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세 번째 맞이하는 봄 소풍의 이른 아침이었다. 작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자는지라 김밥을 싸기 위해 옆자리 엄마가 눈을 뜨면 그 인기척에 나도 잠에서 깼다. 소풍이라 두근대는 마음에 다시 잠들기도 어려웠지만, 김밥이 궁금해서 더더욱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김밥 재료를 다듬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꼼짝없이 부엌문 앞에 앉아 엄마를 지켜봤다. 각양각색의 재료들을 썰고, 지지고, 볶고 삶은 뒤 김을 펴서 밥을 깔고 재료들을 얹은 뒤 돌돌 말았다. 그렇게 만든 첫 번째 김밥은 썰지 않은 채로 오롯이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김밥을 손에 쥐고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김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진짜 맛있다고 말하면 엄마는 웃으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김밥을 만드셨다.
엄마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한 통의 도시락을 따로 싸주셨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두 통의 김밥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세 개의 도시락통을 넣은 가방은 묵직했지만, 김밥 먹을 생각에 가방이 무거운 줄도 몰랐다.
소풍의 목적지는 산꼭대기였다. 꼬박 두 시간을 걸어 오른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예닐곱 명의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친구들은 마실 것을 꺼내어 목을 축였고, 과자를 꺼내 요기했다.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눈치를 살폈다. 열 한시가 좀 넘었는데, 점심시간이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주변 돗자리를 살폈다. 과자와 음료는 먹지만 도시락을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머릿속엔 온통 가방 속 김밥 밖에 없었다. 왜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야, 밥 먹자!”
누가 먼저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도시락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총천연색 김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빨리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꽉 차는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친구들도 하나둘 뚜껑을 열었다. 당혹스럽게도 아이들 김밥은 하나같이 예뻤다. 동그란 모양이었고, 한 부유한 친구의 김밥에는 소고기가 들어 있었다. 소량의 김밥과 과일이 함께 담긴 우아한 도시락도 보였다. 그 순간 내 도시락이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김밥말이를 꾹꾹 누르는 버릇 때문에 엄마의 김밥 모양은 네모였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 크기가 컸으며 투박했다. 나눠 먹어야 할 도시락도 따로 있는데, 친구들이 비웃지 않을까. 창피함에 주눅이 든 그 순간 친구 하나가 도시락을 들고 내 앞에 왔다.
“니꺼 먹어보자.”
나는 머뭇거리며 손에 든 도시락을 내밀었다. 아직도 그 순간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정말 먹음직한 것을 발견한 사람의 환한 얼굴.
“야, 맛있겠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한입 넣었다. 커다란 김밥이 입안을 꽉 채워 말은 못했지만, 친구는 호들갑을 떨며 다른 친구들에게 빨리 먹어보라고 손짓했다. 아이들은 젓가락을 들고 내 도시락에 달려들었다. 한입 넣고 저마다 맛있다면서 자기들 김밥도 먹으라며 내게 권했다. 그 중 한 친구가 말했다.
“네모 김밥이야. 되게 귀엽다!”
둥글지 못한 김밥을, 재료가 많이 들어가 터질 듯이 커다란 김밥을 잠시나마 창피하게 여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에 귀가 붉어졌지만 내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이 내민 김밥들을 차례로 입에 넣었고 똑같은 김밥임에도 서로 다른 맛에 감탄했다. 처음 먹어보는 소고기 김밥은 맛이 우아했고, 비싼 스모크햄을 넣은 김밥은 향긋했다. 어떤 친구는 기름 바른 점잖은 김밥을 내밀었고, 당시에는 보기 드문 유부초밥도 한입 맛보았다. 모두 다 맛있었다.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김밥 맛은 지겹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건 엄마의 김밥이었다. 친구들 말대로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비록 저렴한 야채 소시지를 넣었지만 적당히 구워서 달콤한 맛이 났고, 김밥햄도 들어가 특유의 훈제향이 났다. 단무지의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강한 맛을 오이가 잡아주었고, 향긋한 끝맛까지 예술이었다. 계란은 고소했고, 우엉과 시금치는 소량 들어가 나대지 않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그 날 나는 내 도시락 두 통을 다 비웠고, 친구들이 남긴 김밥까지 다 먹었다. 배가 터질 듯이 불러 몸은 불편했지만, 뿌듯하고 행복했다.
“엄마,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음식이야?”
내 질문에 엄마가 보인 표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린애의 엉뚱함에 대한 미소, 하지만 당황스러움과 슬픔이 어린 그 표정. 당시 내 나이는 일곱 살. 처음 유치원에 입학해 소풍이나 야외학습 등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지만, 번번이 갈 수 없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아 엄마가 앓아눕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야외 일정에는 모두 불참했다. 학부모 참석이 필요 없었던 가을 소풍이 내가 참여한 처음이자 유일한 소풍이었다. 그 때 엄마는 맛있는 김밥을 싸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김밥이다. 많이 먹으라며 엄마는 도시락을 두 개나 싸주셨고, 그 이후로 나는 소풍날 도시락을 둘 이상 넣어갔다. 엄마는 김밥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드셨다. 당연히 아침식사로 김밥을 먹었고, 소풍을 다녀와서도 김밥을 먹었다. 만든 지 한참되어도 김밥은 맛있었다. 엄마는 앞에 놓인 김밥을 모두 먹어치우는 나를 보며 행복해하셨다. “많이 먹어. 김밥 안 비싸니까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줄게.”
김밥천국을 시작으로 김밥을 판매하는 프렌차이즈 식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김밥은 이제 저렴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거리가 됐다. 이따금씩 야근할 때나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때 김밥을 사 먹곤 한다. 더 이상 김밥이 비싼 음식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리고 김밥은 여전히 맛있다. 엄마의 김밥에는 비할 수 없는 맛이지만.
엄마의 김밥을 떠올려본다. 엄마의 김밥은 내게 결핍을 가르쳐주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도 가르쳐주었다. 세상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을 알려주었고, 엄마의 넘치는 사랑도 확인시켜주었다. 김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비싸지 않지만 그 어떤 음식보다도 소중한.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