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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Aug 13. 2020

베트남에서 필라테스(Pilates)를 경험하다.

<뻔뻔한 아줌마가 브런치 작가라고 들이밀었다>

매일 같이 평범하고 소소한 나의 일상에 봄날 같은 생기를 되찾아 주고 있는 필.라.테.스.


호치민에서 20년 전문 필라 테스 강사 Oscar를 만났다. 그는 이태리에서 왔고 호치민에 5년 정도 거주했다. 호치민 두 곳에 센터를 운영 중이다.  D1군과 D2이다. 1군에 있는 센터는 InterContinental Residences 2층에 위치해 있고 2군에 있는 센터는 Lily Residence에 위치해있다. 필라테스 강사를 교육시키고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Oscar와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등 척추 줄기 부분의 통증이 줄어들고 있고 이전에 비해 체력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월요일 오전 9시, 기구에 몸을 맡기고 다리를 쭉쭉 옆으로 찢는 동작을 하다 갑자기 나의 일상 중 ‘운동’에 관한 글 한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7년째 운동 중이다. 몸이 슈퍼 모델 뺨 치는 몸은 아니지만 통통하니 나름 현상 유지 중이다. 근육도 없고 탱탱하지도 않은 아줌마 몸매 그 자체이지만, 건강과 혈액 순환을 위해 꾸준히 줄넘기라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운동은 꼭 필수임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결코 나의 몸매는 쭉 빠진 매끈한 다리와 늘씬한 팔을 가진 그런 몸이 아니다. 뚱뚱하지 않은 아줌마 몸이다. 7년째 운동 중이라고 해서 행여나 혹시나 하는 염려에 다시 한번 강조를 한다.)


비록 최근이지만 필라테스와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기쁜 마음에 Oscar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너에 대해서도 적고 싶다고. 흔쾌히 괜찮다고 한다. 브런치에 발행 후 자기에게도 보여 달라고 했다. 뭐 다 한국어라 알 수도 없지만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허락을 받고 잠깐 인터뷰도 했다.   


나름 브런치 작가라는 명목을 내세워 먼 유럽에서 온 이태리 필라테스 강사한테 소심하게 글쓰기 연습 중이라고 자랑도 했다. 역시 난 오지랖 넓은 아줌마 맞다. 그 사실이 현실로 증명되는 순간임이 틀림없다. 오지랖 넓은 아줌마. 젊었을 때 깐깐하고 완벽 주의적인 나의 모습과는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을 가지고 지금 난 살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무관심한 남자).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서 대학 동창들을 만나면 그녀들은 묻는다. 뭐가 ‘너를 그렇게 변하게 했니'라고.

그럼 난 "씨익" 웃는다.  


그녀들의 물음은 ‘지금 나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하트 간디가 남긴 명언이 증명된 셈이다.

“ 인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 없다. 그러니 함부로 사람을 심판할 수 없다. 내가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정말 난 변했을까?   




Sweets


< 어리석은 아줌마의 반복되는 깨달음>


다시 운동 이야기로 돌아와서.  


베트남에서 무료했던 나의 삶에 운동은 크게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하루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데 5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짧은 시간은 결코 아니다. 중간중간에 쉬었던 적도 있지만 그때는 집에서 홈트레이닝도 혼자 밤마다 쪽방에서 꾸준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파장은 깊고 광대했다.


지난 몇 달 베트남 정부에서 호치민 락다운(모든 영업정지) 실시를 했다. 아무 곳도 갈 수가 없었다. 강제 휴가였다. 꾸준히 운동을 해오던 난, 한순간에 무너졌다. 마음에 울려 퍼지는 달콤하고 달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마치 나에게 주어진 로마의 휴일 같은 생활을 일주일 동안 꾸준히 쉬지 않고 했다. 아주 열심히 했다. 아이를 재우고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자칩, 치토스, 고래밥 과자도 즐겨 먹었다. 냉동실에 고이 모셔져 있던 한치(건 오징어과)도 물에 불린 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마요네즈와 고추장을 혼합한 소스에 찍어 오물오물 열심히 씹어 먹었다. 다음날 턱도 아팠다.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었고, 장을 보러 갈 수도 없었다. 냉장고 파먹기 기법으로 냉동음식도 자주 해 먹었다.

불량주부로써 삶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처절히 깨달았다.

인간의 모든 삶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니체의 말을 좀 빌리면

 “쾌락과 불쾌감은 서로 단단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가능한 한 많이 누리려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다른 한 가지도 그만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사실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걷기를 하고 요가 메트를 들고 나와 잔디밭에서, 농구장에서 가족들끼리 운동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난 두 눈을 질금 감아 버렸다. 좀 쉬어야 한다는 핑계의 틀속에 나를 가두고 코로나라서 위험해 라고 외치는 마음의 목소리에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가끔 불안한 마음에
'나도 마스크 끼고 나가서 함께 할까' 했지만 곧
'너무 더워. 저 땡볕에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어'
라고 스스로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나 자신을 나태한 생활의 틀에 끼워 맞추고 있었다.  


정확히 열흘정도 이후부터 몸이 붓기 시작했다. 니체 오빠 말이 맞았다.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몸은 매정할 정도로 정확했다. 

일주일 만에 옷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걸어 다닐 때마다 두 허벅지의 마찰이 불쾌했다. 아침마다 두통이 시작되었다.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었고 밤에 잠을 자다 다리에 쥐도 나기 시작했다. 마그네슘을 챙겨 먹고 물을 마시고 있는 나의 모습을 거실 거울로 통해 보는 순간 알았다. 맞아 난 참 어리석어. 운동을 꾸준히 하던 사람이 하지 않으면, 일반인보다 몸이 더 빨리 붓고 순환에 장애가 온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거기다 원래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과거에 불명 증도 앓았던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운동이 정확히 나의 삶에 깊이 침투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아침에 눈을 떴다. 새벽 기상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다. 이전 체중으로 복귀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 살이 찌는 데는 체 10일도 걸리지 않았는데. 억울했다. 거의 매일 20분에서 40분 사이 PT를 했다. 나이가 먹어 감에 체중 감량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웬만해선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혼자서 40분이 넘는 운동은 무리였다. 유튜브에 구독 중인 홈트를 보면서 꾸준히 계속했다.


이 습관 이란 게 참 무섭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 상쾌함에 이끌려 아침마다 기분 좋게 마당으로 내려갔다. 몸에 산소가 다시 공급되는 듯한 건강한 기분은 나를 다시 중독시켰다.  


난 왜 이런 짓을 가끔 반복할까!.




< 부실한 몸에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한 아줌마의 미련함>


5년 동안 다양 각색의 운동을 해보았다. 한 가지 운동을 진득하게 꾸준히 못해 서 라기보다, 개인 pt를 2년 정도 받고 난 뒤 큰 깨우침이 이었기 때문이다. 나에 맞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는 깨우침. 그동안 했던 다양한 운동들을 쭉 나열해 보면 개인 PT 수업,  줌바 , 요가, 테니스, 골프, 킥복싱, 싸이클링, TRX, CrossFit,  홈트레이닝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라테스. 저녁에 혼자 걷기도 해 보았고 줄넘기, 달리기도 해 보았다. 줄넘기는 지금도 가끔 한다. 이 많은 운동 중 나의 최종 정착지는 필라테스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운동을 굳이 쉬지 않고 이것저것 7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유는 호치민은 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꼭 운동을 해서 땀을 배출시켜야만 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출산 이후 몸 관리를 하지 않아 몸이 엉망진창 되어 있었다.

    

4계절이 더운 베트남 호치민 에서 운동은 그야말로 필수다. 24시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생활을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항상 카디건을 챙겨 다니고 차고 강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비염과 재채기를 달고 산다. 혹시 몸이 이유 없이 무겁고 두통이 동반된다면 냉방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식당, 백화점, 모든 공공 기관에 에어컨 바람은 칼날처럼 차갑다.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첨엔 나도 몰랐다. 학교 근무를 마치고 집에만 오면 몸이 마치 물에 젖은 스펀지가 된듯했다. 주변에 습한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인 느낌이었다. 물 밑으로 가라앉듯 무거웠다. 머리를 들 힘 조차 없었고 몸이 점점 부었다. 그러다 주변에 아시는 분( 호치민 에서 꽤 오랜 생활을 하신 분)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고 땀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냉방병이었다. 물론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특히 베트남에서 운동은 필수로 꼭 추천하는 바이다. 더욱이 습한 나라여서 몸이 차거나 허약한 주부들에게는 좋지 않은 계절이다. 반면 건강하고 몸에 열이 많으신 분들은 호치민에서 둘째, 셋째 자녀들을 숭풍 숭풍 출산도 잘하신다.


그리고 또다시 긴 휴식기를 가지다 출산을 하고 7년 전에 베트남 코치한테서 개인 피티를 2년 정도 받았다. 아파트 헬스 장에 있는 젊은 친구였고 또 아래층이라 편했기에 자주 이용을 했다. 동작 하나하나 정확한 자세를 알아 가고 혼자서 운동을 해도 신체 부위 중 어디에 어떤 자세로 힘을 써야 하는지도 꼼꼼히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2년 동안 온몸이 나날이 더 아파갔다. 후두염과 편도염을 달고 살았다. 이상했다. 그래서 운동을 더욱 열심히 했다. 면역을 더 기르고 싶었고 또 더 건강해지는 줄 알았다. 천성이 무식하고 어리석은 지라 무엇이든지 경험을 한 뒤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탈이 났다. 호되게 앓았다. 허리가 갑자기 굽힐 수도 숙일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몸에 맞지 않는 운동을 강도 높게 꾸준히 한 대가였다. 나이를 무시한 체 영혼과 마음만 따라 했던 결과는 처참했다.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 그 상태 그대로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아이와 함께 한국을 다녀왔다.  



<Oscar와 필라테스 만남>


이후 몸에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고 싶었으나 저질스러운 나의 체력에 맞는 운동을 찾기 쉽지가 않았다.  

윗집에 사는 동생이 필라테스를 권했다. 함께 등록을 하고 3번째 다녀온 날 몸살이 났다. 뿐만 아니라 팔목과 무릎 통증이 심하게 시작되었다. 베트남 강사님들이 하는 곳이었는데 오픈 기념행사 중 30번 수업 패키지를 등록하면  50프로를 싸게 해 준 다는 것이었다. 역시 난 아줌마가 맞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팔랑귀에 주저 없이 냅다 등록했다. 실수였다. 같이 등록한 윗집 동생은 나보다 6살이나 아래다. 젊은 엄마였다는 것을 순간 난 망각했다. 좌절이었다.   


결국 강사님께 이런저런 사연을 이야기하고 무릎보호대, 손목 보호대 등을 착용한 뒤 뒤에서 조용히 따라 했다. 강사님 눈치 보느라 불편했고 운동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멘쏘래담, 살론파스 그리고 호랑이 파스를 온몸에 바르고 부엌과 온 집안을 파스 냄새로 풀풀 품기며 다녔다. 환불도 되지 않았다. 50프로 할인한 가격이라도 베트남에서 그 정도 가격이면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운동을 좀 과하게 한 저녁에는 얼굴에 ‘오늘 엄마 온몸이 아파. 그러니 주는 데로 먹어’라는 인상을 확 품기면서 저녁을 준비했다. 꾸역꾸역 30번의 수업 중 27번을 채우고 난 더 이상 그 필라테스를 나가지 않았다. 남편은 병원비가 더 나올까 미련한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 역시 운동을 한 건지 육체노동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집에서 홈트를 해볼까 하던 도중 가까운 곳에 이탈리안 강사가 운영하는 정식 필라테스가 있다는 수소문을 듣고 당장 찾아 가보았다. 이전 베트남 강사님들과 함께한 필라 테스는 사실 개인 고강도 PT와 다를 바 없었다. 전문가가 직접 코칭한다는 말을 듣고 정보를 알아본 뒤 방문했다.


이렇게 내가 이런저런 주절주절 적는 이유는, 드디어 나와 맞는 곳을 찾은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전 베트남 강사와 함께 필라테스를 하면서, 강도가 조금만 약하고 아픈 나의 곳을 집중적으로 재활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것 또한 몇 해 동안 운동을 몸소 해보고 겪어본 나만의 경험에서 나온 직관이었다. (미련한 경험)




Oscar ( 사진 찍는다니 저런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학원 모습. 윤이 반짝 반짝 나는 필라테스 기구.


Oscar의 필라테스 학원은 조용하고 깨끗하며 차분했다.

Oscar의 첫인상은 깐깐해 보였고,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는 듯했다. 학원에 하얀 수건도 각이 져서 접혀 있었다. 수업이 끝난 수강생들은 각자 배치되어 있는 애탄 올 스프레이와 하얀 타올로 기구를 닦고 정리도 직접 해야 한다. 지금처럼 청결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 꽤 만족스러운 대처였다. 등록하기 전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와 설명을 듣고는 단체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기구의 강도 조절을 개인적으로 봐주었다. 나뿐 아니라 몇몇 외국 분들 중 허리가 좋지 않은 분들은 세심하게 수업 중 중간중간 케어해 주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베트남에서 이런 전문적인 필라테스 강사를 만나 레슨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무척 감사하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 수업 인원이 많지 않다. 덕분에 며칠 전에는 혼자 개인 필라테스를 받을 기회도 생겼다. 이때가 찬스라는 생각에 Oscar에게 나의 상태를 살짝 귀띔해주었다.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많이 두들기다 보니 거북목이 한층 더 심해지는 듯하다. 목 밑으로 등 쪽에 찢어지는 통증이 최근에 더욱 심해졌다. 몇 차례 목욕도 다녀왔으나 그때뿐이다'라고 주절주절 흘리듯 이야기를 했다.


Oscar는 눈썹을 아래 위로 치켜뜨며 안경을 티셔츠로 닦은 다음 ‘Let’s Start’를 외쳤다. 다리를 꼰 채 두 팔에 스트링을 감고 등을 곧게 세운 후 힘껏 당기는 그날의 운동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온몸이 시원했다. 필라테스를 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Oh, Oscar!! You are wonderful.”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Oscar는 언제나 그러듯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Of Course'라고 외쳤다.


이런 기분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개인 필라테스 레슨도 Oscar와 많이 신청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확실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 개인 레슨시간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훅 하고 들었다.

다 끝나 갈 무렵 또 다른 한국 분이 오셨는데 그분은 요가 메트 위에서 하는 필라테스를 신청하신듯했다. 같은 한국사람이라 반가웠지만 그냥 살짝 미소만 짓고 서둘러 나왔다.   




필라테스 자격증 / 두번째 줄 재활 자격증이 이제서야 보임/ 호치민 잡지에도 나온 유명 인사


운동 후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Oscar의 자격증을 상세히 둘러보았다. 이전엔 잘 안보이던 재활 자격증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에서 이런 인연을 마주하면 마음 깊이 감사하다. 벌써 20번 패키지를 2달 만에 다 사용했다. 이제 곧 다시 재 등록을 해야 하는데 횟수를 좀 더 늘려 신청을 할 예정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몸이지만 앞으로도 쭉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 지켜주고 보담아 주며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필라테스를 계속할 것이다.

 



브런치 작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한 뒤 글을 쓰는 경험도 꽤 짜릿하다.

Oscar에게 이 글을 보여 줄 생각을 하니 왠지 쑥스럽다. 하지만 분명 Oscar는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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