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는 일
성경의 사무엘하 18장에는 아버지인 다윗 왕에 대항하여 반역하였던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 왕은 반란을 일으킨 아들이 행여나 잘못될까 노심초사하여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하지만 압살롬은 다윗 왕 수하의 청년 열 명에게 에워싸여 죽임을 당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일에 관여한 두 사람이 기록에 남아 있다. 미리 달려간 한 사람은 승전 소식을 전하며 압살롬의 생사 여부를 묻는 왕에게 "큰 소동이 있었으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시간을 끌었고, 한 사람은 압살롬의 죽음을 서둘러 전하며 "왕의 원수와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압살롬같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전하였다.
다윗 왕의 마음을 헤아림 없이 성급하게 전달된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소식으로 다윗 왕이 슬피 통곡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팩트(fact)보다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내가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있는 내 앞에 앉은 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듣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매일 수십 명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내게 결과를 듣거나 앞으로 하게 될 치료에 듣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전에 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처음 만나는 환자들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듣는 일'은 의사에게는 진료를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에 중요한 단서들이 환자의 이야기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기 때문이고, 환자의 감정과 현재 상태가 그들의 말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밖에 기다리는 분들이 늘어나면 나는 질문이 많아진다. 내가 꼭 들어야 하는 핵심 내용을 질문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얻어야 빠르게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어떤 증상이 나타났고, 어떻게 하면 악화 혹은 호전되는지, 다른 질환이나 약물복용력은 없는지 등 핵심을 짚는 일을 서두른다. 하지만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눈을 마주 보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 환자와 나 사이에 생기는 관계의 깊이는 더 깊어짐을 느낀다.
경청하는 일은 내가 매일 훈련하는 일이고, 또 더 잘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아침 진료실에 들어가 앉아 컴퓨터 모니터에 필요한 모든 창을 열어두고 늘 생각한다. '오늘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하자'라고. 그리하여 그날 마주할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더 시간을 내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날보다 반성하고 후회하는 날들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매일 '듣는 마음' 주시기를 기도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 일보다 당신의 일이 더 중요해야 하고, 내 마음보다 당신의 마음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내 생각보다 당신의 이야기가 더 우위에 있어야 들을 수 있다. 듣고 있는 나에게 지금 이 시간이 참 소중하지만, 그보다 당신이 내게 남기는 말 한마디가 더욱 중요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진심으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경청하는 일은 쉽지 않고, 나에게도 매일 끊임없이 마음을 다지며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내가 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참 많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과 내 감정을 다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고, 모든 걸 꺼내놓아서는 안될 때가 더 많다. 오히려 더 많이 듣고 말하기를 좀 더디 하는 날에 후회가 적다. 내 판단과 생각의 말이 앞에서 듣는 환자에게는 단정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니 그러하다. 내 앞에 앉은 환자는, 의사로서 하는 나의 조언은 약간 혹은 적당히 듣고,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 격려는 충분히 받고 싶어 할 때가 더 많으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 그 이상이어야 한다.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 왕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그 시간을 조금 미뤄도 좋겠다고 생각한 한 사람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이 환자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수많은 말 중에 듣는 이에게 꼭 필요한 몇 문장을 골라내는 일을 하는 것이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고 여전히 어리고 부족한 내가 가야 할 길은 참 멀다. 매일 다짐하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