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지친 아이가 '엄마 월남쌈, 식혜, 파스타가 먹고 싶어요'.
구정 연휴 전부터 다시 학교 휴교령이 시작되었다. 구정이 끝난 지금, 오늘도 아이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고 쳇바퀴 돌듯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없는 연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텁텁한 날씨와 내리쬐는 땡볕 아래에 많은 식당과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구정 연휴가 유난히 긴 호치민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다. 아이에게 특별 식이라며 엄~청 후~하게 인심 쓰는 척 하고선 쇠고기 라면과 짜파게티를 한주에 한번 정도 번갈아 돌려 먹이며 생생 내던 놀이도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캔 참치에 마요네즈도 함께 버무려 먹는다. 아이의 특별식이다. 엄청 좋아한다. (나쁜 엄마 아니에요) 도시락 2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 운전수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현 시점 속에서 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안락함과 휴식을 만끽중이다. 부끄럽지만 좀 편안하다. 반면에 모든 운동과 활동이 중단된 아이는 집 안을 기어 다니다 못해 푹 퍼진 해삼처럼 소파 또는 거실 바닥에 들러붙어 뭉그적 뭉그적거리는 만행이 시작되고 있다.
때마침 본격적인 구정 연휴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연휴 이틀째부터 같이 사는 두 남자, 그들은 새벽 5시에 기상을 했고 나의 새벽시간을 강탈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누가 빨리 일어나기 대회라도 하듯 두 눈에 상심지를 켜고 새벽 기상 배틀을 한다. 난 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놀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최고치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 둘은 황당할 만큼 어리석어 보이지만 또 매우 행복해 보인다. 본성과 본능에 충실한 두 남자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연휴에 충실했을 뿐이다. 놀기위해 새벽잠을 포기 할 정도로 하루의 아까움을 느낀 아이가 신기하다. 나와는 다른 목적으로 새벽 기상을 하고 있지만 그 또한 한때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 아이들도 새벽 6시부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찬 공기를 맘껏 느끼기도 하더라. 또 멀리 보이는 다른 저편에서는 꼬맹이들이 부스스한 머리와 푸석한 얼굴로 직접 개 목줄을 잡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산책을 하더라. 아이들은 무료함과 따분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반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여유와 자유를 실컷 누리는 중이다. 꼬맹이들이 의외로 새벽이 주는 고요함과 자연이 주는 따스한 온기를 나보다 더 많이 아는것 같다. 아이들은 그냥 새벽에 눈이 떠 졌을 것이고 곧 바로 집 밖을 나왔을 뿐이다. 치열한 삶과 반 강제적으로 주어진 한가함을 즐기게 된 이 생활중 어떤 삶이 더 좋은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구정 연휴 3일 차. 슬쩍 엄마 옆에 의자를 끌고 오더니 자기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이왕 지사 이렇게 된 거 이른아침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결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결백합니다.) 새벽 5시 40분, 아이에게 야외에서 읽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흥분한 아이가 츄리닝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문 닫은 카페 대신 난 맥심 한잔을 아이는 핫 초코를 텀블러에 담아 아래로 내려간다. 굳게 닫힌 카페 앞 벤치에서 우린 둘이 서로 조용히 각자의 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해도 마치 정말 그림 속의 한 장면 같다.(아빠는 아침 운동중)
한 번씩 상상만 하던 순간이 실제로 현실에서 가능한 상황으로 실현되는 장면이다. 이리 완벽할 순 없는데. 살아가는 도중 어쩌다 드문 드문 찾아오는, 너무 작지만 소소한 뜻 밖의 일상으로 기쁨과 행복을 마주할때, 난 마음속에 이 찰나를 문신처럼 새겨두고 싶다. 차곡차곡 알아가고 있는 생활 속 감사함을 저 마음속 텅 빈 곳간에 쌓아 두고 싶기 때문이다. 수시로 긍정의 에너지가 고갈될때, 스스로 혼자 힘으로 일어서고 싶을때 꺼내어 쓰고 싶은 마음에서 이다. 원래 사람은 추억의 힘으로 버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매일매일 남자 어른 세계로 다가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흐뭇하지만 슬픈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난 종종 인간과 동물은 동일하다 생각한다. 어쩔 땐 생각 없이 본인들 삶에 충실한 동물이 더 부러울 때도 있다. 동물들이 새끼를 낳아 기른 후, 그 새끼는 어느 시점이 되면 떠나가듯, 이 아이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곧 떠나가겠지라는 엉뚱한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부디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길러졌으면 하는 연민으로 머릿속에 몽글 몽글한 솜뭉치같은 생각이 뿌옇게 뒤엉켜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난 또 까먹고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겠지.
선선한 바람이 휙 하고 불어 맨 팔과 목덜미를 치고 지나간다. 차가워서 좋다. 홀로 그 입체적이면서 오묘한 기분에 도취되어 얼굴 한가득 세상 행복 다 가진 아줌마 마냥 미소를 머금고 있는 순간, 하늘에서 노랑 멀거리 물 같은 것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 허벅지 위로 쭉 길쭉하게 떨어졌다.
이른 새벽 홀로 스펀지 인간이 되어 감상에 흠뻑 젖어있다가 날벼락 떨어지듯 노란 새똥을 맞았다. 정말 절묘하고 기막힌 타이밍이다. 아이가 '윽' 하며 나와 멀찌감치 떨어진 한 테이블로 건너 앉는다. 그리곤 미친 듯이 웃는다. 새해 아침 새의 모닝 똥은 다시 나를 현실세계로 데려와 주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까지 소환해 주었다. 7살 때 일이다. 샛별유치원을 다녔다. 버스를 놓쳐 혼자 걸어가다 새똥을 맞아, 울면서 집으로 도로 돌아갔다. 유치원을 가다 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송여사(엄마) 한테 진탕 혼난 기억이 난다. 가만 생각해보니 송여사는 그때 왜 나를 혼냈을까???
동시에 새똥이 아이에게 떨어지지 않아 차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의 기억 속에 엄마와 이른 아침을 함께했던 어느날 자신이 새똥 맞은 기억이 잔잔한 추억속에 침범한다면 약간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새똥을 맞았으니 아이 머릿속에는 웃기고 즐거운 추억이 만들어진 샘이다. 새똥 덕분에...
개 산책을 시키던 이웃 주민이 인사를 건넨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라고 간단히 인사말을 건넨뒤 일어나 집으로 돌아 왔다.
우리의 아침은 새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놀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한 두 남자는 정말 놀기 위해 태생한 인간들 같다. 저녁 9시 브루마블 게임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은 아이는 결국 4일째 되는 날 수면 부족으로 편두통을 앓더라. 아이눈 및 다크 서클은 볼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여행을 다닐 적 몰골 보다 더욱 엉망이다. 그냥 지들이 좋으면 됬지, 모처럼 집콕 연휴인데 맘껏 놀아 보라는 나만의 배려였는데 아이가 놀다 쓰러졌다. 왜 아이들의 수면 시간이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아이 아빠도 얼굴이 누렇게 떳다. 그냥 간섭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 었는데. 나도 좀 쉬고 싶었는데.
김치죽을 점심으로 내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두 남자는 무자비한 집밥 메뉴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사실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 두 남자는 구정인데 구정 분위기가 안 난다는 둥,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둥의 헛소리를 해댄다. 욕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지만, 앞으로 4일을 함께 더 지내야 하기에 두 어금니를 꽉 깨문다. 새벽 아침 새똥과 함께 독서를 했던 아름다운 추억은 온 데 간데 없이 난 현실속에 있다.
뻔뻔하게 두 남자는 요구를 한다.
너무 뻔뻔해서 헛 웃음이 나온다.
'엄마 시원한 식혜가 먹고 싶다'
'간단한 월남쌈이 먹고 싶다' (간단한???)
'마늘 많이 들어간 고소한 파스타도 먹고 싶다'였다.
우선 식혜는 간단히 하루 만에 해치운다. 엿기름 걸러서 찹쌀은 밥솥에서 삭히고 마지막 생강 하나 넣어 한 20분가량 은은한 불에 올려놓고 마무리 하기. 노는 것이 지금 현재 삶의 낙이었던 아이의 표정은 금세 먹는 것이 존재의 이유된 것 마냥 돌변한다. 식혜를 나처럼 많이 좋아한다. '너무 오랜만에 식혜를 해줬나'라는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부엌에 들락날락 거리는 아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밖에서 놀다가도 식혜 한잔 마시러 집으로 들어온다.
불고기와 과일, 사과와 토마토가 한데 어우러진 나의 월남쌈이다.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돼지고기와 향채를 넣은 월남쌈은 주로 외식할 때 밖에서 먹고, 집에서는 퓨전식으로 둔갑한 '언심표 월남쌈'을 때때로 해 먹는다.
돼지고기 대신 소 불고기. 아이가 아직 어려 불고기로 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불고기를 돼지고기 고추장 두루치기로 바꿀 생각이다. 매콤하니 더욱 맛나다.
향채 대신 토마토와 사과 그리고 색깔별 피망, 양파, 당근, 오이 뭐 집에 있는 잡다한 생야채 채썰기.
입맛 없는 입맛을 돋우기 위해 새콤 달달 짭조롬한 피쉬늑맘 소스에 롤을 찍어 먹으면 진짜 맛있다. 난 소스에 특별히 땡고추를 함께 풀어놓는다. 매운 것을 먹고 나면 눈물, 콧물, 땀으로 몸속 불순물이 다 배출 되는 듯하다. 그 기분이 좋다.
마지막 소원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마늘향을 좋아하는 아이.
한쪽 짜리 큰 마늘 5개 정도 깐다.
생마늘을 듬뿍 넣고 조개와 새우를 익힌다. 재료는 언제나처럼 내 마음대로이다.
면을 삶은 후 프라이 팬에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낮은 불에 버무리기.
블랙 올리브 넣어 주기.
치즈 얹어주기
입으로 청소기처럼 흡입한 아이는 흥분한 나머지 엄지손을 막 올려 준다. 바보 엄마는 다시 또 감상에 젖는다. '이리 사는 거지 뭐' 라며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 또 마구 뿜어져 나온다. 부엌일이 힘들고 나에겐 괴로울 때가 많다. 주방과 부엌살림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그릇은 죄다 친정 엄마가 결혼 전 부터 장만 해둔 그릇 그대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오늘 현재 난 '엄마'라서 이곳에서 머문다.
나머지는 아이가 환장 하는 과자 간식으로 마무리 하기.
여전히 온라인 학습으로 함께 24시간을 지내고 있다.
먹고 싶다는 주문이 한동안은 없을 듯하다.
다시금 냉장고 냉동실 안 재료로 아무거나 해서 먹기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국 처럼 풍족한 재료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에서 이런저런 내맘대로 음식을 해 먹으며 우리가족은 오늘도 내일도 생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