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저도 좀 편히 다니고 싶어서요.
"얼마나 계셨어요?"
"3년요."
.
그렇게 난 또 거짓말을 했다.
뻔뻔하게.
입에 침도 바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다
고백 중이다.
15년째 살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난 이방인이 된다.
그녀들과 나의 사이에 알 수 없는 한 장의 유리 장벽이 스르륵 올라온다.
최첨단 자동 유리문이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속도 훤하니 보인다.
그녀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15년이라는 숫자 하나로 구분된다.
솔직한 대답과 동시에 그토록 힘들어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들 눈이 토깽이 눈 마냥 동그래진다.
목소리 톤도 한 계단 올라간다.
네???
물론 17년 20년 거주자도 있지만, 아이 학년 또래나 취미미술 학원 같은 곳에서 만나기는 드물다.
난 외계인이 된다.
나를 감싸는 기운과 공기가 무겁다.
이 느낌 불편하다.
난 은근 슬쩍 묻어가는 걸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도 항상 뒤에 앉았다.
어차피 3년을 살았다고 해도 그녀들과 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
굳이 솔직히 다 말하고 싶지 않음이 나의 심정이다.
15년 동안 매 해마다, 새로 만나는 그녀들로부터 항상 받는 질문.
이젠 쉬고 싶다.
답: 15년 되었습니다.
답: 모릅니다. 갈 때 되면 되겠지요.
답: 모릅니다. 그때 되면 알게 되겠지요.
저도 베트남에 이리 살게 될지 몰랐는데, 앞으로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주어진 삶, 하루하루 살고자 합니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른다.
내가 '15년'이라는 숫자를 입에서 꺼냄과 동시에 감수해야 할 질문 들이다.
어머 호찌민에서 15년요?
장사하세요?
사업하세요?
아이는 어떻게 기르셨어요?
어디서 출산하셨어요?
어디 사세요?
남편이 무슨 일을 하시나요?
이전에 일은 하셨어요?
전업 주부만 하셨어요?
아이 학교는 어디 다니나요?
아이는 몇 학년인가요?
한국말 보단 영어가 편하겠네요?
아이가 영어 잘하겠다.
호찌민에 대해 모르는 게 없겠어요.
호찌민에 대해 엄청 잘 알겠다.~~ ( 잘 모릅니다. 안 다녀서요.)
베트남어도 잘하겠다.~~ ( 못합니다. 기본 단어 나열만 합니다.)
베트남어 배우 셨어요?(네. 호찌민 사범대학 랭귀지 코스 다녔습니다.)
얼마나 배우 셨어요?(6개월요.)
메이드는 있으세요?( 없습니다. 다림질 해주시는 아주머니 한분만 있습니다.)
메이드 좀 소개해 주세요. ( 죄송합니다. 모릅니다.)
한국 언제 가세요?
.
나의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마음이 탈진 되어버린다.
그래서 난 오늘도 거짓말을 했다.
미술학원에서
당당하게 또
"이제 3년 되었어요."
그리고
씩 웃었다.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초 집중 해서
고래 한마리를 상상속에서 그렸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