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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Oct 06. 2020

아이들 찾아 삼만리중 독일 엄마와 국제학교 이야기하다.

베트남에 거주 중인 한국인들의 국제학교 취향에 변화가 불어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또 브런치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기 위해 지난 몇 개월간 더욱더 많은 시간을 집에게 보내게 되었다. 학교는 휴교 중이었고 답답한 아이는 아파트 죽돌이가 되어 동네 아이들과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쌍코피가 터질 정도로 종일 놀았다. 놀다 지친 아이들은 각자 집에 친구를 불러 모아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순회했다. 개인 일상과 스케줄이 바빴던 우리 아이는 서먹서먹했던 아파트 친구들과 하루도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 미칠 만큼의 연인 사이가 되었고 오후 2시부터 집에 전화벨 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전화를 하며


‘지금 놀 수 있어?’
‘언제 놀 수 있어?’
‘너네 집에 놀러 가도되?’
‘레슨 언제 끝나?’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파트 몇 동 앞에 몇 시에 만날지 상의를 한다. 하다 하다 전화가 잘못 놓여 있거나 화장실에 있어 급히 받지 못했을 땐 어김없이 현관문에서 노크소리가 ‘똑똑똑’ 하고 울린다.


문을 열면 맨발에 (이곳 아이들은 신발을 잘 신지 않는다. 신어도 남에 집에 벗어 놓고 맨발로 자기 집에 돌아간다. 그 신발은 다음날 느지막이 자전거 탈 정도 쫌에 찾아간다.) 머리는 더벅머리인 아이들이 파랑 혹은 갈색 눈망울로


‘우리 지금 놀아도 되요?’  

하며 애처롭게 묻는다.


정말 열심히 놀았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자전거를 타고 우선 아파트 주변을 질주하듯 달린다. 몇 바퀴 돈후 아파트 로비에서 주인모를 붕붕카(4~5세용)를 끌고 나온다. 자전거 뒤로 붕붕 카에 줄을 지어 올라탄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앞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나란히 얹어 기차모양의 형태를 만든다. 한 아이는(주로 우리 아이/덩치가 큰 편이다) 맨 앞에서 죽을힘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다 지치면 내려와 두 다리로 자전거를 밀면서 뒤에 줄줄이 소시지처럼 달린 아이들을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굳이 왜 그런 노동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진다. 그다음 그것이 어느 정도 무료해지면 축구로 넘어간다. 축구하다 땀범벅이 된 아이들은 1~2시간 정도 각자 집에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모래 놀이터에서 모인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 땅파기, 물 붓기, 모래길 만들기 게임을 하다 모래 인간이 된다. 그대로 옷을 입은 채 수영장에 풍덩 까지가 그들의 풀 코스였다. 세탁기에 옷을 빨아도 모래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다낭에서 다시 한번 코비드 사건이 일어났다.


집이 어딘지 못 찾아서 못 들어오는 건지, 집이란 곳을 잊어버린 건지 아이는 도통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이를 찾아 나선다. 나뿐 아니라 아파트 몇몇 엄마들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비슷한 시간에 아이들을 찾기 위해 나온다. 찾은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집에서 차라리 수영복이라도 입고 나갈 것이지.
그 시간마저도 아까웠나 보다.
이 아이들에게는...


함께 어두운 밤 이길 저 길 아이를 찾아다니다 독일 엄마를 알게 되었다.


‘이쪽 방향을 찾을 테니 저쪽을 좀 찾아 주세요. ‘
‘수영장 쪽에서 소리가 들리네요’
‘아 신발은 여기 벗어 두었네요'
‘자전거는 이곳에 두었네요’


‘지금 코 비드 상황 맞는 거지요? 우리도 조심해야 할 텐데’


그렇게 주 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알게 된 독일인 친구. 학교가 개학했고, 아이들은 ‘우리는 코비드 친구’라는 타이틀을 간직한 채 각자의 학교로 돌아갔다. (독일학교, 미국 학교, 영국 학교, 프랑스 학교). 하지만 여전히 이 아이들은 금, 토, 일을 기다린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일요일 저녁까지 전화벨이 분주하고 현관문에 ‘똑똑’ 노크 소리는 하루에 2세 번씩 이어지고 있다. 각자의 할 일과 스케줄을 소화한 뒤 이들의 만남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분필 낙서/ 주인은 집 신발은 잔디밭에/아파트 주민이 설치힌 놀이기구


 토요일 독일인 친구 생일이었다. 생일 파티에 아이를 보낸 뒤 잠깐 마트를 다녀왔다. 그 사이 동네 아이들은 부모 없는 집을 진작에 노렸다는 듯 우리 집을 아지트 삼아 모여 있었다. 학교도 개학했고 이제 좀 그만 놀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은 지 아이들은 방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 체 떠들며 레고를 만들고, 군인 놀이를 하고, 총싸움을 한다. (사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추억이 아이에게 평생 간다는 걸 알기에 아파트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언젠간 헤어질 인연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만남 또한 값지다 못해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참으로 고맙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순간.


문밖에서 다시금 똑똑 소리가 들린다. 또 누군가 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독일 친구 엄마다. 독일에서 아들 친구가 화상통화로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뭐 별생각 없이 들어오라고 했다. 그녀가 만들어온 민트 초콜릿 머 핀과 카모마일 티를 한잔씩 마셨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독일인이지만 남편은 유태인이었다.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곧 미국으로 다시 발령이 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 거니 받거니 했다. 국적과 상관없이 그녀와 나에겐 공통 요소가 있었다. 엄마라는 것. 엄마이다 보니 자연스레 공부와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코 비드 기간 동안 각 학교의 대책 방안을 서로 비교하면서 신기하게도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


그 친구의 말을 잠깐 빌려 이곳 호치민 국제학교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았다. 나의 말이기도 하다.


“ Very much depend on the class teachers.”라고 정확히 그녀는 말했다.
“ I strongly agree with you.”라고 내가 말했다.


다음에 상세히 이곳 국제학교에 관해서도 글을 올려 볼까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곳 국제학교는 솔직히 말해서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대화를 통해 마치 서로의 공통분모를 발견한 듯 맞장구를 치며 끊임없는 수다가 계속되었다.  서로 윗집 아랫집 엄마들 수다 처 럼 긴밀하고 은밀했다. 학교 뒷담화도 하면서 동시에 좋은 점을 비교했다. 또 누구누구는 그래서 학교를 옮겼더라, 누구 선생은 그래서 학교를 떠났더라. 대략 2시간 정도의 수다였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그녀와 대화는 유쾌하고 통쾌했다. (가끔 이렇게 쓸데없는 잡담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나의 눈치와 창의성을 총동원시킨다. 그리하여 수다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눈은 반쯤 풀린 상태에 얼굴은 마라톤 몇 킬로를 달리고 온 선수 마냥 검어 축축하니 형편없다.)


그 친구가 오히려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왜 한국 사람들이 독일 학교에 다니는지.
한국 아이들은 무얼 그렇게 많이 배우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치열한지.
정부에서 교육에 대한 방안이 없는지.
중국인 다음으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면서 아이들은 많이 놀아야 된다며 마지막에 여운을 남겼다.


유태인의 교육 방법 중 하나가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는 것인데 자기 집은 남편이 유태인이다 보니 유태인 교육법을 따르려 한다고 했다.


첫 번째 질문에 순간 난 정말 화들짝 놀랬다. 나머지 질문이야 이곳에서 1년 365일 외국 엄마들 로부터 또는 선생님들에게서 항상 듣는 질문이라 담담했다. 하지만 한국인 엄마들이 독일학교에 관심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드문 드문 했었다. 이곳에서 종류별로 국제학교를 1년 정도식 메뚜기처럼 옮겨 다녀도 최소한 5개 국어는 5년 안에 마치겠다고. (영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한국어). 아이의 정서와 교육환경은 상관없이 외국어 습득이 인생의 목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부모의 욕심에 아이를 일 년 단위로 학교를 옮겨 다닌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저지르는 독재적인 횡포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주재원 생활이 끝이 나고 기러기 부모가 되기로 결정을 한 부모들이 호치민에 꽤 많다. 그분들의 선택은 기존에 학교를 계속해서 다니며 졸업까지 마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 국제학교나 프랑스 학교 혹은 학비가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기는 경우를 보았다.


꼭 기러기 부부들 뿐만 아니라 국제 학교를 사비로 부담해야 하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국제학교의 학비가 사악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학비 때문에 한국 부모들이 국제 학교 중 독일 학교를 선택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든다. 독일 학교 역시 국제 학교이고, 굳이 영어를 고집하지 않고, 넓은 사고와 세계를 보여 주자는 취지로 독일 학교를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닌다. 사회성, 리서쉽, 사상, 앞으로 그 아이가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삶의 기반이 되고 사고의 힘이 길러지는 곳이 학교다. 아무리 가정에서 부모가 최고의 노력으로 아이를 이끌어 간다고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오는 아이는 학교라는 외부의 규칙과 규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며, 선생님의 행동과 사고를 학습하고 자동적으로 습관을 익히게 된다. 그곳이 학교다. 그래서 베트남에 있는 국제 학교 역시 자기만의 색깔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독일학교를 다니는 한국 아이는 독일의 역사를 배울 것이고, 독일의 사고와 그들의 생활 패턴과 사고를 습득하게 된다, 학습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친구들, 학교 시스템, 선생님에 의해 알게 모르게 독일식의 습이 습득이 된다.


https://igs-hcmc.org/


호기심에 독일 학교에 대해 좀 물어보았다.


그녀가 이야기해 주기를 독일 국제 학교는 소수 정외다. 한 반에 10명에서 13명이다. 점심은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는 뷔페 식이며 학교 캠퍼스가 작은 만큼 관리가 철두철미하다. 독일학교는 꽤 규모가 작다 보니 학교에 큰 행사가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가족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독일어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유치원부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아이들의 공부량은 선생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온라인 수업 역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보통 국제 학교끼리 단합 대회 비슷한 것이 이곳에 있다. 축구, 농구, 수영, 하키, 오래 달리기, 체조대회 등 각종 친선대회가 있다. 독일 학교가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것 빼곤 이곳 독일 학교에 매우 만족한다.


그녀는 꽤 학교에 만족하는 듯했다.


우리 앞집에 미국 대사관 자녀도 독일학교에 다닌다. 호치민에 오기 전에 스웨덴에 있었는데 그때 독일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도 아이들 공부에 대한 학구열은 마찬가지 인가 보다. 한 가지 언어 보단 독일어까지 아이가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생각해서 독일 학교에 보낸다고 했다.





http://lfiduras.com/

<호치민에 프랑스 학교가 몇 군데 있다. 이곳이 공식 허가가 난 곳이고 한국에서도 인정 주는 곳이다.>



드디어 호치민에 거주하는 한국 부모들의 취향과 교육 방향에 새로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만 해도 프랑스 학교가 대세였다. 학비가 이곳 국제학교에 비해 저렴했으며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공립이라서 세계 어디에 있는 같은 프랑스 계열 학교면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기러기 부부 생활을 결심한 부모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프랑스 학교와 같은 제단이라 이곳에서 다니던 교육과정을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굳이 영어권 국제학교보단 프랑스 국제학교를 선호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그랬던 한국 보모님들이 드디어 독일 학교까지 관심이 뻗어 나간 것이다. 6세 반의 경우는 인원이 넘쳐 나게 되었단다. 한 반 정원이 16~18명이 되었다면서 그녀는 호들갑을 뜬다. 한국 학생들이 이젠 각 반에 1~2명 정도씩 들어왔단다. 올해 더 들어왔단다. 해마다 한국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묻는다.


‘ 한국인들 독일어 필요한가요?’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큰 눈으로 진지 하게 되물었다. 그녀가 독일 학교에 온 한국인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한국인이 없는 학교를 택하다 보니 독일 학교로 왔다고 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난감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호치민에 한국 부모들의 국제학교 선택의 취향이 조금씩 변화가 불어오고 있다. 관점을 바꾼 것이다. 너도 나도 영어권 국제 학교를 고집할 때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가지고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나의 사적인 생각>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은 밖으로 다 내쫓았다. 메모하기 시작했고 글로써 한번 옮겨 보았다. 한 아이를 양육하고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인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은 무슨 학교인지, 무슨 언어를 배우는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가 아니라 단단한 부모의 철학 밑에서 넉넉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면 어떤 곳이 든 상관없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보았다. 진정한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아이들에게 많이 주어 졌으면 한다. 남과 비교하는 경쟁에 집중하는 것보다 나의 욕구에 몰입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에 맞는 학습 방식을 찾아 모두 다 가 가는 그 한 길을 무작정 쫓아가기보단, 자신에 맞는 시절을 기다릴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음 한다. 거북이처럼...


교육이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스스로 깨닫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고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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