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자백(The Confession)>
정부가 바뀐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시민으로 사는 것은 이제 녹록치 않은 일이 됐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몇몇 사람들은 이 정부에 연신 환호를 불러제끼며 가감없이 응원할지 모르지만. 요즘 들어 대다수 사람들은 어떤 사실들에 대해 판단 보류 상태인 것 같다. 불과 1~2년전만 해도 신랄하게 정부를 비판하고, 온갖 정책에 볼멘소리를 해댔던 사람들이 자취를 감췄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에 눈 감고 귀를 닫으며 그저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인 게 대다수 사람들의 속마음일거라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고, 말도 안 될 대응과 책임자 하나 없이 은근슬쩍 넘어가려하는 불한당 같은 이 정부의 태도에 대해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침묵하고 있다. 불의한 언론까지 가세한 덕분에 이 모든 말도 안 될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긴, 2014년 세월호 참사도 여전히 단 제대로 해결된 것 하나 없다. 결국 말도 안 될 참사가 벌어져도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체념하는 나쁜 마음도 생겨나는 게 아닐까. (물론, 지금도 유가족들의 수많은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함께 애쓰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지만요)
불편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오랜만에 감상한 영화 <자백 (The Confession)> 때문이다. <자백>은 1992년 초에 발생한 가정주부 패트리샤 홀의 실종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패트리샤 홀은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였다. 생활에 단 한 가지 흠도 보이지 않았지만, 남편 키스와는 불화가 있었다. 실종되기 직전에도 이웃에 다 들릴 정도로 남편과 싸웠고, 여자는 직후에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이후 그녀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맨 처음 남편은 아내가 단순히 가출한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녀의 동생은 약속을 앞두고 연락이 없는 언니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해 패트리샤가 차를 몰고 간 장소를 중심으로 그녀의 흔적을 뒤쫓는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패트리샤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어느 시점부터 경찰은 그녀가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내리고, 실종 직전에 남편과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의 증언에 근거해 그를 체포한다. 놀랍게도 남편은 우연히 유능한 변호사의 전화번호를 주머니에 갖고 있었고,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그에게 연락한다. 대부분의 사건을 무죄로 끌어낸 이 변호사는 키스를 금새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준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키스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물증이 없기에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입장이었다. 마침 키스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들고자 신문에 광고를 내고, 경찰은 어떤 여성의 제보 덕분에 여자경찰을 잠입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경찰의 의심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흔히 범인을 알려주고 그 범행의 동기 또는 범인의 복잡한 내면을 설명하거나 도대체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를 이야기한다. 혹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사람의 이야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을 주요하게 다루기도 한다. <자백>이 흥미로운 것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농후한 한 인물이 지금까지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 점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실제 인물이 어떤 영화 속 캐릭터들보다도 예측불가의 잔혹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영화 서두에 이제는 60대 정도가 된 실제 인물 키스가 주름진 얼굴로 창밖을 바라본다. 그는 나지막히 자신은 아내가 금방 돌아올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쫓아가다보면 우리는 금방 알게 된다. 누가, 어떤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키스가 말하는 진실과 경찰의 진실, 패트리샤의 동생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과 법정의 진실은 일치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석연치 않은 결론으로 실제 사건도, 영화도 마무리가 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명백하다. 영화를 보면서 작금의 현실이 떠오른 것은 그래서 참 씁쓸하다. 세상에 정의란 없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이 가리키는 그 '진실'의 방향은 모두 명확히 하나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그것을 강력히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2014년에도 그랬고, 2022년에도 그렇다. 이 영화 <자백>은 어쩌면 그저 '운(luck)'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는 게 속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일을 저지른 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너무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