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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r 03. 2021

다시 시작한 취미미술은 정말 취미 미술이 되었다.

책읽고 그림그리고 누가 보면 신선노름인줄...

좋아하는 오일물감

척척척 바른다.

오일 페인팅 냄새가 코끝을 통해 나의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어온다.

과잉된 아드레날린이 핏줄을 타고 손끝에서부터 머리 꽁지까지 혈관을 타고 쭉쭉 퍼져 나간다. 카피하고자 하는 그림을 보고 팔레트에 색깔별 오일 물감을 듬뿍듬뿍 짠다. 바탕과 밑바탕 작업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물감이 많이 필요한 날이다. 코발트블루, 네이비블루. 딥블루, 스카이 블루 등 블루가 많이 필요한 그림이다. 블루에도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것을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나서부터 알게 되었다. 블루는 보면 볼수록 블랙홀처럼 빠져 드는 색이다. 흥분이 된다. 색은 늘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시킨다. 마치 어린 강아지가 종일 어두운 방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마침 저녁에서야 돌아오는 주인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오줌도 찔끔 지리고, 뒤 꽁지 꼬리를 요리저리 요란하게 흔들다 못해 뒤로 벌러덩 뒤집어져 날 가져주세요 포즈를 취하는, 그때의 그 강아지 느낌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동공이 떨릴 만큼.

훅 하고 들어마신 숨이 가느다랗고 깊게 뻗어져 나온다.

물감색을 보고 긴장해서 이다.


수채화. 어두운 색을 과감히 표현하기 수업.

오랜만이다.

너무 오랜만이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젊은 선생님이다.

젊은 여자 사람 선생님이라서, 오래전 이곳에서 가르치시던 늙은 나이 든 여자 사람 선생님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는 기대를 한다. 세월이 지난 만큼 입시 미술 스타일도 달라졌을 것이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이 같은 생각도 나름 혼자 해본다. 다른 세련된 테크닉과 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설레어 잠을 설친다.


“어느 정도 그려보셨나요?”

"처음은 아닌가요?"

“라인드로잉도 있어요. “

“수채화, 아크릴 , 유화 과정도 있어요.”

“어떤 걸 오늘 해보시고 싶은가요?  


기다리던 질문이다. 숨도 쉬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난 오일 페인팅을 제일 좋아한다.


“유화하고 싶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그림을 취미로 시작을 했지만, 출산 이후 한동안 붓을 전혀 잡지 못했습니다. 다시 3년 전부터 일 년에 한두 달 정도씩만 이어서 했습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저 아그리파도 그렸어요.”


그림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차마 부끄럽고 쑥스러워 크게 말을  수가 없다. 미대를 가고 싶었던  5  취미 미술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을 해서 개인 레슨으로 3 정도 뎃생을  배웠다. 미대생 흉내를 내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라도 내어 보면  속에 꽁꽁 숨기고 있었던 속상함과 이렇게 취미로라도 충분히 배울  있다는 심리적 보상의 가를 스스로 채우고 싶었다.


“네???”

“어머나..”


“ 그럼 오늘 손 풀 겸 이거 합시다.”


초벌, 중벌, 마지막, 더해야 겠지요??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전 뭐든 할 수 있다는 중년 아줌마의 용감무쌍한 의지로 ‘네’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큰 실수였음을 2주 차 되던 날 알아 버리고 만다. 현재 7주째 그리고 있지만 이 그림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물과 구름을 손대다 보면 현실 속의 광대한 바다처럼 깊고 은은하며 출렁이는 바다 표현에 지쳐 심리적으로 난 탈진이 되고 만다.


그림을 보는 순간 쉬워 보였고 기름을 듬뿍 썩어 수채화처럼 그릴 수 있는 유화 테크닉이 생각이 났다. 기름과 색을 혼합해서 쓱쓱  휘리릭 하루 만에 끝내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선생님이

‘손 풀기 용이라 하셨으니까.’


오산이었다. 착각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나의 손은 힘 조절도 되지 않는다. 앉아 있는 도중 고도의 집중으로 체력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그날 저녁 입안이 헐었다. 다음날 눈이 떠지지 않았다.


혼자 헛 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옆에 오셨다.


‘유화의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없어요. 덧칠을 하셔서 바다의 깊은 표현과 배와 육지의 어두운 부분을 더욱 깊고 깊게 나타 내셔야 합니다. 물결의 출렁임은 한 라인 한라인 씩 그리며 표현하셔야 해요.’


마치 난 선생님께 거짓말을 한 학생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간의 공백이 이렇게 클 줄이야.

결국 선생님 마법의 손 힘을 빌어 다시 터치를 배우고 수정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정도씩 그린다.  젊고 이쁜 선생님은 나이 든 아줌마 눈치를 살짝살짝 보며


‘이 부분, 저기 저부분 눌러 주세요.'

'색이 너무 튀죠?’

‘저기 부분이 너무 밝아요.

'여기 보세요. 보이시죠.’

‘이 뒷 산부분이 보이시나요.’


선생님. 이 아줌마 눈에는요.

아줌마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

아줌마 눈에는 이곳도 밝고 저곳도 밝게 보여요. ~

아줌마 눈에는 산이 보이지 않아요.~~예 예 예~

아줌마 눈에는 입체감이 잘 보이지 않아요.              <작사/작곡. 고언심>

                                                                

라고 홀로 쓸쓸히 노래를 지어 불렀다.

나이 듦이다. 몇 년 전만큼의 열정과 의욕과는 다르다.

이전의 속상함과 여운은 신기루처럼 세월과 날라 가버려 이젠 그저 진정한 취미로 남겨진다.

드디어 취미로 자리를 잡았구나.

한동안 호치민 미대를 기웃거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림을 대하는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다시 한번 나를 느껴 보는 시간이다.

가볍게 그린다.

가볍게 생각한다.


이제 그냥 끝내고 다른 그림 그리고 싶어 선생님께 자꾸

‘이제 됐죠?

'전 다음 주에는 돌고래 그리고 싶어요.’

‘수채화로요.’

은근히 끝내고 싶다는 표현을 이렇게 했다.


눈치를 채신 선생님이 보조개를 살짝 넣으며 환희 웃으신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만큼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다.


그러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를 입고 있는 내가 보인다.

손과 팔꿈치에 짙은 파랑 물감이 묻어 있다.

"난 지금 베트남에서 무얼 하고 있나?"라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가끔 난 유체 이탈한 사람 처럼 내가 보인다.

오늘 난 낯선 땅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다.


저녁에 뭘 해 먹지?라는 진부한 가정주부로 돌아온다.


더 할까? 말까?

그냥 이 그림은 여기서 끝내고 싶다.


오늘 메뉴는 모시조개 갓 된장국으로 정했다.

어서 가서 아이와 남편을 위한 따뜻한 밥상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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