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 죽음

당신의 마지막 숨, 그 이후

by Jianna Kwon



가까운 죽음의 소식은 한동안 모든 감각들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혹은 둔하게 만들어버린다.


태어난지 일 년 만에 이름도 길고 복잡한 진단명을 듣고 수년간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다가 얼마전 엄마 아빠에게 이별을 고한 예쁜 미소의 열 두 살 아이로 인해 그러했고, 몇 번 보지도 못했지만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로서의 동질감이 있었던 한 사람이 너무 진행되어 버린 질병의 끝에서 고통 중에 갑작스럽게 떠났을 때도 그랬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내가 직접 만나본 적이 없거나 잠시 얼굴을 대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을 ‘가까운 죽음’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 죽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하며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 내 가까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이 봄날의 꽃들이 만개하고 벚꽃이 가장 화사했던 시기였고, 그들은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가끔씩 느껴질 때쯤 남은 자들에게 그 많은 추억들을 담요처럼 덮어주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2019년과 2020년,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서 일할 때 했던 수많은 임종선언들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보낼 수 없어 침대 곁에서 싸늘해진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청진을 하고, 호흡을 확인하고, 심전도 결과지의 시간을 확인하며 임종선언을 했었다. 그 당시의 일기를 뒤져보다가 새벽녘 임종선언을 하고 와서 썼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2020년 4월 21일


이런 임종선언은 참 어렵다.


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흐른 시간 후에

가슴 미어지게 오열하는 소리가

병실 문틈으로 새어나와

임종 선언을 한 내 귀에 여전히 들려왔다.


Ampulla of Vater Ca. 바터팽대부암

Lung meta 폐로 전이된 상태

PTE, DVT Hx. 까지 최근에 있었던 분. 폐혈전색전증, 심부정맥혈전증의 과거력


BP 갑자기 60/30으로 떨어지고

RR 분당 38회, Sat 85%


저녁까지 있다가 아내와 교대하고

집에 가셨던 아드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이렇게 급격히 안 좋아지시고

돌아가시게 되었는지를 더더욱 받아들이시지 못한다.


말기 암 진단되어 임종기에 접어들었음을 알아도

사랑하는 사람을 한 시간 만에 갑자기 보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나도 가슴 먹먹하도록.


이 밤,


누군가는 자신이 조금 더 일찍, 더 자주 환자를 확인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짓고,

누군가는 좀 더 사랑하지 못하고, 좀 더 곁에 두지 못하고 떠난 어머니를 위해 통곡하고,

누군가는 이미 눈 감은 환자를 수세하고 곱게 정돈하여 보내드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물이 고인다.

그리운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문득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엉엉 소리를 내서 울 수도 있을 만큼 그리운데

아무렇지 않은 듯 또 한 밤을 보내고 있다.


오늘 밤엔 발이 퉁퉁 부었다.







호스피스 병동엔 유난히 빛이 환했다. 천장에 난 창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생사가 오가는 그들의 마지막 거처가 되었던 그곳에서 나는 미처 하늘을 쳐다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병동 복도 중앙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이, 구름이 보인다는 걸 알고 나서는 종종 복도 중앙에 서서 위를 바라보았다. 어느 날은 흐림, 어느 날은 빗물이 방울방울, 어느 날은 선명한 파란빛에 가벼운 구름들이 떠갔다. 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 위로가 되곤 했었다.


지난 삶 동안 나는 가족들과 연인, 친구의 죽음을 마주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좀 더 많이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었으니, 타인의 죽음 앞에서 좀 더 위로가 되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봄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후에 찾아가 그저 손을 잡고 울고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뜻밖의 죽음과 예정된 죽음을 비교한다. 어떤 죽음이 더 가슴 아팠는지 생각해 보았다. 맑고 죄 없이 살았던 어린아이의 죽음과 손녀가 장성할 때까지 지내시다가 돌아가신 어르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더 아까운 죽음이란 것이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비교하다가 다시 가슴만 먹먹해졌다.


준비된 죽음은 덜 아플지 알았다. 오랜 시간 준비하면 할수록 떠나보냄이 좀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준비된 죽음은 없었다. 모든 탄생이 처음인 것처럼, 모든 죽음은 처음이므로... 당신의 죽음은 당신에게도 처음이고, 당신을 보내는 나에게도 처음이므로. 모든 탄생이 한 인생의 처음이라 한없이 기쁨인 것처럼, 모든 죽음도 그 인생에서 처음인 영원한 이별이기에 슬픔이고 아쉬움이다.


우리는 떠난 자의 이야기를 알 수 없다. 삶을 마무리한 그들이 그 이후에 어떤 경험을 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자들의 이야기는 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자취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그리움이 되고 사랑의 기억이 되고 따뜻하면서도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나를 위해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떠난 자리에서 나를 기억할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그들이 기억할 내가 그들에게 마음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지지자(supporter)로 남기를 바란다. 남은 자리에서 나를 위해 눈물 흘릴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부재가 결국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남은 날들을 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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