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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r 04. 2021

난 오늘 또 거짓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좀 편히 다니고 싶어서요.

드디어 고래 그리다. - 참고 고래 isabelle -



"얼마나 계셨어요?"

"3년요."

.

그렇게 난 또 거짓말을 했다.

뻔뻔하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다

고백 중이다.



15년째 살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난 이방인이 된다.

그녀들과 나의 사이에 알 수 없는 한 장의 유리 장벽이 스르륵 올라온다.

최첨단 자동 유리문이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속도 훤하니 보인다.

그녀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15년이라는 숫자 하나로 구분된다.


솔직한 대답과 동시에 그토록 힘들어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들 눈이 토깽이 눈 마냥 동그래진다.

목소리 톤도 한 계단 올라간다.

네???

물론 17년 20년 거주자도 있지만, 아이 학년 또래나 취미미술 학원 같은 곳에서 만나기는 드물다.

난 외계인이 된다.

나를 감싸는 기운과 공기가 무겁다.

이 느낌 불편하다.

난 은근 슬쩍 묻어가는 걸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도 항상 뒤에 앉았다.

어차피 3년을 살았다고 해도 그녀들과 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

굳이 솔직히 다 말하고 싶지 않음이 나의 심정이다.

15 동안  해마다, 새로 만나는 그녀들로부터 항상 받는 질문.

이젠 쉬고 싶다.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답: 15년 되었습니다.


'한국 언제 가세요?'

답: 모릅니다. 갈 때 되면 되겠지요.


'아이 학교는?'

답: 모릅니다. 그때 되면 알게 되겠지요.


저도 베트남에 이리 살게 될지 몰랐는데, 앞으로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주어진 삶, 하루하루 살고자 합니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른다.




내가 '15년'이라는 숫자를 입에서 꺼냄과 동시에 감수해야 할 질문 들이다.


어머 호찌민에서 15년요?

장사하세요?

사업하세요?

아이는 어떻게 기르셨어요?

어디서 출산하셨어요?

어디 사세요?

남편이 무슨 일을 하시나요?

이전에 일은 하셨어요?

전업 주부만 하셨어요?

아이 학교는 어디 다니나요?

아이는 몇 학년인가요?

한국말 보단 영어가 편하겠네요?

아이가 영어 잘하겠다.

호찌민에 대해 모르는 게 없겠어요.

호찌민에 대해 엄청 잘 알겠다.~~ ( 잘 모릅니다. 안 다녀서요.)

베트남어도 잘하겠다.~~ ( 못합니다. 기본 단어 나열만 합니다.)

베트남어 배우 셨어요?(네. 호찌민 사범대학 랭귀지 코스 다녔습니다.)

얼마나 배우 셨어요?(6개월요.)

메이드는 있으세요?( 없습니다. 다림질 해주시는 아주머니 한분만 있습니다.)

메이드 좀 소개해 주세요. ( 죄송합니다. 모릅니다.)

한국 언제 가세요?


.

나의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마음이 탈진 되어버린다.


그래서 난 오늘도 거짓말을 했다.

미술학원에서


당당하게 또

'뻥을 쳤다.'

"이제 3년 되었어요."

그리고

씩 웃었다.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초 집중 해서

고래 한마리를 상상속에서 그렸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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