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꼬라지를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녹이 쓴 마음을 가진 채로 늙어 갈까 봐 두려웠다. 자기만의 세계에 감금되어 그곳이 전부인양, 고집스럽고 어거지 스러운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내가 갈망하는 미래 노년의 모습과 거리가 먼 할머니가 될까 봐. 그것이 난 두려웠다. 인간은 지구 상에 한 어미와 연을 맺어 뱃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날 적에 죽음이라는 아이와 한 몸으로 부둥켜안은 채 이 세상에 던져진다. 그 사실을 직시한 순간 삶이 다시 보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루 살기’였고 수없이 연습을 했다. 하루살이 곤충처럼. 새벽에 기상을 하니 저녁엔 잠이 쏟아졌고 바로 쓰러져 잤다. ‘지금 살고 있는 단 오늘 하루만 이라도 제대로 내가 살고 싶은데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돈다.
그 하루가 유일하게 지금 나에게 주어졌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하루는 온전히 나의 하루라는 것. 나의 하루라는 설레임. 오늘 하루 나의 하루는 오롯이 나의 생각과 판단에 설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울한 하루가 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지도 내가 결정한다는 것. 나의 시간이니까.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니, 그 순간도 나 스스로가 정하는 거였다. 그것부터 시작했다. 그럼 녹슬어 삐그득 거리는 나의 마음을 닦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단하면서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아이를 지켜봐 줄 수 있는 넉넉한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살이를 살고 있는 삶에 긍정의 신호가 찾아왔다. 최근에 사건 하나가 터졌다. 그 일로 아주 개미 코꾸멍만큼 작은 틈이 드디어 나의 마음에도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기쁨은 나를 며칠 둥둥 떠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작은 틈새가 나에게 한줄기 가닥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재산 전체를 사기꾼에게 날렸다거나, 암에 걸렸다거나, 큰 사고가 난 것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2주 전에 겪은 인간관계에서,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기분 또한 영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한마디로 똥 밟은 기분이다.
<12월 16일 수요일 9am.>
오스카가 두 눈을 똑똑히 보고 거짓말했다. 필라테스 강사다.
“ 15프로 디스카운트 이번 주가 마지막이야. 빨리 패키지 구입해. 그리고 친구들 없어? 네 친구들 좀 센터에 데리고 와.”
“(친구 데려오라는 말은 무시한 체) 나 수업 몇 번 남았어? 아직 많이 남았을 텐데. 무릎 때문에 기구 필라테스를 이번 달에는 많이 못했어, 알잖아.”
“ (종이 파일을 뒤적거려 나의 이름을 찾는다. 그리고 수업을 카운터 하기 시작한다.) 음. 한 8번 남았는데? 이번 주 까지만 패키지 할인하고 다음 주부터는 크리스마스 휴일이야. 그리고 앞으로 또 언제 다시 프로모션 할지 모르겠어.” (얌체처럼 말한다.)
"흠… 알아. 뭐.. 오스카 너 베트남에 계속 있는 거 확실하지?" 2021에 어디 다른 데 가거나 하는 거 아니지?” (이상하게 찝찝하다. 등록을 하고 싶지가 않다. 2021년 8회를 다 사용한 후 등록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난 나의 모든 직감을 무시한 체, 400불 결제를 한다. 내가 쓰는 생활비에서 꽤 큰돈이다. 하지만 5개월치 정도라 생각하면 크게 나쁘지도 않다.)
“ 당연하지. 내가 어딜 가겠어. 내 필라테스 센터가 여기 호치민에 있는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씩 웃는다)
“ 그래, 뭐 그럼 20회 더 추가해줘.” (카드로 결제를 하고 결제내역은 남편 핸드폰 메시지로 전송된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다.)
5일 뒤
<12월 21일 월요일. 9am.>
“굿 모닝 래디스.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서 미안해. 나 베트남 떠나. 3월에!!! 나의 남편(오스카가 남자와 결혼한 사이 인지 몰랐다)이 이태리로 돌아가게 되었고, 부모님 연세도 많으셔서, 나 이태리로 돌아 가야 할거 같아.”
"??? 뭐라고???" 난 두 눈만 껌뻑 껌뻑거렸다.
뒤 끝 작열에 당사자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면서 혼자서 이를 벅벅 가는 게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인내심과 참을성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어 나의 성격 중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는 모르나(사실은 알고 있다. 넘어서지 못했을 뿐), 그러한 성격으로 꽤 많은 사람들을 나의 마음에서 쳐내고 지워버렸다. 고작 생각나는 소심한 복수는 그 사람을 보지 않거나 인사하지 않기, 전화를 받지 않거나 좀 늦게 받기, 카톡 대화창 일부러 열어보지 않기 등이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좁은 교민사회에서 원수로 지내고 싶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계속 인간관계를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에 엉어리져 있는 마음을 가진 채 관계를 유지했다. 어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회피하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좀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고, 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고, 모든 사람이 내 맘에 들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세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결론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나의 성벽을 쌓았다는 이야기이다. 뭐. 그러했는데... 개미 콧구멍 만한 빛이 녹이 슬어 부식되기 일보 직적인 마음의 껍데기를 녹이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이라는 빛.
오스카가 당당히 필라테스 센터를 닫는다는 공표를 한날,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작 5일 후였다. 그는 나의 눈을 보고 분명히 말했다. 이곳에 있겠다고. 외국 사람들은 상대와 이야기를 할 때 두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를 한다는데, 그래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눈을 똑바로 본채 나에게 거짓말을 했나 보다. 다른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벌써 그립다는 둥, 보고 싶을 거라는 둥의 인사를 건넨다. 나란 사람의 인격체의 한계인지 아무리 그 사황을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새로운 패키지를 등록하지 않았거나, 뭐 수업이 몇 번 남지 않았나 보다.
나의 직감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난 좀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40여 년을 살면서 흘려버린 직감 때문에 후회했던 적이 수천번은 될 것이다. 머리가 돌 인지 매번 같은 실수를 남발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분명 뭔가 찝찝했었다. 기존 8회까지 합치면 28회. 달력을 보았다. 구정 연휴까지 2월 중순에 끼어 있다. 2달 안에 28회를 다 채우기에는 도저히 무리다.
그는 나한테 사기를 친 것이다. 베트남에 머무는 유럽인들 진짜 믿음 안된 다더니, 그래도 오스카는 믿었는데...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체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분노의 메시지를 적었다가 보관함에 도로 넣었다. 보내지 못했다. 돈 보다도 센터 사람들에게 거짓말 한 그가 미웠다. 분명 난 물어보았고, 그는 분명 베트남에 있는다고 했는데... 고작 5일 전이었는데... 그래서 기존 운동이 끝이 나지 않았어도, 새로운 세션을 더 등록을 했는데... 분명 뭔가 잘못된 상황인데... 마음 한견엔 '코로나로 상황이 힘들어 자꾸 등록하라고 부추기나?'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어차피 계속 운동할 거 '기분 좋게 등록하지 뭐'라는 생각에 빠진 체... 직감을 무시한 댓가... 속상했다. 아주 많이...
그날 저녁 우리 남편은 그런 나를 또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묻는다. (그는 알고 있다. 내가 한마디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혼자 끙끙 앓고 있다는 것을)
"물어는 봤어? 환불되는지?'
"아니…."
"다음번 갈 때는 용기 내서 꼭 물어봐. 알았지?"
"못 돌려받아도 괜찮으니 우선 물어는 봐. 횟수가 많이 남으면 주말에 나도 가서 같이 할게. 필라테스. 이참에 나도 해보지 뭐."
"응...."
이라고 대답만 하고선 먹던 두부를 마저 먹었다.
( 그가 말 뿐이라는 것을 난 다 안다. 그는 결코 필라테스를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냥 날 위로차 해준 말이라는 것을. 이젠 안 속아.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내편이 있어 좋다.)
잠을 설쳤다. 무서웠다. 물어보기가.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대 놓고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베트남은 특히 더욱 심하다. 동양인이라서 날 무시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밤새 생각했다. 어떻게 물어보지? 뭐라고 물어보지? 왜 거짓말했냐고 물어봐야 하나? 당연히 그는 돈이 필요하니 그랬겠지. 바보 같은 질문이야. 우선 환불되는지 물어봐야 하나? 그리고 안된다 그럼 어떡하지? 뭐 어쩔 수 있나. 그래도 이번에 물러서면 안 돼. 물어봐야 해. 용기를 내어 물어봐야 해. 나의 권리야. 날 보호할 사람은 나 밖에 없어. 마음에 상처를 내지 마.
<12월 22일 화요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몸에 있는 모든 피와 에너지를 끌어당긴 듯했다. 현기증이 났다. 호흡이 힘들 정도다. 책상에 손을 살짝 얻고 말했다.
“오스카, 30회 너무 많아서 나 다 채울 수 없어.” (갑자기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네가 안 간다고 했잖아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 말은 차마 못 했다. 싸울까 두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쇼샨이
" 너 안 간다고 했잖아"
난 순간 너무 놀라 두 눈이 동그래 졌고 숨이 잠시 동안 홀딩이 되었다. 그녀가 큰소리로 오스카에게 되물었다. 뜨아.. 싸움이 터지려나 싶었는데..
오스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우리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안 그래?"
다시 오스카는 나를 보며 정말 얄미울 정도로
“오 쏘리. 노 리펀드. 그게 여기 규칙이야.” (안경 뒤로 눈썹을 치켜세운다. 당당해 보이는 건 왜일까?)
침이 삼켜지지 않았다. 고작 5일 전에 여기 있을 거라고 내 눈을 보고 그는 말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오직 노 리펀드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의 말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용기 내어 두 눈으로 그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뒷 말끝이 흐려지듯 "나 이거 다 못 채워… 너 알잖아..."라고만 말한 뒤 다시 그를 조용히 쳐다만 보았다.
필라테스 기구로 돌아왔고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다. 떨렸던 가슴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우선 오스카도 나에게 미안한 듯 눈치를 힐끗힐끗 본다.
탈의실에서 쇼샨이 " We are still learning lessons from Oscar even in the middle of forties" 위로의 한마디를 나에게 해주었고 우린 탈의실이 떠나갈 듯 웃었다. 웃음과 함께 나의 몸에서 그 어떤 무언가가 털려 나가는 듯했다. 가벼웠다. 몸도 마음도. 그런 나의 모습에 나 스스로가 놀랐다. 내가 지금 웃고 있구나. 운정중에도 끊임없이 나를 보았다. 난 괜찮았다. 난 멀쩡했다. 쇼산은 나와 동갑이며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필라테스를 같이하는 동네 주민이다.
그날 난 잠을 푹 잤다. 기분이 상했다는 표현을 그에게 전달했다. 그냥 그게 다였다. 나의 권리였다. 그리고 오스카는 나빴다. 명백한 사실이고 그는 정말 나빴다. 우린 그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운동을 했지만, 반사되어 보이는 거울 속 난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 예! 어쩜 쇼산이 옆에서 거들어줘 더 힘이 났을까?
요즘 일주일에 3번씩 강약을 조절하며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오스카도 부쩍 요즘 더욱 나에게 신경을 써준다. 동작 하나하나에 강약의 세기를 따로 조절해준다. 운동을 하다가도 갑자기 큰 소리오 외친다.
" 걱정 마, 이 운동은 무릎 관절에 좋은 운동이야."
"지금 이 운동은 어때? 너무 강도가 센 거 같아?"
" 손목을 보호할 때는 이 패드를 가져다 사용해."
" 지금 현재 아파? 너무 세? 그럼 빨강을 빼고 파랑과 흰색을 끼워."
" 응. 알았어. 오스카. 고마워."
(너 유독 요즘 말이 많아졌구나. 피씩 웃음이 나온다.)
나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새로운 나를 만났다. 잠깐이지만 반가웠고 그녀가 계속 나의 안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새로운 나. 안녕?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린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땀냄새를 풀풀 풍긴 채 가부좌를 틀고 계시는 그분을 살짝 들여다 보고 집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따지기 좋아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흑백의 논리가 삶의 기준이었던 나라면, 나 자신을 해치면서 까지 아마 변호사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가 괘심 해서. 그러고도 남았다. 승부욕도 강하고 지고 못 사는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아마 나 자신이 만진창이 될 때까지 싸웠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없이 여기던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살이 덕분이다. '내가 주인'이라는 그 두 단어가 가슴에 문신처럼 세겨진뒤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비록 일주일 3번 필라테스를 가야 하느라, Qigong을 당분간 못 가게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오스카와 이야기를 하고 운동 후 웃으며 센터를 나선다.
그가 나의 기분을 받아 주었던 받아 주지 않았던, 그것은 그의 문제이다. 나 스스로가 기특했다. 40여 년 넘게 함께 나의 몸속에 녹아내려 있는 나의 카르마는 결코 쉽게 바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늘구멍 같은 희망을 보았다. 그 작은 구멍으로 전해지는 전율의 느낌은 꽤 괜찮았다. 심지어 몸은 약간씩 피곤하지만 군살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오스카가 떠나기 전 몸짱이 돌 수도 있겠다는 희망까지 덤으로 가져보았다. 분명 시작은 속상했고, 억울했지만, 돌린 마음으로 전혀 다른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그 하루는 내가 결정했다. 오스카와 사이좋게 지내기로. 당당해 지기로.
다시 하루살이로!!
새로운 나 안녕? 우리 또다시 만날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