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우선 적자 - 3일 차
가뭄에 단비 맛을 보았습니다. 너무 달아서 계속 먹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어 보기도 했습니다. 브런치란 플랫폼이 참으로 이상요로콤한 곳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평범한 일상에 한번씩 훅 하고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또 제 삶 속에 갑자기 들어왔다 제 몸을 통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중년이 되고 나서 딱히 설렐 일도 새로운 일도 없었습니다. 이곳에 글을 한 번씩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정확하게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무거운 호수 위에 안개가 자욱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런 중력감에 눌렸습니다.
베트남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 적인 부분을 올리려다 보니 부담스러웠던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곳 비공식적인 뒷담화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습니다. 메이드 이야기 외에는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잡지사에서 메이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좋지 않은 인식으로 베트남이 비추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특별히 교육에 관해 저의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주제로 다루어 볼까 했지만 글쓰기가 미숙한 상태라 자신도 없었습니다. 잘못 표현했다가는 이곳 교육 현실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쓰기 연습을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일기는 적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우선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야 글을 쓸 소재 거리가 생기고, 그 소재중 자신 이야기가 바닥이 나면 그때서야 드디어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이 된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브런치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100일 글쓰기, 매일 쓰기, 한 달 도전하기 등 많은 작가님들이 고군분투하면 글쓰기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처럼 저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느닷없이 베트남에 사는 아줌마가 왜 ‘3일 우선 적자’를 시도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구구절절 핑계삼아 적어 보았습니다. 일주일 매일 쓰기도 자신이 없던 저는 3일을 목표로 정해 보았고 오늘이 그 마지막 날입니다.
저의 이야기 중 웃긴 상황과 사건이 많은 이곳에서 ‘외국 아줌마가 혼자 운전을 하면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잡았고, 3부작으로 오늘이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3일 연달아 너무 운전 이야기만 적어 혹시나 무료해질 듯해서 서론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저는 홍콩에서도 거주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고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때 그 이야기도 한번 풀어서 적어 보겠습니다.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마지막 이야기 ‘3일 우선 적자’에 외국 아줌마가 당당히 도요타 매장을 가서 차 수리 과정을 처리하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차 정비소 센터에 가는 게 무~슨 큰 일이라도 되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요, 베트남은 ‘기사’ 문화입니다. 당연히 자동차 서비스 센터, 아파트 주차장, 동네 카센터에는 백 프로 기사 아저씨들 밖에 없어요. 정말 남자밖에 없었어요. 처음에 어찌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지. 그때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겨우 2개 있는 선글라스 중 색이 짖은 선글라스와 텀블러를 챙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도 한 권 챙긴다. 깜박할세라 핸드폰 보조 건전지도 잔여량을 확인하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냉장고를 열어 작은 병 250M 생수 한병도 챙겼다. 긴장한 탓에 입이 바싹바싹 건조해질 때도 많다. 가방이 제법 묵직하다. 언심이는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도요타 카센터 매장을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언심이는 마흔 중반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실 호기심에 쳐다보는 것뿐인데 언심이는 혹시나 이뻐서 눈에 너무 띄어서 쳐다보는 게 아닌가 라는 자뻑에 끔찍한 착각을 하고 최선을 다해 기사 아저씨들의 시선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 중이다.
처음에 일반 동네 카센터에 갔었던 기억에 비하면 도요타 매장은 5 스타 호텔급이다. 쿵쿵 뛰는 마음도 거의 없어졌고, 3번 창구 상담 아저씨와 안면을 튼 사이라 쪼금 건방져 지기도 했다. 아저씨가 베트남 사람답지 않게 의외로 꽤 한 곳 ‘도요타’ 매장에서 2년 넘게 근무 중이다. 오랜만에 매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비 오는 날 황당한 일이 있었다. 혼자 차 안에서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질렀다. 홀로 쓸쓸히.
볼일이 있어 동네에 나갔다가 패닉의 ‘달팽이’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빗방울이 앞 유리에 번지듯 퍼졌다. 점점 세게 내렸다. 한차레 큰 파도 같은 비가 몰아 치더니 부슬부슬 비로 바뀌었다. 당연히 와이퍼를 켰다. 달팽이를 듣는데 비까지 내리니 차 안에 흐르는 아늑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언심이는 감성이 풍만한 아줌마였다. 골목에 물이 가득 차기 전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다. 와이퍼를 켜고 앞 유리를 보는 순간 무언가 길~다란 검정 지렁이가 와이퍼에 질질 끌려 다니듯 유리를 찍찍 닦으며 좌우를 왔다 갔다 했다. 지렁이 치고는 너무 길었다. 빠른 와이퍼를 따라 움직이니 순간 실뱀인가 라는 무서운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홀로 차 안에서 어찌나 외로운 비명 ‘꺄악’ ‘꺄악’을 질렀던지. 뒷꼴이 얼얼했다. 우아한고 감수성 넘치는 여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차를 담벼락 옆에 주차를 하고 비상등을 켰다. 바로 와이퍼를 껐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정체모를 기다랗고 시커먼 무언가가 와이퍼를 따라 움직였고 비가 왔음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차 안에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천천히 내려 비를 맞은 채 와이퍼를 들어 보았다. 그것은 … 앞 유리 왼쪽 와이퍼 고무가 쩌 억 하고 양갈래로 찢어진 것이다. 한쪽은 와이퍼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너들 너들 와이퍼가 움직일 때마다 빗물에 미끄러져 꿈틀거리듯 넓은 앞유리를 쓰윽 쓰윽 지나간 것이었다. 우기 때 와이퍼를 들어 올려 자주 건조시키지 않았고, 게다가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지 못한 고무가 한순간에 저승길로 간 거였다. 비는 계속 왔고 와이퍼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면서 시속 15킬로로 집까지 어그 정 어그 정 기어 왔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동네 구석구석 개인 정비소가 있지만 그 당시 운전을 막 시작한 상태라 기사 아저씨들의 주목을 온몸으로 받고, 담배 연기 자욱한 대기실에 함께 앉아 있을 용기가 없었다. 언심이는 한류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집중적이고 노골적인 시선이 무척이나 버거웠다. 그날은 그냥 집으로 왔다.
요 근래 여성 운전자도 많이 생겼지만, 아직까지 베트남 정비소나 자동차 센터를 방문하면 대부분 남자 기사 아저씨들이다. 베트남 부자들도 자가운전 대신 기사들이 운전을 한다. 주차할 곳이 힘들어 더욱 그러하다. 언심이는 내일 도요타 매장을 가기로 결심했다. 현재 왼쪽 앞바퀴에 못까지 박혀 있는 상태라 어차피 가야만 했었다. 언심이는 미루고 미루다 결국 그날 마음을 먹었다. 언심이는 초등학교 4학년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전학 가야 했던 날을 떠올린다. 새로운 학생에게 쏟아지는 호기심의 눈길과 궁금해하며 한 마디씩 툭 툭 던지는 질문들. 낯선 교실과 환경. 전학 온 친구는 새로운 책상에 처음 보는 짝꿍과 종일 첫날을 보내야 한다. 언심이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기사를 고용해야 하나 라는 고민에 빠지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카센터에 도착은 했고 접수를 해야 하는데 안내 데스크 여직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다. 드디어 그녀와 언심이는 손짓 발짓이 시작이 된다. 구글 번역기까지 동원되지만 답답함에 머리털이 쭈뼛쭈뼛 썰만큼 울화통이 치밀고 올라온다. 언심이는 영어를 좀 아니 꽤 하는 편이다. 정비소 아가씨가 언심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언심이가 상담창구 3번 아저씨를 불러 달라 애원하니 여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시스템상 번호표 순서대로 자동차 접수를 받고 상담원을 연결시켜주는데 이 아줌마 다짜고짜 명함 하나 내밀고는 큰소리로 영어로 쉘라 쉘라 소리치니 안내 데스크 여직원이 우왕좌왕이다. 사실 3번 직원 상담원 아저씨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언심이는 베트남 업무 특징을 잘 알고 있다. 한없이 기다리고, 하다 하다 안되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시스템. 언심이는 눈치가 빠르다. 우선 난처해하는 여직원에게 스스로 자동차 상태를 설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차는 점검 들어가기 전 대기 장소에 정차 중이고 정비소 기사 아저씨, 그 외에 2명의 다른 아저씨들, 그녀와 언심이. 토탈 5명이 차 주위에 서성인다. 아저씨들 씩 웃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굉장히 잘 웃는다. 어려워도, 실수해도, 잘 몰라도, 그들은 웃는다. 결국 언심이는 정비소 입구에서 차 와이프를 직접 들고 보여 준다. 또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여 앞바퀴 못이 박힌 부분을 찾기 위해 핸드폰 후래쉬를 켜고 앞 뒤로 왔다 갔다 이동하며 몸소 찾았다. 못을 찾아 직접 손으로 가리키며 상태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언심이는 무엇을 어디를 어떻게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도 못했다. 바퀴를 교체를 해야 할지. 땜빵이 가능 한지. 바퀴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 말도 전달을 못 한 언심이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와이퍼 용액과 엔진 오일도 상태를 체크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언심이는 다시 한번 여직원에게 3번 상담 창구 아저씨 명함을 보여주며, 이분과 꼭 연결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한다. 그분이 영어가 된단고.
상담하다 말고 3번 아저씨가 뛰쳐나왔다. 키를 차 안에 두고 사무실로 들어 오란다. 번호표를 뽑아 들고 앉아서 기다렸다. 가끔 베트남 상담원 창구 아저씨들도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언심이와 눈이 마주치면 다음 번호 호출 버튼을 누른다. 도도한 척, 아무렇치 않은 척 의자에 앉아 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영 불편하다. 챙겨 온 물을 한 모금 들이켠다. 책을 읽을 차분함은 이미 저 멀리 우주로 떠나버렸고 간신히 눈 앞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후레시를 켜고 번역기를 돌리고 배터리가 30프로 남았다. 여분의 충전지를 꺼내어 연결하고 번호표를 손에 꼭 쥔 채 언심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다행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요즘, 그깟 마스크가 언심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마운 마스크. 얼굴을 반 이상 가려줘서 기분이 좋다.
1시간가량 머물렀다. 와이퍼는 교체했고 타이어는 다행히 못이 깊게 박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바퀴 수명이 4년이나 되어 마모가 많이 되었다며 1년만 더 사용하고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알려 주었다. 언심이는 다시 마음이 휙 하고 바뀐다. 기사가 없어도 될 것 같다며 혼자 대견해한다. 상담 창구 아저씨가 베트남어를 빨리 배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언심이는 집으로 향하는 도중 스타벅스에 들러 가져 간 텀블러에 커피를 꽉 채우고 집으로 향했다. 언심이는 집을 참 좋아한다. 커피와 빗소리 사운드 트랙을 켜고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언심이 생활중 아주 '큰' 일을 치른 뒤라 그녀에게는 깊은 휴식이 필요하다. 아이가 오기 전까지..
드디어 마쳤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
3일 연재 '아줌마가 베트남에서 운전하는'
그녀만의 스토리였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라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쉽게 쉽게 운전하고 생활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매일 쓰기는 아마 안 할 것 같습니다.
이리 힘든 일인줄 몰랐습니다.
3일 동안 하트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받는 저는 행복했습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더욱/ 무척 /너무 /감사했습니다.
2021/ 2월 11일 / 목요일
감히 3일연재 도전 해본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