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에게 빈다는 것

by 수 안

한치 앞을 모르는 삶은 불안하다. 당장 아무일 일어나지 않 을테니 괜찮을거라는 안도감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살아오면서 그런 안온한 나날들을 보낸게 얼마만큼이였을까


내 몸에 에너지 가득한 힘이 있다면 으례 찾아오는 '별일'이 그닥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기력이 쇠해지면 그저 아무일이 없기를 바란다.


힘이 빠질수록 외부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외부의 그 어떤 존재란 바로 신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평소에 신을 찾지도 않으면서 무슨 안좋은 일이 생길때마다 신을 찾는것도 가증스럽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하며 살아남으려 한다. 그럴만한 사람이 없을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신에게 빌고 싶지 않다.

인생 최악의 고통을 맞닥뜨려본적 없으니 이만하면 무탈하다 싶은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법한 거대한 고통이 내 발치에 와 있다면 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신을 저주하거나 신에게 매달릴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만한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게 감사할따름이다.


최근 나는 일자리를 잃었고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했다. 통증에 시달렸을때 하나님,부처님 저좀 살려주세요 라고 비는 대신 끔찍한 고통이 지나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물론 마약성진통제의 위력을 믿었기 때문에 조금 뻔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캠핑이라도 가서 숲속 한가운데 있었더라면?

쓸데없는 상상은 안하는 게 낫겠다. 늙고 죽음이 가까워지면 어떤 고통이 찾아올지 모르나 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게 없다.


불교 경전 화엄경에는 주약신중이 나온다. 약을 주관하는 신들의 무리를 의미하는데 주(主 : 주관하다) 약(藥 : 약, 치유) 신(神 :신적존재) 중(衆 :무리 )로서 약과 치유를 맡은 신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세상의 약초와 치유작용을 맡는 신들로 묘사된다.


주약신중은 몸의 병 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유하는 상징을 띄고 있다. 불교에서는 병을 두가지로 본다. 첫번째는 신체의 병, 두번째는 번뇌의 병이다. 약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법(法)의 약, 즉 깨달음의 가르침도 의미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약으로 보고 중생의 번뇌를 병으로 보는것이다. 그래서 주약신중은 중생의 병에 맞는 약을 나타나게 하는 존재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현실의 약은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초이지만 심리의 약은 마음의 고통을 줄이는 수행이다.


수행하는 입장으로 본다면 병은 고통이고 약은 깨달음이며 주약신중은 치유가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다.

즉 고통을 덜게 해주는 외부적 존재로서 신을 뜻하는것보다 내 자신이 고통속에서 통찰이 생기는 과정 자체가 약으로 보는것이다. 신이 내 안에 있다고 느끼는 이유다.


불교의 신중은 본래 '의지대상'이 아니라 '우주작용의 상징'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신중들은

주약신중(약을 맡는 신)

주림신 (숲을 맡는 신)

주수신(물을 맡는 신)


이렇게 자연의 작용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본래 의미는 자연의 질서, 우주의 기능, 깨달음을 돕는 조건을 의인화 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원래 불교 교리에서는 신이 인간의 운명을 바꿔준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병이 있으면 치료해줄 존재를 찾고 재물이 필요하면 도와줄 힘을 찾고 불안하면 보호해줄 존재를 찾는다. 그래서 약을 맡은 신은 병을 고쳐주는 신, 재물을 맡은 신은 돈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서 현실적인 신앙으로 바뀌기 쉽다.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는 역사적으로 무속과 많이 접촉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에 와서 건강, 재물, 자식, 시험을 빌기 시작하면서 무속적 기복 신앙과 겹치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핵심은 분명하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의존하지도 않는다. 신은 존재할수도 있으나 해탈과 관계없다고 보는것이다.

고통의 원인과 해결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하지만

처음에는 신에게 의지하고 수행이 깊어지면 마음을 관찰할수 있으며 더 깊어지면 의지할 대상 자체가 사라진다.


나는 신에 빌지 않지만 고독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어느 조건이 맞아 상황이 변하면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고한숨 쉬었다가 가고 싶다. 그렇게 찾아올 작은 기쁨을 감사히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고 또 찾아올 불행을 맞이하려 한다. 그 어느것에도 따스한 자비가 있기를, 편안하기를. 그것이 나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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