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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Kwon Feb 06. 2018

힐빌리의 노래_J.D.밴스

그 누군가에게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

<힐빌리의 노래>_J.D.밴스 지음/흐름출판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힐빌리(Hillbilly)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
백인 쓰레기라는 의미인 '화이트 트래시'라고도 불리며,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의미로 교육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을 뜻하는 '레드넥'도 같은 의미로 쓰임.





   이 책은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라고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게 되어서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의 역사 문화적이고 정치적이며 시대적인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엘리너 블랙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 미국 대선 기간에 미국 내 노동 계층이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전혀 관심 없는 허풍선이 억만장자를 지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한때 민주당의 견고한 지지층이었던 애팔래치아 산맥과 남부지역의 하층 노동민들이 어째서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충실한 공화당 지지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소외되고 가난한 미국 백인 노동 계층의 현실을 개인의 회고록을 통해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고 하는 데에 있다. 이 책의 내용이 미국 지도층에도 정치적 결정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 책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 지역에 살았던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힐빌리인 한 사람의 30년간의 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힐빌리 사람들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가난하고 볼품없고 인정받지 못하고 배운 것도 없는 백인인 밥 유얼과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관심 가질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보았다. 그들에겐 그 어떤 화려함도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먼 타국의 낯모르는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힌다. 쉽게 만나기 어렵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힐빌리와 같은 이들이 지금도 우리와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기에,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저자 J.D. 밴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이고, 그는 그 누구보다 힐빌리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힐빌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고 결국은 힐빌리에서 나와 객관적으로 힐빌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사람이다. 통계적으로 힐빌리의 아이들의 미래는 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할 정도이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지만, 그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사회적으로도 성공가도를 걷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처럼 살라는 자기계발 책도 아니고, 결코 자신을 성공신화로써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불안과 고민, 고통과 분노는 담담한 어조지만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김으로 힐빌리로부터 분리되는 대신, 자신이 힐빌리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그의 상한 감정들이 많은 부분 치유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가 진정 모든 상황과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진행형인 용서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히 과거에 대해 수용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 살았던 자신을 밀어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성숙함이고, 이 책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욕은 일상적인 것이며, 남편에게 구타당하며 살다가 결국은 이혼한 할모(할머니)의 삶과, 남편과의 이혼 후에도 수없이 남자를 갈아치우며 집으로 남자를 들였으며 아들에게 분노를 쏟아놓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해 죽이려고까지 했고 결국 마약에 손을 대고 지금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저자의 엄마의 삶은 그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벅차게 만들었다. 누가 형제자매가 몇이냐고 물으면, 도대체 어떤 아저씨의 아이들까지 자기의 형제자매로 여겨야 하는지 고민되어 형제자매가 몇이냐는 질문이 어려웠던 그 어린 시절이 안타까웠다. 그가 품고 살았던 삶은 '분노'를 견디는 삶이었다. 그 분노를 폭발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분노의 인내와 절제가 그의 삶이었다.



할모, 신이 정말 우리를 사랑해요?

   이 질문을 하고 할머니가 터진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동안, 어린 저자는 그럼에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이 고통과 혼란이 곧 끝날 거라고 안심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에겐 그럼에도 희망을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에겐 감사하게도 그런 희망을 말해주고 행복한 삶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


이 모든 건 "뭐든 할 수 있다. 절대 자기 앞길만 막혀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라고 통렬하게 꾸짖은 할모 덕분이었다.


   할모(할머니)의 삶도 온전하지 못했고 평범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저자에게 그 할머니는 그에게 삶은 살 이유가 있다고 말해주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기까지 그런 한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 중에, 그리고 지금도 머물고 있는 사람 중에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혹자는 그런 사람을 떠올리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그 어떤 아픔을 안고서도 지금 이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다. 이제는 자라나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우리가 그런 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 가까이는 내 자녀에게이고, 넓게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에게다. 한 사람의 한 마디는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지속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한 아이에게 일어설 용기를 준 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와 세상의 어린이들이 학습된 무기력을 벗어나 새로운 공기를 맡을 수 있도록 불러내는 노래가 되어주는 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어주어야 하며, 그것은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래야 한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아이를 바른길로 잡아줄 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 자녀만 보는 시각에서 눈을 돌려 멀리 보고 넓게 보아야 한다. 세상의 아이들이 자라나서 '행복한 배우자와 누리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소중한 꿈을 이루는 것이 온 정신을 집중하여야만 겨우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내 부모에게서 보았고, 내 이웃 어른에게서 보았기에 닮아가다 보면 꿈꾸는 행복하고 소박한 삶이 살아지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살고 싶어지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평생토록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게 된다. 그 한 사람의 삶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부를 보기도 할 것이고, 몸서리치도록 우리와 다른 고통스러운 삶을 산 그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우리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기억해야 할 어둠 속의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게 이끌어내주는 한 사람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The Well-beloved
바로 그... 단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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