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관세음보살의 뜻

by 수 안

지난 3년간 직업에 집착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고 재산분할이 원활하지 않아 별거로 들어갔다. 나는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니 당분간 경제적 도움을 받지만 큰 아이는 이미 성인이고 둘째는 일 년 후 스무 살이 된다. 원은 곧 끊길 것이다.


내가 벌어 생활하기 위해 힘겹게 일자리를 찾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3년을 보냈다.

그러나 일용직에 가까운 저임금의 프리랜서 단순노동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이 되기에 부족다. 돈이 부족했다. 프리랜서 펫시터, 프리랜서 청소, 학교 급식배식원, 개인 자영업 매장 두 곳, 대기업 브랜드매장 두 , 편의점, 동물병원 모두 자리잡지 못했고 일은 풀리지 않았다. 4년째 맞는 봄날에 조금 더 힘내야지라는 마음으로 청소 일을 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러 지금은 꼼짝없이 강제로 에 머무르고 있다.


왜 이리도 한 곳에 정착을 못하고 붕뜨며 겉돌까. 아이들과 생활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뭐가 문제일까 자책하는 마음과 수치심이 올라왔다. 체력이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고 서비스업이라 빨리빨리 진행하는 분위기가 버거웠다.

결국 나는 서비스업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와 맞는 일이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저 돈만 벌 수 있는 일을 쫒는 게 아니라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피해 온 이유는 무의식 중에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이 깔려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에 외국의 학교들을 소개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그때부터 자유롭게 토론하고 즐겁게 노는 외국아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대해 원대한 꿈을 꾸고 간절했지만 어른이 되도록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머릿속 생각은 커져만가고 현재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의식의 소리는 '너는 열등해'였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열어본다.

보문(普門)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두루 열려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어떤 상황, 어떤 존재에게도 차별 없이 응답한다는 의미인데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소리를 관(觀)하여 듣는다'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觀 =볼 관

고통, 두려움, 절망의 소리를 듣고 그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돕는 자비의 상징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라기보다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될 때 고통을 넘어서는 힘이 생긴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관세음보살은 상황에 따라 부처, 보살, 왕, 여성, 아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고정된 자아가 없고,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 즉 무아(無我)와 연결된다.


나는 현재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해진 자아(생각)로 현재의 내가 계속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했다. 20대부터 외국에 나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아이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피하고 숨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없고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지도, 내가 어떻게 보일지 노심초사하지도, 내가 교포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덜 했을 것이다.


보문품에는 불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물에 빠져도 구해진다. 칼과 도둑의 위협에서도 보호받는다라고 나온다. 상징적으로 삶의 극단적 불안과 공포를 넘어서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관세음보살은 외부존재와 내면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외부 신앙대상으로도 이해되지만 동시에 내면의 자비와 알아차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집중과 전환에 의의를 둔다. 반복적으로 염불(관세음보살)을 하면 잡생각네트워크(DMN)가 줄어들고 현재에 집중된다. 결과적으로 불안과 고통이 줄어들고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에 있다.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면 된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오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이 바로 자비이며 해탈의 시작이다.


욕망도 관찰 대상이 된다.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고통->이름부름->마음전환->안정

관세음보살은 외부존재이면서 동시에 내 안의 '알아차리는 자비의 기능'이다.


나는 지난 50여 년간 내 머릿속 생각으로 자리 잡은 패턴을 바꾸고 꽉 찬 욕망과 불안을 비우기 위하여 수행을 시작했다. 앞으로 일상을 수행하며 살아갈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 건강히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고 싶다. 수년간 직업을 얻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기에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혼란하며 고통을 받았다.

극한의 신체적 통증도 함께 따라왔고 입원과 수술 후에 쉬면서 정리하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4. 극한의 신체적 고통과 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