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 May 29. 2021

카페 덴 다 (cafe den da)와 퍼(pho)

베트남 블랙 아이스커피와 쌀국수는 천생연분

3월. 4월. 5월.

죽도록 더운 날씨가 시작된다. 에어컨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에어컨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날씨. 세상이 하얗게 보일만큼 내리쬐는 땡볕. 나름 열대기후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더운 여름, 비 오는 여름. 죽도록 더운 여름. 추운 여름. 추운 여름에는 에어컨 가동없이 이불을 껴안고 자는 여름이다. 제일 좋아하는 여름은 비 오는 여름이다. 장마처럼 폭우가 쏟아져 생활에 불편을 겪지만 한차례 시원히 내리고 나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밤공기가 좋다. 습한 기운은 좀 찝찝하지만 좋아하는 글루미 날씨도 느껴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하노이에 머물 때 하노이 날씨를 참 좋아했다.


죽도록 더운 여름. 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여름. 아침에 팅팅 부은 몸으로 한없이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부여잡고 세수를 한다. 덥다. 입맛도 없다. 몸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축축 처진다. 보통 이 시점 전후로 보약을 한재 해먹기도 했다. 호치민에 오래 머물다 보니 몸이 호치민화 되어 가고 있다. 진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알 수 있다. 에어컨이 가동 중인데도 덥다. 주방은 용광로다. 주말 아침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싫은 날 호치민이 갑자기 사랑스럽다.


왜냐면!! 간단한 '쌀국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열 치열이다. 땡초와 숙주를 듬뿍 넣어 뜨엉엇(칠리소스)에 찍어먹으면 그야말로 든든한 아침 한 끼가 단돈 2천 원에 해결된다. 아참, 새콤 달콤 마늘장아찌도 함께 국수에 얹어 먹으면 몸보신 한 기분. 곁다리로 quay(꿔이)라는 튀김까지 조미료 육수에 푹 찍었다 건져먹으면 아침에 불량식품을 죄다 흡입한 기분이다. 대부분 조미료 육수라는데. 그래서인지 주기적으로 땡긴다. 그 생각은 접고 혀끝 단맛에 노예가 되어 기분이 만땅구로 좋다. 우리 집 세 식구 7천 원이면 끝~!


쌀국수, 허브, 땡초, quay(튀김), 식초마늘, 칠리소스


다음 순서는 로컬 베트남 커피 한잔 사 먹기. 커피맛보단 재미로 종종 한잔씩 사 먹는다. 저렴한 가격도 재미나고, 사약 같은 블랙커피도 맛도 재미나다. 쓴맛과 밍글 한 베트남 커피맛. 개인적으로 베트남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씩 마시고 싶은 날도 있다. 반잔 정도 먹는다. 만 오천동(8백 원)에서 이만 동(천 원) 사이다. 리어카에서 파는 베트남 커피를 한잔씩 사 먹을 때마다 매번 습관처럼 떠오르는 시각. 낯선 땅에 나의 모습. 길 위에 마흔 중반 어느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단돈 8백 원에 무척 행복해하고 있다. 홀로 감성에 잠깐 젖어도 본다.


'아, 나 아직도 베트남에 살고 있구나.'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몰라.'


쌀국수와 야자수 그리고 카페덴다는 내가 지금 현재 이 시점에 베트남 호치민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시그널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 그 친구들이 매우 좋다.

 

로컬 커피~


그렇게 한해 한해 연장이 될 때마다 나의 기분은 만감이 교차한다. 고개를 뒤로 쭉 젖힌 뒤 길쭉한 야자수 나무를 한 끗 쳐다본다. 한국을 가게 된다면 아마 제일 그리운 나무가 되지 않을까?

시원한 커피 쓴맛을  낮추기 위해 설탕시럽을 쪼금 섞었다.

달달하니 참으로 맛나군.

 

비가 곧 쏱아질 기세.




photo by Goeunsim.

이전 13화 베트남에서 필라테스(Pilates)를 경험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