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왜 쓰려하는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AI 트렌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개인의 기록

by Jay

100억이 생기면 뭘 하고 싶어요? 여러 사람에게 질문해 봤다. 기대했던 결의 답변을 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 재투자였다. 부동산을 사거나(건물주가 되겠다), 신뢰할 만한 종목에 투자하거나(ETF에 묻어두겠다), 그냥 은행에 저축하겠다는 답변도 있었다.


결국 모두 부를 어떻게 유지하거나 늘릴지에 대한 방법론이었다. 투자 성향의 차이일 뿐, 내가 원하던 방향의 답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돈을 어떻게 벌거나 모으고 싶은가’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100억이 생기면 재투자를 하겠다는 답변은 나에겐 공허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재귀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면 1,000억이 생기면 뭘 하고 싶나요?’


보통은 거기서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강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까지는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혹은 각자의 답이 내면에 있지만 너무 무거운 주제라 말로 꺼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했던 건, 무한에 가까운 돈이 생겼을 때 그 활용처, 즉 자신이 진짜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돈은 필수적이다. 돈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가진다. 생계와 안전, 사회적 지위, 계층 이동, 힘, 쾌락 등. 돈은 중요하다. 그리고 돈 이면에 감춰진 욕망의 실체에 평생 노력해도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돈의 이유를 재귀적으로 답한 사람들의 사고 흐름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달성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수단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돈은 수단이고, 그 수단으로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가 목적이다. 목적을 놓치는 순간 수단의 가치는 빠르게 퇴색된다(수단이 풍부해질수록 오히려 목적 정의가 뒤로 밀리는 현상은 낯선 일이 아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게 되고, ‘왜 그것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기 쉽다. 실행 비용이 크게 낮아진 환경에서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화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링크드인을 도배하고 있는 AI 관련 포스트들을 보면서다.


AI 발전 속도는 놀랍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과 솔루션이 발표된다. 발 빠른 사람들이 트렌드를 먼저 경험하고 놀라움으로 가득한 ‘간증’을 쏟아낸다. 피드를 한참 내려도 생성형 AI, 에이전트, Claude Code, Openclaw 관련 글뿐이다.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같은 주제가 반복되니 피로감이 쌓인다.


AI는 분명 현실이다. 다양한 서비스와 솔루션이 그 실체를 하나씩 드러내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 사회에 진짜 자리 잡는 순간은 기술이 등장한 시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한 시점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관점에서 보면 AI는 이미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부감 없이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AI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무한에 가까운 솔루션이 주어진 지금, ‘그래서 AI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한가? 이 질문 앞에서 ‘100억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재귀적으로 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AI는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한 강력한 범용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도구가 주어진 지금, 우리는 그 도구로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가.


‘바이브 코딩으로 웹 서비스나 자동화 워크플로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AI Agents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는 skills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100억이 생기면 재투자해서 더 큰돈을 만들겠다’는 답변과 비슷한 결을 갖는다. 이미 충분히 큰 가능성이 주어졌는데, 여전히 수단 자체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물론, 기술의 발전과 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연구이고 공유라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관심이 그쪽으로만 일관되게 흘러가는 건 경계된다. 기술의 발전과 목적의 탐색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수단의 가치가 온전해진다고 믿는다.


선구적인 사용자들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AI 도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충분한 조건 위에 서 있다. ChatGPT, Gemini, NotebookLM. 복잡한 에이전트 설계 없이 GUI 기반 서비스만 잘 활용해도 업무 생산성은 크게 향상된다. 결국 생산성을 어디까지 원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더 많은 일이 자동화되면 좋다. 하지만 그 생산성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일 것인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킬만 축적하는 것은 수단의 의미를 흐릴 수 있다. 기준과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트렌드를 놓칠까 불안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이 수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AI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잠시 멈추고,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에 가까운 솔루션을 손에 넣었을 때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조금 더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면서 목적을 먼저 정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해야 한다.”


AI로 인한 변화가 거대한 지금 이 시점에서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본질. 근원적 질문. 무한에 가까운 솔루션으로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 습득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정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번 연휴 동안 내 안에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질문해 보려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도구를 쓰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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