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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Feb 11. 2021

코비드가 앗아간 자동차 배터리

<3일> 우선 적자-2일 차

2021년 1월 말경 하노이에서 일본으로 어떤 분이 입국을 하셨고 일본분이 자국에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함께 탑승했던 베트남 내국 외국인들이 호찌민으로 내려왔고 한주 전부터 갑작스러운 학교 휴교령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다시 한번 한 주 동안 2월 1일부터 6일까지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다. 이번 주부터(2월 8일) 2주 동안은 구정 방학인데 어쩌면 방학 이후에도 아이들은 학교로 한동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에 한두명씩 확진자가 발생 중이고 시내와 고밥(공항근처)지역 몇 군데를 통제했다. 그리고 국내선 냐짱 가는 비행 편 까지 없애 버렸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아무렇지 않게 능수능란하게 받아들인다. 직접 이메일을 체크하고 온라인상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하는 수업이 삶의 일 부분이 되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생활의 변화 때문에 스스로 척척 알아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선생님과 정해진 시간에 미팅을 하고, 과제를 하는 아이가 오늘따라 자기 생각이 있는 청소년처럼 보인다. 이른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사과도 먹고 스트링 치즈도 먹는 여유까지 부린다. 처음 락다운이 되었을 땐 아이도 나도 서툴렀다. 그때 상황이 재연된 것 같지만 노련한 아이의 태도 때문인지 이번엔 뭔가 다르다. 동시에 웃지 못할 자동차 배터리 사건이 떠오른다. 코비드가 안겨준 추억이다. 


이곳 병원 시설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무서움과 두려움은 두배였다. 락다운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소형 마트를 차려도 될 정도로 식품을 사다 집에 쟁 겨 두었고 거의 두 달간 외출을 하지 않았다. 코비드 락다운 기간 동안 한없이 주차만 해 두었던 차. 내리쬐는 뙤약볕 때문에 본내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왔다. 강한 태양열 아래에 방치되어 먼지까지 뽀얗게 뒤집어써 똥차가 되어 버린 나의 붕붕이는 제대로 심한 앙탈을 부렸다. 어라. 시동이 걸리질 않는다. 한번 시동이 걸리다 꺼졌다. 두 번째 시동을 걸었더니 요란한 빨강 , 초록 불빛들이 핸들 앞 스크린에 마구마구 생겨났다. 이마와 등 목 뒤로 땀이 줄줄 흘렀다. 차 안은 찜통이었고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자동차에 대해 그 어떤 관심도 상식도 없는 그에게 난 왜 그때 그 사진을 찍어서 보냈을까?' 한국에서 잠깐 9개월 거주할 때도 내가 운전을 했는데. 제주도 놀러 가서도 내가 운전을 했는데. 분명 난 무척 급했고 당황했음이 틀림없었다. 


남편의 대답은

'글쎄' 

그의 주 특기 대답이다. 

그냥 끊었다.  


10분 정도 기다렸다 다시 시동을 걸었더니, 이번엔 걸린다. 이상했지만 난 운동이 무척 고팠고 본격적인 운동이 절실했다. 이틀 동안 별 이상 없었다. 정비소를 가볼까 했지만 한번 갈 때마다 기사 아저씨들로부터 받는 집중적인 호기심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항상 그렇듯 '뭐 별일 있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은 추 후 큰 사건을 불러온다. 


이틀 뒤 마트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분명 어제 까지 괜찮았는데 시동을 켜자 무슨 김 빠진 털털털 소리만 몇 번을 내뱉더니 바로 죽어버린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철커~억커컥, 철커어~커컥 하더니 곧 픽 꺼져 버린다. 다시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한국이라면 견인차나, 보험회사나, 동네 당골 카센터 아저씨께 연락을 하면 곧 해결이 되겠지만 난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이곳 보험회사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급했다. 남편에게 다시 연락은 하지 않았다. 햇빛은 지치지도 않나 보다. 항상 뜨겁다. 뚜벅뚜벅 아파트 입구 경비 아저씨에게 걸어갔다. 


“아저씨. 차가 이상해요. 시동이 걸리지 않아요” 

“기다려봐. 기사 아저씨들 그쪽으로 보내볼게.” 


경비 아저씨들은 절친인 아파트 운전기사 아저씨 2분을 보내주셨다. 아저씨들은 본내트를 열어보고 시동 버튼을 눌러보더니 배터리 방전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분들은 5분도 채 안되어 아파트 셔틀 차량 (대형버스)을 몰고 힘없이 푹 퍼져있는 나의 차 앞에 기세 등등하게 차를 세웠다. 차 앞 보닛을 열고 집게 달린 긴 전깃줄로 버스 배터리와 내차 배터리를 서로 연결시켰다. 마치 과학시간에 배웠던 +극과 – 극을 연결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빨리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라고 하셨다. 


“철커커커엉.” 시동이 걸렸다.


내 차는 심패소생술을 받고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내뿜으며 살아났다. 가슴을 얼마나 졸였던지. 경비 아저씨와 기사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붕붕이를 이끌고 도요타 매장으로 바로 직행했다. 오후 3시 이후 차를 찾으러 오라고 했다. 그냥 다음날 찾으러 가겠다고 하고선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타다 경비 아저씨들에게 가져갔다. 


배터리를 교체하고 3일 뒤.

안정된 마음으로 코로나가 빼앗아간 배터리를 다시 되찾은 기쁨으로 자동차 시동을 켜고 껐다. 살살 다루었다. 브레이크도 꼭옥 밟고 시동 번튼도 꼭오옥 눌렀다. 소중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가디언 ( 샴푸 파는 곳) 가게에서 주니어용 샴푸를 구매하고 나오는데 차가 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호. 흡. 이. 힘들었다. 길 한복판에서 차가 퍼진 것이다. 크게 하나, 둘, 셋 숫자를 쉰다음 차에서 내려 다시 가디언 매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직원이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를 내어 준다. 그녀는 친절했다. 도요타 담당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디언 매장 직원이 도요타 출장 직원에게 베트남어로 매장 위치를 알려 주었다.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한없이 기다렸다. 그토록 이것만은, 베트남 도로에서 차가 퍼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많이 속상했다. 그렇다고 다시 기사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기사가 있다면 단번에 해결될 문제 들이다. 눈이 충혈되었다. 도요타 출장 기사는 20분 후에 도착했다. 


그 직원이 배터리를 체크하고 차 내부를 보더니. 

“ 마담. D (Drive) no start."

“ 마담. 사이드 브레이크 업."

(기어를 드라이버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는 내려두고선 시동을 걸려고 한 것이다. 아 놔!!!)

환희와 창피함이 교체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 Cam on.” (깜 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맙습니다 라는 표현이다. 


혼자 운전대를 잡고 배꼽이 빠질 듯이 웃었다. 난 제정신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웃으며 살고 있다. 책임지는 법도 배우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도 나날이 발전 중이다. 온정으로 뭉쳐진 베트남 사람들에게 속상한 경험도 있었지만 기사 없이 운전을 하면서 왜 기사 아저씨들이 경비 아저씨들과 친분을 쌓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깊은 마음도 느끼게 되었다. 자차를 소유한 만큼 골치 아픈 일도 많고 또 반면에 편한 부분도 많다. 사실 편한 부분과 차를 소유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자전거 사고로 타박상을 입고 아이도 함께 다친 후 다짐한 결심이었다. 차를 소유하고 말겠다는 결심이었다. 남편을 협박하고 얻은 차였다. 오토바이와 오토바이가 실고 다니는 물건 때문에 많은 상처와 자국으로 깡통 차가 되어 가고 있지만 저 발통 4개 달린 아이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자차 운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다니지는 않는다. 많이들 놀라고 걱정도 하며 왜 기사를 두지 않는지부터 복잡하고 불편한 질문들이 많아서 이다. 답은 없다. 

그냥이다. 

그냥...


-pintrest-


시시 콜콜한 이야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

3일 연재 중 이틀째 였습니다. 


우아.. 3일 달아서 쓰기도 쉽지는 않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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