작년 코로나 기간 중 인터넷으로 심리 분석, 아동 미술 심리 치료, 그리고 초등영어 교육 수업을 들었다. 시험도 보았다. 비록 인터넷 시험이지만 긴장되었다. 아이가 응원해주었다. 엄마가 노트북 앞에서 강의를 듣고 메모하는 모습을 낯설어했다. 엄마가 공부하니 이상하기도 했나 보다.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맴돌았다. 강의를 듣는 옆에서 떠나지 않고 책을 같이 읽었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자랑할 만큼 자랑스러워했다.


시험을 치르는 날 아이에게 부탁했다. 한 시간만 조용히 있어 달라고. 하루에 한 과목씩 3일 동안 보았다. 성적이 꽤 좋았다. 자랑할 사람이 없어 아이에게 자랑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우선 엄마한테 축하한다고 했다. 트로피가 집으로 오냐고 물었다. (자기 수영 트로피처럼 생각한 것 같다) 아이가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선 잠깐만 밖에 다녀와도 되냐고 묻는다. 된다고 했다. 놀러 나간 줄 알았다. 아이가 5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스파이더맨 지갑도 손에 쥐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잘해서 상 주는 거야.”

“엄마 수고했어.”


검정 비닐봉지를 열었다.


순간 눈물이 눈을 꽉 채웠다.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우선 아이 마음이 이뻐서 울었다. 이쁜 마음이 고마워서 울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 마음이 신기했다. 엄마를 빤히 바라보고 ‘수고했어’라는 말을 아이한테서 들었다. 아이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 말 한마디 파장은 나의 눈물 꼭지를 무장 해제시켰다. 아이의 순수함은 나의 마음속 모든 얼룩을 지웠다.


검정 봉다리 안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타이거 맥주’ 한 캔이 들어 있었다. 엉엉 울면서 아이를 꼭 안았다. ‘고마워’를 연발했다. ‘어머, 어머, 어머머’ 호들갑도 떨었다. 슈퍼를 다녀온 아이 귓가 옆으로 땀이 조르륵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대뜸 하는 말이


“엄마, 타이거 맥주가 그렇게 좋아?”

라고 묻는다.

웃음이 빵 터졌다.


“응, 오늘 저녁에 밥 대신 ‘타이거’에 얼음 타서 마셔야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이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가 행복해한다.


더는 ‘아이 앞에서 맥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 고 반성했다. 그래서 와인으로 바꾸었다.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와인 샵 가는 것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 큰일 났다.


아들. 엄마 술꾼 아니야. 알지?


혹시 담에 또 선물해주고 싶으면 저기~ 와인 해줘~


고마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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