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이 왔다. 올해 봄이 유난히 더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친오빠가 드디어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월에 119에 실려가 응급실에서 뇌경색 판정이 된지 불과 몇시간만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응급수술까지 받았는데 뇌경색에서 뇌출혈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이지 순식간이였다. 그래도 살아남은게 다행이다. 온가족은 오빠를 잃을까봐 충격과 공포에 질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불안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천근만근 무겁게 여겨졌다. 새언니가 세상을 뜬지 2년도 안되어 찾아온 불행이 덧붙어져 불길한 기분까지 드는 것이다.
그래도 오빠는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있었을때 가족면회를 신청해서 만났는데 오빠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내쪽을 주시했다. 나는 '오빠, 나 알아보네. ' 하고 밝은 소리로 기뻐했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게 아니고 그저 자동반응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지고 말았다. 오빠의 부릅뜬 눈 저머 의식적인 뇌는 잠들어 있다는 말인가. 좌뇌를 다쳐 오른쪽 편마비가 왔고 왼쪽 뇌는 심하게 부풀었다. 머릿뼈는 잘라내어 냉동시켜 놓았다는데 치료를 진행하여 부푼 뇌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다시 머릿뼈를 이식한다고 했다. 아픈 오빠는 얼마나 힘이들까. 얼마나 고되고 아플까.
오빠가 실려가기 바로 전날 밤 오빠 방에 낯선 소녀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다.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울었는데 너무나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 깨고 나서도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굴까. 평소 꿈이라면 그냥 지나칠법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고 잊혀지지 않아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전에는 집에 새언니가 들어오는 꿈을 꾸어서 오빠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그냥 나의 무의식적 표상이라고 했다. 당차고 씩씩한 언니라는 이미지를 꿈속에서 떠올리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거겠거니. 그런데 오빠가 중환자실에 있었을때 또 새언니 꿈을 꾸었다. 언니는 잘 걷지 못하는 오빠를 부축하며 아랫층에서 계단 위로 걸어올라오고 있었고 내가 오빠! 라고 불러도 두사람은 대답 하지 않았다. 언니는 차가운 눈빛을 하고 지나쳤는데 그제서야 오빠가 뒤를 돌아보며 괜찮으니 걱정말라는 말만 남겼다. 언니와 오빠가 어디론가 가는 게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빠가 걱정말라고 했으니 애써 안심했다.
오빠는 비교적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3개월차에 걷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 정말 천만다행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데 오빠의 인지능력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빠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법하다. 제발좀 낫기를.
어느날은 내가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이질 못해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간적이 있다. 그런데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오빠가 울면서 동생 보고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직 '어' 라는 긍정을 뜻하는 말과 고개를 가로저어서 '아니'라는 의사표현밖에 못하는데 간병인이 지례짐작으로 이것저것 묻고는 오빠가 동생보고싶어하더라는 결론을 낸 셈이다.
사람은 오감 외에 현실을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 그것을 잘 살려서 익숙하게 쓰면 직관이 발달할수 있다. 그래서 예지몽이라는 것도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기 보다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잘 감지했다고 본다. 사람의 뇌는 하는 일이 많다.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에 너무 몰두해버리면 한쪽으로 쏠린 채 다른 능력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현실을 왜곡시키는 믿을 수 없는 이성적인 뇌에 의지하며 사는 것보다 분산되어 있는 감각에 집중하고 무의식적인 뇌를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본다.
꿈은 낮동안의 기억과 감정을 무의식적인 측면에서 재구성한다. 경험, 걱정, 욕망도 날것 그대로 반영되며 해소시킨다.
불교에서 꿈은 마음속에 저장된 업과 기억이 움직이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업식이 반영된 꿈은 과거 경험이나 깊은 심층 마음이 올라오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미래의 가능한 흐름을 감지하는 꿈이 나타날수 있다고 하나 불교는 이것을 신비한 능력으로 집착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꿈에 집착하면 망상이 되고 꿈을 관찰하면 수행이 된다.
금강경의 가르침에 '현실도 꿈과 같은 성질을 가진다'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모든 현상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 즉 꿈도 마음이 만들고 현실도 마음이 해석하는 것 이라는 의미다.
꿈을 너무 믿지 말것이나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말것이며 마음의 작용으로
관찰할것. 꿈은 수행의 재료이지 예언이 아니라는 태도이다.
그러나 현실이 무겁고 힘이 들때 꾸는 꿈은 작은 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현실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며 연이어 과거를 되짚고 후회하기도 한다. 결국 허상을 붙들고 고통으로 빠져들어가는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정심을 갖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평소에 수행을 하는 것은 뇌가 하는 일을 분산시키는 것과 같다고 본다. 생각에 빠져들어 허상에 나를 가두지 말고 열린 감각으로 살아가면 고통에 몰입하여 더 큰 고통을 낳는 것을 방지할수 있다.
생각보다 몸에 집중하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