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I'm your supporter.

by Jianna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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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환자를 만날 때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반가운 사람이 있고,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 있으며,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도 있고, 예민하여 조심스러운 사람도 있다. 약속을 잡고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는 내가 원하는 관계일 때가 많지만, 의사-환자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다. 비슷해 보여도 각기 다른 증상과 아픔의 정도를 가진,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성격도 다르고, 상황도 다양하며, 질환도 여러 가지이고, 증상 및 치료에 대한 반응도 각각이다.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잦으면 한 달 만에, 길게는 2-3개월마다 한 번씩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날 때부터 참 경쾌한 환자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진단명이 많지 않은 분들인 경우가 많고, 생활습관 개선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생활습관 교정이 중요한 질환으로 진료를 보는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을 만나면 나는 참 기분이 좋다. 이런 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칭찬을 쏟아낸다. 약을 복용하면서 운동도 시작하고 식습관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체중 감량도 해서 내 앞에 와 앉으신다. 차팅(진료기록)을 하면서도 주저리주저리 쓸 글도 별로 없고 약제 변경도 거의 없다. 진료실 들어오기 전에 혈압이나 혈당 기록된 것만 확인해도 안심이 된다.


"와, 혈압이 이번에도 너무 예쁘네요!"

"혈당이 너무 잘 조절되고 있네요!"


이런 분들은 이 말 한마디에 미소를 짓고, 나는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셨는지를 묻는다. 어떤 분은 수줍은 듯 자신이 잘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어떤 분은 자랑스럽게 조목조목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이런 분들과는 약이나 질병에 대한 이야기 이외의 담소도 종종 나누게 된다. 그분들의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가 함께 누리는 감사가 있다. 헤어질 때 나는 격려의 한 마디로 마무리한다. 다음에 뵐 때도 지금처럼 잘 지내다가 오시라고 힘차게 한 마디를 건넨다.


하지만 이런 분들만 만나는 게 아닌지라, 실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만남이 훨씬 많다. 혈압이나 혈당 등의 조절이 잘 안되거나 합병증까지 생겨서 약은 점점 늘어나는데 오히려 의지는 저 바닥까지 내려앉아 있는 분들과의 만남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분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타러 가야겠다는 의지는 있으신 것이기에, 진료실로 오시는 그 걸음이 반갑고 고맙다. 진료실에서 만나면 "아이코, 혈압이 왜 이럴까요?", "집에서 잰 혈압은 어떠셨어요?", "요즘 식사를 어떻게 하셨어요?" 등 걱정 섞인 말이 먼저 뱉어진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분의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 자기 몸 챙기는 것도 참 버거운 일상이라는 것, 열심히 해도 안돼서 속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는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차팅에는 환자분의 문제 리스트를 줄줄이 쓰고, 약제 변경이나 추가적인 검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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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에게 나의 의사로서의 최선의 위치는 환자의 '리더'가 아니라 '서포터(지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질환을 진단하고 검사를 하고 어떤 약을 얼마나 처방할지 결정하는 일은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외의 진료 시간 동안 나는 환자들의 '서포터'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오랫동안 약을 먹고 만성질환을 잘 조절하면서 지내야 하는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의사는 그들이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봐 주고,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참, 잘 했어요!
좋아지고 있어요.
다음에 뵐 때 좋은 결과 보여주세요.
더 잘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이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픈 이들이나 특정 질환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더 자주, 더 진심을 담아서 전하는 의사로 남고 싶다. 잘못하고 실수한 것보다는 잘 한 것들을 먼저 알아봐 주고, 더욱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자신을 아끼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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